길고양이

by 주홍빛옥상




길고양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처음 눈을 떴을 때, 공기로 흐르던 온기와 냄새로 세상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렇게 계절을 느끼며 본능적인 직감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간다.




가만히 귀를 대면 새순이 땅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사방으로 퍼지는 꽃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꽃이 질 무렵이면 거리에 눈밭처럼 소복이 쌓인 꽃잎 속을 뒹굴곤 한다.


여름
밤이 길지 않아 좋은 계절이면 나무 그늘을 찾아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촉촉한 대기로 마른 숨을 적신다. 새 아침이 밝아오면 밤새 젖은 몸을 따사로운 볕에 말리곤 한다.
나에게 온통 회색빛이던 세상이 초록으로 빛나는 것도 그즈음이다.


가을
하늘이 점점 더 멀어지는 계절이 오면, 한낮의 열기는 서서히 사그라들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결에 정오에도 스르르 단잠에 빠져들곤 한다.
수분을 머금은 잎사귀에서 점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땅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면 나뭇잎 아스라지는 소리에 가끔 귀가 쫑긋한다.


겨울
지천의 수목은 지난 계절 동안 나뭇가지를 가득 메웠던 잎사귀를 땅으로 내려놓으며 추운 계절을 보낼 준비를 한다.
어떤 미련도 없이.

가로수의 울창한 잎에 가려졌던 세상이 마침내 드러나는 계절이 온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길 건너 집들의 창문이 훤히 보이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저 편에 살고 있는 고양이도 더욱 또렷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발가벗은 가로수 덕분에 더 잘 보이는 것들에게 안부를 묻게 되는 계절이다.
그렇게 나는 계절을 느끼고 직감하며 살아간다.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배가 고플까 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허기를 달래주는 사람들이 있다.
길의 생활을 잘 견디라며 마당 한편에 집을 놓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나는 더위와 추위를 견디고, 폭우와 태풍을 지나 허기와 고단함을 달랠 수 있다.
가끔 찾아드는 두려움까지도.



나의 세상
나의 집은 처음 태어난 날부터 이곳,
계절을 온몸으로 느껴며 살아가는 이곳,
곧 나의 세상이었다.

이제 조금씩 어둠의 시간이 길어지면,
밝아오는 아침빛을 더욱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본다.
그 빛으로 어둠을 견디면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다가오는 계절의 추위를 견디면 또다시 세상은 초록빛으로 가득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알까?
길에서의 삶도 묵묵히 지나면
곳곳에 기쁨과 위안이 깃든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변함없이 밝아오는 아침,
따뜻한 계절, 다정한 사람들,
그리고 당신 덕분이라는 것을..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세상 바깥에서 태어난 동물들은

안과 밖의 차이를 알지 못하겠지요.

처음부터 그곳에서 태어났기에

그곳이 곧 집이고 세상입니다.


그런 길 위의 생명을 살피는 것 또한 결국 인간의 몫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안락함을 위해서 고양이 밥 주기를 금지하기도 합니다.

동물을 보살피다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길고양이와 길 위의 동물들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보살핌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그 바깥세상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삶이 조금이나마 위태로움에서 비켜날 수 있습니다.


모든 동물과,

그들을 보살피는 따뜻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지난 가을, 차에 있는 츄르를 줬던 날
잘 지내고 있니?

오늘 아침,

길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과

그 생명을 귀히 여기는 다정한 사람들의 삶이 언제나 아침처럼 고요하고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정보 한 스푼

고양이는 어두운 환경에서도 사람보다 6-8배 뛰어난 시력을 지닌다. 동공을 크게 확장하여 적은 빛을 효과적으로 흡수해 시력을 향상한다.

고양이는 녹색, 파란색 계열만 구별할 수 있고

그 외에는 회색빛으로 보인다.

길고양이의 생존과 직결된 야간 시력이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