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사는 개

아침의 다른 의미

by 주홍빛옥상


꾸벅꾸벅 졸다 눈을 뜨면 집 안 깊숙이 연노랑빛 햇살이 스며든다.
찹찹 마른 목을 축이고 텅 빈 집 안을 어슬렁거린다. 주인의 냄새가 베인 옷가지 곁에 누워 코를 실룩이다가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다.


배가 고파 오면 일어나 와그작와그작 밥을 먹다 말고 현관을 바라본 채로 한참을 서있다.

그러길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밥그릇도 밑바닥이 드러난다.

그렇게 기다림을 삼킨다.

서쪽으로 난 창으로 하루의 지는 오렌지빛 햇살이 기웃기웃 들어오기 시작하면 주인의 냄새도 조금씩 흩어진다.
후각은 개에게 가장 예민하고 어쩌면 세상을 알아차리는 첫 번째 감각일 것이다.
그런 감각 덕분에 인간 곁에서 친밀하게 살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주인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을 예감하는 일 또한 냄새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주인의 냄새가 희미해질 무렵, 옅어진 그 밀도가 바로 이 정도, 이때쯤이다 싶으면 ( 때로는 그 예감도 비껴가는 날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러하다.) 멀리서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후각만큼 예민한 청각으로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차린다.
현관문 손잡이에 손이 닿기도 전에
이미 문 앞으로 달려와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꼬리는 여느 때보다 분주하다.

꼬리를 흔드는 개를 볼 때면 가끔 생각한다.
꼬리가 몸을 흔드는 걸까
몸이 꼬리를 흔드는 걸까
어느 쪽이든, 힘찬 꼬리짓에 몸과 꼬리가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주인의 냄새를 맡는다. 주인이 벗어놓은 옷가지에서도,
공기 속에 흩어져 있는 잔향에서도 아닌,
바로 눈앞, 주인의 품에서 나는 냄새다.
개는 마음껏 행복하다.

옅어져 가던 주인의 냄새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다시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는 해와 함께 뉘엿 기울어도,
밤이 찾아와도 두렵지 않다.
잠든 주인 곁에서 온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잠들다 눈을 번득 뜨곤 하던 낮과는 다르다.
이제는 눈을 꼭 감고 단잠을 청한다.

고요한 밤을 지나 다시 밝아오는 아침,
분주한 주인 곁에서 개는 직감한다.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문이 찰칵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흔들리던 꼬리도 멈춘다.
짙게 남은 주인의 냄새가 옅어질 때까지 개는 한나절을 보낸다.
현관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기다림의 익숙함과 그리움이 배어 있다.


아침이면, 텅 빈 집에서 또 하루를 보내는 개에게 아침은 곧 기다림의 시작이다.
하지만 공기를 타고 흐르는 익숙한 냄새와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은
그 기다림의 끝이 슬픔이 아닌
기쁨임을 개는 알고 있다.


그 믿음이
아침을 지나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된다.


오늘 아침도

다시 한번 기다림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곧 다시 만날 테니까.




(저마다의 아침이 결국 기쁜 하루의 시작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