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꾸벅 졸다 눈을 뜨면, 머리 위로 하루 중 가장 높은 하늘의 해가 쏟아진다.
벌컥벌컥 목을 축이고 담장 위로 두 발을 올려 고개를 내민다.
산책에 나선 이웃 강아지, 옆집 아저씨, 건너편 꼬마가 지나가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월월, 인사를 건넨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에서 가을이 느껴진다.
물기를 머금던 공기는 가벼워지고 매미의 울음은 사라졌다.
귀뚜라미 한 마리가 나뭇잎에 매달려 바람 따라 흔들린다.
발로 툭, 건드리면 그새 저만치 달아난다.
배불리 먹고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쏟아지면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는다.
콧잔등에 살포시 앉은 나비 한 마리가 단잠을 깨운다.
가끔 길고양이가 밥그릇을 엿본다. 모른 척, 잠든 척 눈을 감아주면 살금살금 기어와 주린 배를 채운다.
가을길, 투둑투둑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는 굵은 빗방울이 내리는 소리 같다.
킁킁 가을바람이 실어오는 냄새에 까만 코가 연신 실룩거린다.
주황빛이 골목을 가득 채운다.
어둠이 내려앉고 거리의 조명이 켜지기 직전, 지는 해의 주황빛으로 물든 골목길은 지나가는 개, 고양이, 사람 그 모두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집집마다 열린 창틈으로 밥 짓는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흐른다.
골목 어귀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린다.
꼬리는 이미 세차게 흔들리고, 기다리던 주인이 열린 대문 뒤로 모습을 드러낸다.
콩콩콩 있는 힘껏 뛰어 주인을 반긴다.
짧은 인사는 달콤하다.
문이 닫히면 다시 혼자다.
내려앉은 어둠 속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더욱 환히 번진다.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
그릇엔 저녁밥과 시원한 물이 가득 찬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주인과 함께 밤공기를 맡으며 지나가는 하루를 배웅한다.
새벽이 오면 집 밖에 사는 개는 마당 한편에 몸을 웅크린다.
가까이는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멀리에는 밤하늘의 별과 달이 고요히 새벽을 비춘다.
잠결에도 귀는 깨어있다. 세상이 잠든 시간, 그 적막함 속에 바람결을 타고 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그렇게 새벽을 지나 동쪽하늘이 옅은 빛으로 번지면, 개의 하루도 함께 깨어난다.
아침이 밝았다.
개는 행복하다.
세상은 환하고, 소란한 소리와 움직임, 흐르는 공기로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곧 기다리던 가족이 집을 나서면 꼬리를 힘껏 흔들며 달콤한 인사를 나눈다.
그것은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 하루를 견디게 하는 이유가 된다.
매일 반복되는 것의 안도와 행복은, 어쩌면 그런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반복 속에서도 안도와 행복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