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하늘을 뒤덮은 잿빛 구름이 가득한 날,
환한 빛과 흰 구름이 흐르던 푸른 하늘은
회색 구름 뒤로 잠시 자취를 감춘다.
흐린 날은 화창한 날과는 또 다른 위로를 건넨다.
생기 가득하던 거리는 차분해지고,
창가에서 모래알처럼 반짝이던 빛은
푸른 기를 머금은 채 고요히 가라앉는다.
쉬지 않고 돌아가던 화면 위로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파란 하늘이 회색 구름 뒤로 숨은 날은
잠시 멈춰 숨 고르기 좋은 순간이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처럼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는 가로수도
흐린 날에는 온전히 자신의 빛깔로 서 있다.
한낮의 화사한 빛도 잠시 쉬어가는 날,
회색빛이 세상 가까이로 내려앉으면
그 고요함 속에 마음에도 휴식이 깃든다.
이런 날은 조금 천천히 걸어도 좋겠다.
몸과 마음이 분주하던 하루 일과에
잠시 쉼을 넣어도 허락될 것만 같다.
사람과의 사이도 한 발짝 물러나
여백을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 하여
맑고 푸른 하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회색 구름이 걷히면
그 자리에서 낮에도 밤에도
다시 제 빛을 띤다.
사람의 마음도 늘 맑은 날만 있지는 않다.
먹구름이 순식간에 파란 하늘을 덮듯
우리 마음에도 흐린 날이 찾아온다.
잔뜩 흐린 날의 고요함처럼
마음이 흐린 날에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고이면
시야는 흐려지지만
그럴 때에야 비로소
더 또렷이 깨닫고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흐린 하늘이 주는 고요와 여유가 있듯,
마음이 흐린 날에도
오히려 분명해지는 마음과 생각이 있다.
언제나 화창한 날만 있다면
그날의 기쁨은 과연 빛났을까.
매일이 파란 하늘이었다면
우리는 그 맑음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구름이 해를 가리고
거센 비바람이 불고
안개가 자욱해도
묵묵히 지나고 나면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얼굴을 내민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날도 그렇다.
때론 잔뜩 흐리고
눈물이 흘러 앞을 가려도
결국은 지나가고
기쁨은 더욱 선명해진다.
흐린 날에는
그런 날대로 빛이 있다.
회색빛도 빛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빛을 품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
흐린 하늘이 유난히 반가운 아침입니다.
화창한 날도, 흐린 날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지나온 하루라면 그 자체로 충분히 잘 살아낸 하루겠지요.
그 모든 날들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