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비석마을에서
나는 오래된 골목을 걸으며 그곳에 깃든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비슷해 보이는 골목도 그곳에 사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하다.
부산대학교 병원 앞에서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여름은 참으로 더웠다.
등 뒤의 배낭은 더위로 더욱 무거워졌다.
교통앱이 있으니 얼마나 여행하기 좋은가? 혼자 훌쩍 다니기 참 좋은 세상이다.
2박 3일을 계획하고 비석 마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 중에 골목골목을 천천히 다녀볼 요량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차를 타지 않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안내표지판을 통해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노선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변 분에게 묻는 것이 손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마침 버스를 함께 기다리는 아주머니는 내 모습이 이방인의 모습으로 느껴지셨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경상도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그것은 말투에 의해 오해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길을 물으면 다시 돌아와서 특유의 사투리로 어찌나 상세히 설명을 해주시던지, 그래서 정겹다.
꼬불꼬불 산만디를 올라가는 2번 버스에 올랐다.
부산은 산이 많은 도시라 산 쪽에 형성된 마을이 많다. 웬만큼의 운전실력이 아니라면
이 산만디를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언덕의 커브를 돌 때마다 손잡이를 쥐고 있던 사람들의 손과 발에는 힘이 모인다.
꼬부랑 노래가 절로 나온다.
옹기종기 모인 마을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가까이서 보는 바다, 멀리서 보는 바다, 잔잔한 바다, 휘몰아치는 바다,
어둠을 머물고 있는 바다, 빛을 발하는 바다,
그냥 좋다. 골목의 습습함이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집은 와 나왔노?’
골목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 나의 등 뒤에 있는 커다란 배낭을 보고,
마을 초입에서 낯선 이방인을 계속 지켜보셨던 두 할머니 중에서 한 분이
한마디 툭 건내신다
집 앞의 평상에서 더위를 피하고 계셨으리라. .
‘집을 나온게 아니라........할머니는 이 마을에 오래 사셨어요?’
한마디 물었을 뿐인데 봄물처럼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이방인의 방문이 반가웠는지 나의 모습 중에 어딘가 어설픔이 보였는지 두 할머니의 눈은 따뜻한 시선이다.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이 세월을 말해주었지만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가득한 두 할머니의 등장은
낯선 동네에 들어선 나에겐 반가움이었다.
골목 주변의 풍경은 좁은 길 사이로 단독 주택들이 형성된 곳이 많다.
특히 이곳에선 빌라로 개조된 곳보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많아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60년 이상 이 마을에서 살고 있고, 자식들은 모두 경기도, 대구 등 타지로 가 살고
언니와 함께 이곳에 지내고 계신다고 한다.
모처럼의 말 상대가 나타나 반가우셨는지, 아니면 외지인에게 하나라도 마을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는지
두 할머니는 마치 소녀처럼 옛이야기를 풀어 놓으신다.
세월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만큼 생동감 있는 것이 있을까?
시간의 제약이 없는 나로서는 호기심 쫑긋하며 할머니의 시간 속 여행에 빠져든다.
마침 출출하던 차에 주변을 둘러보니 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보였다. 함께 드시자고 했다.
이방인의 청에 부담스러우셨는지 마다하시더니 내 눈빛이 간절했는지 그러자며 일어나셨다.
“집은 작아도 맛있다. 할매 음식 솜씨가 좋다”
테이블이 세 개인 작은 식당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이미 식사 중이셨다.
다들 아시는 분이신지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이곳에서는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에 부산에 최초로 무역항을 개항한 일본은
각 지역에 흩어진 무덤을 이곳 아미동으로 옮기게 되었고,
해방된 후 일본인의 묘지는 방치 상태로 있다가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으로 몰려드는 피란민들을 위한 거처가 필요했고
난리 통에 뭐하나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공동묘지 위에 그대로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비석이나 상석을 마을의 계단이나 바닥 담장 문지방 등에 그대로 사용하여 집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안쪽으로 쭉 한 바퀴 돌아보면 비석을 여럿 볼 수 있을끼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스통 아래에서도 보일끼다.
저 앞에 사는 누구네 집에 스님이 비석 팔라고 왔다던데 안 팔았다고 카더라.
아무리 일본 사람이라도 망자에 대한 예의라 못 팔겠다고 카대..."
옛날에는 자갈치 시장 쪽으로 물을 이고 다녔다는 이야기, 버스가 없어서 걸어 다닌 이야기.
”지금은 세상 좋다 아이가?“
"‘여기는 할배도 별로 없고 전신에 할매 뿐이다"
‘비 오는 날에 창문을 열면 귀신 소리가 들린다. 요즘에도...’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할머니의 표정이 발랄한 소녀 같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좁디좁은 미로 같은 골목을 걸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골목을 빠져나와 비석 문화마을 체험센터에서 만난 well dying...
분주하게 준비하시는 직원분께서 현재 체험센터에서 준비하고 계시는
well dying 프로그램에 설명해 주셨고,
나의 미래에 반드시 있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수의를 짓고 있는 상점도 보인다.
다른 골목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감천마을로 가기 위해 비석 마을 끝자락에 만난 브런치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시는 할머님들의 모습도 무척 정겹다.
그렇게 과거는 가고 미래는 다시 올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픈 기억도 언젠가는 따뜻한 추억으로 이야기할 날이 온다.
현재의 아픔이나 고통을 견딜 힘은 과거 속에 배울 수 있으며,
그 힘이 우리 미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골목길을 걸으며,
나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비석문화마을의 well-dying 프로그램은 나에게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닌,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수의를 만드는 상점,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평온한 미소, 그리고 감천마을로 향하는
길목에서 느낀 정겨운 분위기까지 모든 순간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내 마음속에 남았다.
삶은 계속 흐르고, 과거의 아픔도 결국엔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미소 지을 날이 오겠지.
이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만든 특별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