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제 아부다비의 도로를 달려보겠어요!” 친한 동생의 한마디에 마라톤을 덜컥 신청한 것이 두 달쯤 전 일이다. ‘그래. 언제 도로를 달려보겠어! 집 앞에서 출발한다니 금상첨화네!’
의욕은 넘치고, 동기부여는 됐으나, 현실감각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평소 걷는 것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뛰는 건 달랐다. 2분만 뛰어도 호흡이 가빠졌고, 이내 헐떡였다. 가슴이 따끔하고, 땀이 줄줄 나는 것이 영 내 체질이 아니었다. ‘그래. 마라톤이라고 뭐 다 뛰냐. 난 걷는다!’
집 아래 있는 체육시설 러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처음 30분을 빠르게 걸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쇼핑몰에서 2시간 걷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빠르게 10분을 움직여야 1킬로미터를 걸었다. 그러니 10킬로미터를 걸으려면 1시간 40분을 쉬지 않고 같은 속도로 걸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제야 내 수준을 알게 됐다. 도로 물리고 싶었다. 남편에게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쳐놨으니 이제 와 딴소리를 할 순 없었다. 오기가 발동됐다. ‘앞으로 두 달 남았으니 매일 걷자! 체력을 키우는 거야!’ 그러나 작심삼일이다. 매일 걷기로 한 다짐은 그 날의 상황에 따라 흐지부지 된 적이 많았고, 허리가 안 좋아져서 누워 지내야 했다. 체력이 좋아졌으리 만무하다.
두 달이 훌쩍 지났다. 마라톤 일주일 전부터 도로에는 깃발이 나부꼈고, 마라톤을 주최하는 회사 마당은 저녁마다 열린 이벤트로 북적였다. 이제라도 뛰어야 하나? 마음이 조금 들썩였다.
마라톤 당일이다. 드디어 출발! 주변에서 울리는 나팔소리와 사회자의 우렁찬 기압소리에 저절로 뜀박질이 시작됐다. 흥분과 설렘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주변 분위기에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겅중겅중 뛰고 있었다. 허나 얼마 가지도 못하여 저질체력이 드러났다. 남편과 나는 걸었고, 내 뒤에 뛰던 사람들이 앞질러 갔다. 즐기기로 했다. 빨리는 못가더라도 완주는 하자! 도로 위를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가쁘던 호흡이 잠잠해지자, 다른 참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발에 의족을 한 청년과 보조를 맞춰 걷는 아가씨가 보였다. 그를 추월하여 뛰어가는 아저씨는 두 손으로 엄지를 날렸다.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엄마도,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 헤드셋을 끼고 꿋꿋하게 뛰는 젊은 여성도 있다. 한국인 커플도 눈에 띄었다.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 정말 최고예요! 거의 다 왔어요! 잘하고 있어요! 대단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뛰어봐요! 어메이징하네요!” 응원과 환호를 보내는 자원봉사자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종이에 응원 메시지를 적어서 흔드는 가족들도 있다. 엄마를 응원하는 아이들, 아이를 응원하는 아빠도 보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뛰고 응원하는 모습이 활기 넘치고 신선했다.
옆 라인에는 42.195킬로미터 완주코스를 뛰는 주자들이 있었다. 선두를 달리는 선수들은 사슴처럼 가늘고 긴다리로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뛰고 있었다. 군살 없이 착 붙어있는 근육만 봐도 얼마나 고된 훈련을 했을지 알겠다. 방송 차량과 응급 차량이 에스코트하며 뒤따라가고 있었다. 멋지다.
10km는 완주했고, 기념메달도 받았다.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을 더 많이 했는데도 발바닥이 타는 것 같았다. 고관절이 삐걱거리고 허벅지가 지끈하다. 발을 질질 끌며 집까지 왔다. 체력을 키우자고 한 마라톤 때문에 뼈가 어떻게 된 것 같다. 며칠을 앓아 누웠다. 그런데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기록을 단축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