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상자를 발로 툭 찼다. 뚜껑을 열고 닫고 몇 번을 하다가 코코아색 실을 골랐다. 그래니 스퀘어라는 사각형 가방을 뜰 참이다.
코바늘 뜨개는 아부다비에 와서 시작한 취미생활이다. 요가 수업에서 한국 아줌마를 만났는데 귀여운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딱봐도 핸드메이드다. 알고보니 한국 전통복식을 전공한 한복전문가였다. 자기 집으로 와서 같이 뜨개질을 하자는 초청을 해주었고, 그 이후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아부다비 뜨개방이 열렸다. 워낙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하는데 계기가 생겨서 신났다.
컵받침으로 시작해서 미니바구니, 손가방, 삼각숄, 수세미까지 하나 둘 내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친절한 유튜버의 설명을 따라 짧은뜨기, 긴뜨기, 두줄 긴뜨기, 빼뜨기로 실을 연결하다보면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된다. 둘둘 말려있던 실뭉치가 어느새 심지가 보일만큼 줄어든다. 오늘은 요만큼만 떠야지 하다가도 조금만 더 욕심을 낸다. 엄지손가락에 군살이 배겨도 아픈걸 이겨내며 계속하게 된다. 완성된 모양이 빨리 보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지면 꼭 잘못 뜬 곳이 생긴다. 과감하게 다시 풀어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마음에 들때까지 풀고 뜨고를 반복한다. 실이 꼬이고 꼬여서 만들어지는 모양을 보면 대견하고 신기하다.
처음엔 뜨개질을 하면 마냥 행복하고 즐거울 줄 알았다. 무료한 시간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자꾸 속이 시끄럽다 ‘이렇게 시간을 죽여도 되는 건가? 이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이걸로 업을 삼을 것도 아니면서 왜 이걸 놓지 못하나? 이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나?’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여기 와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 남편이 말했다. 애들키우며, 직장생활하며 바쁘게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시간 없어서 못했던 것들을 여기서 다 해봐야지!’ 라고 다짐했고, 좋은 취미생활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다. 시간을 낭비하고 허투루 보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더해진다. 부대끼는 속마음은 모른척할수록 자꾸 쫓아와서 고개를 내민다.
그런데도 왜 이걸 놓지 못하냐구? 한국에서부터 항공택배로 온 실뭉치들이 항공료가 아깝지 않냐며, 빨리 작품으로 탈바꿈시켜달라며 아우성친다. 뜨다보면 중독이 된 듯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마지막 코를 뜨고 실마감을 하면 성취감이 있다. 완성품을 보면 내 새끼마냥 예쁘고 뿌듯하다. 시간을 과소비한 괴로운 마음이 잉태된 듯 하다. 뜨개 이웃들과의 수다 시간이 즐겁다. 아! 뜨개질이 좋다!
두 마음이 시소를 탄다.
전업주부로 취미생활을 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 시간을 맘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자꾸 불안해진다. 2년 후쯤, 한국에 돌아가서 “넌 그동안 뭘했는데?”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살았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머릿속의 복잡한 실타래의 가닥을 잡아 코바늘로 같이 떠버리면 좋으련만.
오늘은 딱 한시간만 뜨개질을 해야겠다. 코코아색 가방이 완성되면 속이 후련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