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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Feb 04. 2022

그리운 한국 향기-핸드드립과 모카빵

아부다비에 온지 한 달 정도 되었다.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되니 익숙했던 것들에 대해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중 하나는 동료선생님이 내려주시던 드립커피이고, 다른 하나는 모카빵이다. 


송바리스타라 불리던 선생님은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주셨다. 진한 향이 교사실 전체를 휘감았다. 익숙하게 마시던 커피 향과 맛이 아른거렸다. 빨리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그 기억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면 근 3년을 끊어왔던 믹스커피에 손을 댈지도 모른다. 아마존에서 핸드드립세트와 원두를 주문했다. 송바리스타가 드립을 해줄 때마다 신나서 쳐다보던 기억을 소환했다. 그 때 선생님이 해준 말들을 떠올리며 분쇄정도를 조절했다. 필터를 깔고 원두를 넣고 90도 정도 되는 물을 한 방향으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드립한다. 하얀 거품이 크림처럼 올라오는 것이 마치 바리스타가 된 기분이다. 방울 방울 커피가 내려지고 있다. 한 입 맛을 본다. 우엑! 쓰다! 진짜 똑같이 한 것 같은데, 쓰기만 하다. 전에 선생님이 내려주던 커피는 처음엔 살짝 신맛이 있고, 끝으로 가면서 구수한 맛이 나는 것이 호로록 호로록 아껴 마실 만큼 맛있었는데, 뭐가 잘못 된걸까? 



여기저기 검색해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바리스타들의 핸드드립 스킬들이 있었다. 아!  그냥 따라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커피 원두의 신선도, 로스팅 단계, 분쇄 사이즈. 드립필터의 종류, 물의 온도, 시간, 추출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복잡하다. 그 복잡미묘한 과정에 매력이 있나보다. 원두 종류는 왜이리 많은지 다 도전했다가는 카페인의 중독에 빠질꺼다. 사실 250g짜리 원두 봉지가 비워질 때마다 ‘이 카페인들이 다 내 몸속에 들어갔구나’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그러다가도 얼추 기억속의 맛과 비슷해지면 행복하다. 이제는 내 식대로 커피를 내린다. 쓰면 시럽을 넣고, 우유를 섞는다. 하루는 뜨뜻하게, 하루는 시원하게, 원하는 만큼 꿀떡꿀떡 마실 수 있어서 좋을 뿐이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는 모카빵이다. 이곳에도 빵은 넘쳐난다. 하지만, 한국빵집에서 파는 그 모카빵이 없다. 겉은 쿠키처럼 살짝 바삭하면서 건포도가 사이사이 박혀있는 갈색모카빵. 손으로 뜯어 먹는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시간있고, 오븐도 있으니 '한번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빵을 해본 적이 없어서 기초부터 공부해야 했다. 검색 스타트! 호주가이버라는 유튜버를 찾았다. 본업이 제빵사는 아니지만 빵만드는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제빵도구들부터 구입했다. 밀가루와 물, 이스트, 소금, 설탕을 섞어 발효시키는 과정은 신기하다. 반죽을 해서 50분정도 지나면 이스트가 작용해서 부풀어오른다. 반죽을 꺼내 가스를 빼고 다시 발효시킨다. 간단한 과정은 아니지만 처음 계량만 잘 하면 얼추 빵이 만들어진다. 겉바속촉의 모카빵이 만들어진 날은 신이 나서 '오홍오홍' 웃음이 절로났다. 두 손으로 반을 갈라 김이 모락모락나는 빵의 결을 띁어 한 입먹으면서 딸과 눈이 맞추쳤다. “역쉬! 엄마!”



여세를 몰아 모닝빵, 파파로티번, 시나몬빵, 치아바타를 만들고, 피자까지 구웠다.. 딸 친구네도 가져다주고, 이웃과도 나눠먹었다. 인도계의 딸 친구는 학교 앞에 피자가게를 열어달라고 했다. 전문가 솜씨는 아니지만 직접 만들어 먹으니 기냥 맛이 좋다. 좋은 밀가루를 쓰고 설탕도 적게 넣으니 담백하다. 크기나 모양은 제각각이다. 단점은 부지런해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몇 시간전부터 반죽을 준비해놔야 한다. 밀가루로 범벅이 된 부엌을 보며 한숨 한번 쉬는 것은 덤이다. 


아부다비에 수많은 카페와 빵집이 있다. 그저 내 기억속의 그 커피와 빵이 없을 뿐이다. 한국이라면 당장 문열고 나가 사먹으면 그만인 것들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허나 기억속에서 맛과 향을 더듬고 흉내내려 애쓴 덕분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했다. 똑같지 않아도, 전문가는 아니어도 어렴풋이 한국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위로를 받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놀러온 누군가에게 직접 구운 모카빵과 드립커피 한 잔은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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