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조건
“마지막 질문인데요. 박 기자님의 5년 뒤를 예상해보면 어떠신가요? 그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 거 같나요?”
기자가 내게 물었다.
5년 뒤라면 내가 마흔 살에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 나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이 든 나의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
“제발 집에 좀 가쇼.”
안면이 있던 형사가 지나가며 한 마디를 던진다.
나는 소파에 누워 눈을 감은 채 경찰서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취재거리는 단 한 가지뿐이다.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마포대교, 한강대교, 고층빌딩의 옥상 등 어디든 나는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나는 자살 전문 기자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자살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거다.
언뜻 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알리는 정의로운 기자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나와 아주 먼 이야기이다. 나는 정의로운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길가다가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재빨리 도망가거나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못 본척한다. 괜스레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이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백발노인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요즘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침, 그곳에 있던 남자는 그 학생과, 노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여자들뿐이었다.
썬 캡 위로 보이는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아줌마, 검은색 유광 하이힐에 무릎을 살짝 덮는 검정 미니스커트, 흰색 블라우스 (내 성적 취향에 가깝다)로 도시적 멋을 낸 아가씨, 그 외 몇몇의 여성들이 그 학생의 행동을 꾸짖고 있었다.
세상은 말한다. 사람들은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 누군가 곤경에 처해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말은 모두 미디어의 장난질이다. 아직 정의는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학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꾸짖는 여성들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주먹으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그때까지 나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MP3는 꺼놓고 귀를 쫑긋 세우며 그들이 만드는 한 편의 뮤지컬을 감상하고 있었다.
기자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음악가나 작가 등은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을 보고 느끼는 것을 예술로 만들지만 기자는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대중에게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어쩌면 그래서 삶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때까지 내게 어떤 불똥이 튈지 알지 못했다. 아주 멀리서 마그마가 흐르는 화산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 남학생은 악마가 되어 있었다. 점차 이성을 잃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당하던 여성들도 이성을 잃은 한 남자 앞에서는 속수무책 일뿐이었다.
그 학생이 한 여자를 발로 힘껏 차자 여성은 그 자리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그때 모든 여성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여성들의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들의 간절한 눈빛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출입문 쪽으로 돌렸다(아주 천천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 모습이 검은 창에 비쳤다. 검은 머리는 귀를 덮고 있었고 얼굴은 피난민 수준으로 비쩍 말라있었다. 눈매는 마치 칼로 찢어놓은 것처럼 매서웠다.
‘딱 범죄자 같군.’
이런 내 모습에서 그들은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나는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내게도 정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게 귀찮았다. 나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데 다른 이를 구할 수 없었다.
나는 MP3의 전원 버튼을 다시 켰다. 그리고는 볼륨을 계속 올렸다 내 귓가에는 음악만 울려 퍼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I heard you on the wireless
back in fifty two
Lying awake intent at tuning in on you
If I was young
It didn't stop you coming through
....... Video killed the star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나는 앞발을 까닥거리며 리듬을 맞췄다.
음악이 끝나 갈 즈음 소란스러운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지하철은 멈춰있었고 역 직원들과 공익 요원들 그리고 잠시 후, 경찰까지 몰려들었다.
그 사이로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피로 얼룩져 심하게 망가져 있었고 온몸은 마치 죽은 낙지 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때마침 119 가 도착해 그녀를 들것에 옮겨 재빨리 사라졌다.
그리고 가해 학생도 경찰에 연행되어 사라졌다.
충격을 입었는지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은 넋이 나간 듯 역 직원들과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그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한 여자가 다가와 있었다. 검은 하이힐에 미니스커트, 바로 아까 보았던 그녀였다.
그녀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강렬한 눈빛을 피하느라 눈을 이리저리로 돌렸다. 칼날 같은 날카로운 코와 진한 화장의 그녀 모습은 다소 퇴폐적인 성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명품 향수의 진한 향기가 그녀의 성적 매력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그 순간 향기가 박살 나듯 나는 눈을 떴다.
그녀는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미친놈!”
그녀가 한 마디를 내 얼굴에 던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녀 역시 그 간절한 눈빛들 중 하나였으니까.
<여성 매거진>
2013년 8월
누군가의 죽음을 취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그 사람의 눈에 비친 마지막 존재가 되는 것’ 은 그다지 아름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마치 섹스나 마약에 환장한 사람처럼 본 기자를 죽음에 중독된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그건 그들이 그렇게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리 슬퍼하지도 않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간 사라지기 마련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죽음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들을 남들보다 한 발짝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그것으로 비난을 받는다면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