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나는 나이 든 나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2. 죽음의 끝에서

by 박시원

죽음의 끝에서

프롤로그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일어날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우리가 삶을 사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생물학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뿐일까?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가끔 이러한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지곤 한다.

물론 그 해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혹은 평생을 그러한 고민에 빠진다.

우리의 평범한 인간의 삶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공포들이 있다.

우리 사는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화려한 서울에도 한겨울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방바닥에 이불 하나만 깔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 깔끔한 정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도 남모름 고민이 있다. 바로 오늘내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생활이다.

하루에 15시간을 공부하고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비참한 학생도 있다.

혹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죽음의 공포는 없다. 다만 삶의 처절한 공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 어떤 것도 중요치 않다.

단지 오늘, 내일의 삶을 위한 삶뿐이다.

우리에게 공포는 다름 아닌 사라져 버리는 무의미한 것들뿐이다.

우리 모두의 몸에는 보이지 않는 끈들이 묶여 있다. 끈이 느슨해지거나 풀려버린다면 우리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그 보이지 않는 끈을 팽팽하게 잡고 유지시켜주는 것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끈을 잡고 있다. 또 누군가는 내 몸에 묶인 끈을 잡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끈을 잡고 삶이라는 외줄 위에서 평온한 듯 위태롭게 살아간다.

인간의 대부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고 싶어 하는 무의식이 있다. 이 말은 즉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두려움은 죽음이 아닌 죽음 앞에 무의미해지는 것들이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는 '죽음의 끝에서' 가 시작되고 여성으로는 3번째, 남녀 총 6번째 대상이 되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비가 눈물처럼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2009년 2월

올해도 어김없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벗지 못했습니다.

KBS 뉴스 …….

뉴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방송되고 있었다.

봄이 오면 몇몇 프로그램들은 개편으로 인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방송될 테고 또 혹시나 시청률이 저조하다면 언제든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방송 프로그램의 운명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뉴스’ 가 될 것이다.

매일매일 방송되는 뉴스는 우리에게 절대로 ‘지루함’이라는 단어를 주지 않는다.

살인, 납치, 자살, 어린이 성폭행 , 정치 공작 , 음모 등등

우리를 유혹하는 온갖 요소는 다 있어 마치 어릴 적 받았던 과자 종합 선물세트 같다.

뉴스를 보는 것은 어느새 오랜 습관이 되어버렸다. 단지 뉴스만이 나의 인생에서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뉴스가 사라지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을 때가 있었는데 뭐, 이 세상에 인간이 살아가는 한 뉴스가 사라질 리는 없지 않겠는가.

삶은 자극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좀 더 잔인하고 극단적인 이야기들로 점철된다.

15평의 반 지하 집에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한 평면 TV, 문을 닫으려면 손발을 모두 이용해 몇 분을 시름해야만 하는 작은 냉장고(썩은 냉동식품만 한가득 들어있는),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색이 바랜 인조가죽 소파, 어쩌면 이모든 것들이 내게는 과분할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녀는 내게서 떠났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 집에서 나온 거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걸 당신이 초래했다는 사실이야.”

“당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어. 아니, 지금도 그 일이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우리 관계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도통 모르겠거든.”

그녀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서있는 내가 한없이 작아진 기분이었다. 마치 홀딱 벗고 거리로 내몰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 역시 그녀에게 당당히 맞섰다면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안에는 늘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집단이 존재한다.

이미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가 받아들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아직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은 안 된다는 거야.”

“미안해. 지금으로썬 자기에게 이 말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거야.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당신이 이 집에서 나가면 우리는 그냥 좋게 마무리되는 거야.”

‘마치 없었던 일처럼…….’

“혼인신고하지 않았다고 우리가 부부가 아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녀가 내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아니, 우리는 이제 부부가 아니야. 이제 모든 게 끝이야. 우리는 이제 그만 정리해야 해. 나도 알고 당신도 이미 알고 있어. 언제까지 모른척하며 지낼래?”

‘할 수 있는 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는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도 고개를 돌려 창문 밖 나와 같은 곳을 바라봤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경찰서 출입 기자를 끝내고 청와대 출입기자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후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나를 그때 처음 만났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녀를 그때 처음 만난 게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들은 종종 학벌을 이용해 여자들과 미팅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억지로 끌려 다녔다.

하나같이 영심이를 졸졸 따라다니던 왕경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눈을 반쯤 가린 긴 머리와 새하얀 피부 때문에 여자들에게 특별한 시선을 받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내가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학생의 모습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로 인해 많은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를 늘 옆에 두려고 했다.

나는 솔직히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좋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런 친구들의 학벌 때문에 접근을 마다하지 않는 여자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야! 너는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라. 여자는 마치 물 같은 존재야. 약간의 변화만 주면 쉽게 변하거든. 얼어서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또 약간의 변화를 주면 아주 쉽게 녹아내리기도 하니까. 또한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지.”

친구의 궤변을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이 세상에 남자만 있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끔찍해. 특히나 밤에(음흉한 미소). 그나저나 너는 그래서 연애나 제대로 할 수 있겠니.”

친구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비웃었다.

사실 학창 시절 나는 그리 유쾌하거나 밝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과 그리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는데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있는 걸 즐겼던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늘 혼자였다.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식까지 누군가의 꽃다발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늘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잠이 들었으며, 심지어 몹시 아팠을 때도 나는 혼자였다.

인간의 자아정체성은 유년기에서 청소년기에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나란 존재는 불투명했고 철저히 없었다.

한 친구는 외모가 엄청나게 출중한 신입생이 들어온다는 소문을 어디서 들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야 넌 왜 이렇게 모르냐? 그 정도 여자는 홍대 가면 널린 거 몰라?”

“넌 걔가 누군지 알아?”

“모르지. 근데 뻔하지.”

‘어느 과 누가 몸매가 기가 막히데’, ‘얼굴이 연예인 누구 닮았다던데’ 하는 말들은 돌고 돌았지만 항상 결과는 뻔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매번 실망을 하면서도, 마치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사람들처럼 또다시 관심을 보였다.

평범한 외모의 여자만 봐도 마치 ‘미스코리아 진’을 본 것 같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곳이 바로 우리 학교였다.

하지만 학생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로 들어온 신입생은 마치 소피 마르소를 연상시키는 청순한 얼굴과 모니카 벨루치의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한 여자에게 아름다운 얼굴과 풍만한 가슴, 두 가지를 다 주는 것은 반칙에 가깝다.

은은한 갈색에 웨이브를 살짝 넣어 길게 늘어트린 머리, 새하얀 블라우스 검은색 치마, 살색 플랫슈즈를 신은 그녀의 청순한 모습은 아주 깊은 곳에 숨겨진 나의 성감대를 송곳으로 마구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처음 본 후, 매일 밤마다 현실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그리며 침대를 축축하게 적셨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녀는 꽤나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다. 그리 나서지도 않았고 조용한 편이었다.

수업을 듣고, 그 이외의 시간은 주로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옆에는 항상 이런저런 사람들로 넘쳐났다. 마치 연예인을 보 듯 그녀를 보려고 도서관 앞을 서성이는 남자들, 그녀의 친구들로 보이는 몇몇의 여학생들은 마치 자신들이 여왕의 호위무사라도 된 것 마냥 고개를 바짝 쳐들고 다녔다. 그리고 권력을 남용하기도 했다(하긴 그녀들의 목적도 그것 이었을 테지만).

하지만 그녀는 항상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고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 그녀는 그 어떤 남자와도 사귀지 않았다. 최소한 내가 아는 바로는 그랬다.

내게도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 는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신비한 존재처럼 느껴졌으니.

우리가 마주친 시간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기억하기로는 없다.

멀리서 그녀가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 식당에서 밥을 조심스럽게 먹는 모습,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 그녀의 모습 전부였다. 누군가 다가오면 그녀의 친구들이 먼저 나서서 제지하곤 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졸업하고 난 후에도 난 가끔씩 그녀를 떠올렸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적이 또 있었을까, 그녀는 나의 관심을 받았던 단 하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그녀를 남몰래 흠모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을 뿐이리라.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국내 굴지의 신문사에 합격했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성적도 좋았다.

철저하게 아무것도 없었던 나의 인생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바로 성공 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족, 친구,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현재 삶을 벗어난 삶을 살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아였지만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왜 이런 삶을 내게 주신 겁니까!’라고 하며 누군가를 격하게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부모가 어느 순간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것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받아들였고 고아원에 들어가기 싫어 홀로 설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친척집을 전전한 것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녔고 마음 편히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본 적도 없었지만 그것들 역시 받아들여만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 고 있었다.

인생이란 자신의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살아갈 수 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과는 결국 하나뿐이다.

결국 양쪽 갈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막다른 골목에서는 한 가지 선택만이 존재한다. 죽이거나 죽거나. 그 시절 나는 매일 막다른 골목에 서있었다.

경찰서란 곳에 던져진 나의 첫 기자생활은 한마디로 엿 같았다. 그것도 정글 한 폭판 같은 강력계.

나는 비록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지만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명문대를 나왔고 언론고시라고 부르는 바늘구멍을 통과해 기자가 됐다.

하지만 경찰서를 출입하는 생활은 현재의 영광을 맘껏 누리며 앉아 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매일 새벽같이 경찰서로 출근해 이런저런 사건들을 체크하며 기사거리를 찾아내야 했다.

기자실에서 밤을 새우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고 심지어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늘 생각했던 조폭들에게까지 협박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온몸을 문신으로 도배한 조폭들이 사진 찍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에 흠칫 놀라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런 것들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하리꼬미 하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네?”

“새벽같이 나오고 이런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는 게 어렵지 않나요?”

나는 그제야 소파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기자가 되면 모두 다 거치는 과정이니까요.”

내가 불편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이 몇 개월이 기자로써 뿌듯함을 느끼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겁니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짓게 되는 그 불편한 표정은 어렴풋이나마 숨기고 싶은 나의 과거를 설명해준다.

기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잔재가 남아있는 표정부터 고쳐야 했다.

그것은 내게 새벽같이 나와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기사거리를 찾고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아주 위험한 일까지 다 일어나죠. 심지어 어느 형사 의자 위에 바지를 내리고 똥 싸는 여자도 보았다니까요.”

남자는 그 모든 것이 한심하다는 말투와 표정이었다.

“‘뿌듯함’이라 하면 그런 것들을 말하시는 건가요?”

내가 비꼬듯이 물었다.

“뭐, 그것보다 더 이상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긴 하지만, 때론 그런 것들도 좋든 싫든 다 추억이 될 거예요.”

남자의 나이는 나보다 많아 보였다. 40대 초중반 정도의 외모에 며칠 수염을 정리 못했는지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고 간이 안 좋은 사람처럼 누렇게 뜬 얼굴은 핏기가 돌지 않아 보는 사람도 어지럽게 만들었다.

어두운 색의 허름한 옷차림도 그의 얼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표정이 아주 안 좋아 보여서 말 한번 걸어 봤어요. 그런데 여전히 말도 없고 표정도 안 좋군요.”

“네.”

“기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을 아주 잘 갖추고 계시군요.”

“네?”

“혼자 말하지 말고 남의 말을 잘 들어라.”

“저는 잘 들어주는 쪽도 아닌 것 같네요.”

“자신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것도 없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고기 자다. 이름보다는 그냥 고 기자로 통했다. 혈기왕성한 신입기자들과는 달리 마치 마실을 나온 사람처럼 경찰서를 편안히 드나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기자계의 이단아로 유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부자 유적 기사 취재 방식을 강도 높게 비난했고 남들과 다른 취재 방식을 추구했다.

그는 말끝마다 출입처 취재 방식은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매번 뚱한 표정과 말투로 사람을 대했던 내게 그는 끊임없이 다가왔다. 나는 그가 왜 그리도 내게 먼저 다가와 주었는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신기하게도 나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으로 가까워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사람들의 도움 없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다짐도 그를 만나고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한참 대화를 하다가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과거는 이제 없잖아. 이제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인간답게!’라고 나를 타일렀다.

우리는 정신없이 사회비판적인 이야기를 나누곤 했고 때론 함께 취재를 나가기도 했다.

기자사회에서는 서로 특종을 뺏기지 않기 위해 눈치게임을 하듯 생활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물론 고 기자가 특종을 잡아도 내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고 기자는 내게 어떤 기사를 쓰는 게 좋은지, 어떻게 쓰면 좋은 기사가 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마치 떠나기 전에 모든 것을 주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서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가끔씩 내게 기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당장 때려치우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기자로써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며 칭찬하는 그이기에 나는 그 어떤 말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알게 되면 으레 물어보는 것들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가.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 사소한 것 하나 흘려보내지 않는 마치 보이지 않는 안테나가 달린 듯 동물적 감각이 살아 숨 쉬는 기자들이 모인 곳이다.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아도 나는 자연스레 고 기자의 과거를 알 수 있었다.

한때는 아주 잘 나가는 기자로 또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는 것이다.

왜 이혼을 한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그의 기자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확실하다.

인간의 삶이란 항상 다른 누군가로 인해서 흔들린다. 우리를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다.

그것도 우리가 의지했던 사람들, 우리가 미치도록 소중히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는 상처를 입고 그 결과 인생은 처참히 망가져 간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소중히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평생토록 그렇게 살 거라 다짐했다. 하지만, 어쩌면 고 기자를 만난 후부터 그 방식은 조금씩 흔들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혼 전의 고 기자는 지금과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주변 기자들은 그렇게 말했다).

항상 깔끔한 모습에 흐트러지지 않는 행동과 말투, 엘리트 기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은 모든 이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그는 없다. 현재 그의 모습은 그 당시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나는 고 기자의 예전 방송 모습을 찾아본 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겉모습은 물론, 그의 얼굴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거지 행색의 지금 모습과는 도저히 일치시킬 수 없지만 그래도 그는 변한 모습으로 삶을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지만 모두 드러내지 않고 살아갈 뿐이리라.

고 기자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우린 모두 아픈 과거가 있지만 그냥 모른 척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시간은 흘렀고 나의 첫 번째 경찰서 기자 생활은 1년 만에 끝났다. 그리고 내 인생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믿게 만들어준 한 사람, 고 기자는 여전히 경찰서에서 생활했다.

처음 사회에 발을 디딜 때 난 마치 야생에서 막 탈출한 독기 품은 사자 같았지만 이제는 온순한 양이되었다.

누군가와 절대로 가까워지지 않겠다는 것이 내 인생의 신념이었지만, 내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변해가는 나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었으니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인간의 삶이란 늘 불안정한 것이니.

고 기자는 내게 늘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해. 인간은 사랑을 해봐야 이 복잡 미묘한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거야. 사랑하기 전까지 자네는 그냥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 인간로봇에 불과하지.”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혼했어요?’

고 기자는 내게 사랑을 해야 비로소 ‘생각하는 인간’ 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받은 기억도 준 기억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서 기자 생활이 끝나자마자 나의 출입처가 정해졌다. 고 기자가 그토록 비난하던 그곳 청와대에서 출입처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지지해줬다.

그는 기자로써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얼마 후, 고 기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자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기자라는 신분으로 남아있는 것도 기적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청와대로 들어간 후에도 나는 꾸준히 고 기자를 찾아갔고 연락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유일한 친구는 고 기자 한 명뿐이었으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기자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나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궁금한 것이 있거나 대화 상대가 필요할 때면 나는 항상 그를 찾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내게 여행을 떠난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나는 약간의 공황상태에 빠져버렸지만 고 기자의 빈자리를 잊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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