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보이지 않는 끈을 잡아당기다
보이지 않는 끈을 잡아당기다.
나는 그녀와의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녀가 문자를 보내와 기존 약속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어렵게 찾은 카페에 들어서자 장소를 변경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카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조용했다. 하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좋았다.
실내는 아늑한 느낌의 오렌지색 조명등이 통로 양 옆으로 작은 유리알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다.
창가에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 혹시…….”
“앉으세요.”
그녀는 내가 누군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앉으라고 말했다.
물론 나와 약속했으니 그 시간에 내가 나타나 말을 걸어올 확률은 95% 이상 되겠지만.
“김서연 씨…….”
“네, 맞아요.”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얼굴이 그리 우울해 보이지도 않았고 인터뷰 중에 이상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봤고 만나자마자 거절했던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 중에서도 인터뷰 기간 중 이상행동으로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죽음의 끝에서를 쓰면서 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 명이 선택되고 기사화되기까지 적게는 몇 주에서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쉽게 펜대를 휘갈긴다고. 나는 최대한 사람들의 진심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난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다. ‘나의 진심은 그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오해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이 보는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 일 수 있으니.
“유명하신 분을 이렇게 실제로 보니 반갑네요.”
순간 굳어진 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괜찮아요. 근데 제가 그렇게나 유명한가요? 한눈에 알아볼 만큼…….”
“뭐, 아무래도 그렇겠죠.”
말투와는 다르게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와 표정.
“근데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던데요.”
“사람들은 쉽게 잊잖아요.”
유명? 그렇다. 나는 꽤나 유명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시골 잡지사까지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니까.
물론 기분 좋은 유명세는 아니다. 잡지사는 뒤에서 미소 짓고 있겠지만(내 앞에서 대놓고 웃기도 했다) 나는 아니다.
“비가 구슬프게 오네요.”
그녀가 창문에 맺혀있는 빗방울을 손으로 세어보며 말했다.
“네.”
그다지 시간을 들이지 않은 듯 지극히도 평범한 헤어스타일, 하지만 그녀가 의자에 앉는 순간 그녀의 화장품(파운데이션) 향기가 났다. 누군가는 여성의 분 냄새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향기라고나 할까.
어쨌든 달콤한 향기가 났다.
그녀는 청바지에 회색 집업 카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남의 옷을 입고 나온 듯 그녀와 썩 어울리지 않았다.
“저한테 기본적인 정보부터 알려주셔야 해요.”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비즈니스 마인드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 이름 아시잖아요. 그리고 별다른 건 없어요. 부모님은 없고, 친구도 별로 없어요. 그냥 외로운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전혀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얼굴빛도 밝았고 무엇보다 처음 본 순간 생기 넘치는 그런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못 본건가…….’
어느 순간부터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사람을 보는 즉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자살 가능성을 확률로 나타낼 수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자살 확률은 15%. ‘죽음의 끝에서’에서 다뤄진 사람들의 평균 자살 확률은 43%.
수치상으로 보면 그녀는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아니면 내가 감이 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장남 삼아 전화하는 사람도 있었고 메일로 온갖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언론에서 엉망진창 구겨져 버린 후, 세상에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하지만 비난이 익숙해질 때쯤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기묘 한일들로 인해 나란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 빠르다. 누군가를 잊는 것도 너무 빨라서 때론 섭섭하기도 하다.
그녀가 세상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나를 찾아왔다. 언론에 공개되고 수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물론 절벽 끝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자신들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포장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내게 문의를 해왔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으면 좋겠지만 세상의 잣대는 우리와 많이도 다르다.
그녀가 원하는 것도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주길 내게 바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유년시절은 어땠어요?”
“근데, 그런 것들이 꼭 필요한가?”
그녀는 은근히 말이 짧았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긴 하죠. 근데 제가 기사를 쓸 때는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긴 하거든요. 과거도 중요하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현이지만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했지만 분명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갑자기 배가 아팠다.
“저기……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네.”
재빠르게 일어서는 순간........ 찰나의 순간, 그녀의 얼굴 표정이 내 두 눈에 들어왔다.
‘웃어?’
누가 봐도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내 눈엔 보였다. 내가 일어섰을 때 웃음을 참으려는 듯 그녀의 목구멍에서 숨이 한번 멈췄다. 그 결과 뒤에서 대기하던 뒤 숨과 충돌을 일으켜 아주 작은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주 미세한 소리였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녀 자신도 이 상황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웃었지? 당신은 지금 슬퍼야 하잖아.’
첫 만남부터 그녀는 나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사라져 어색해져 버린 진짜 ‘웃음’이다. 그녀에게는 그 진짜 ‘웃음’ 이 분명 있었다. 그것이 나의 착각이 아니라면…….
밤 11시 45분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도 밤이 길 것만 같았다.
"갑자기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한밤중, 그의 전화에 나는 다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거기서 당장 내려오세요!"
내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마포대교 중간지점 난간 위에 앉아있었다. 난간은 폭이 넓지 않아 성인 남자가 앉아 있을만한 충분한 공간이 없었다. 그는 양손으로 난간을 꼭 잡고 있었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얼굴을 도려내듯 잔인한 칼날을 드러내고 있었다.
팅.
그가 마신 걸로 보이는 소주병이 내발에 치여 옆으로 쓰러졌다.
"저와 약속한 날이 아니잖아요! 이런 식으로 일을 저질러 버리면 기사를 쓸 수 없어요!"
"제 실명과 사진 꼭 공개해주세요, 꼭이요!"
"네, 네.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어서 내려오세요."
그 순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서둘러야만 했다. 그는 검게 변한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옷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왼쪽 팔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순간, 첨벙!
놀란 나는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바람은 멈췄다.
첨벙첨벙.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동네 개천에서 물장구치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게 그런 기억은 없었는데…….’
여러 아이들이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물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홀로 다리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아이들은 내게 뛰어내리라고 소리쳤다.
물은 아주 맑았고 따뜻해 보였다. 고민도 잠시, 나는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 투명했던 물은 검게 변했고 아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나는 혼자였고 지옥 같은 그곳으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자 주변이 갑자기 밝아지며 시끄러워졌다.
여러 사람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했고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힘으로 제압해 억지로 차에 밀어 넣었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반짝이는 여러 색의 조명들, 자동차 불빛들만이 보였다, 소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속이 메스꺼워 어지럽고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1초 2초 3초…….
"윽!"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꿈에 나타난다.
내가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면 그는 지금 살아있었을까, 아니면 언젠가 결국 죽고 말았을까?
그건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 나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는 거다.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다음 날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제는 모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내가 하는 일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여직원들은 언제나 똑같다. 핸드폰 보고, 거울보고, 가끔 일하고, 노려보고, 째려본다.
사무실 전화가 그들의 표정처럼 짜증스럽게 울렸다.
“네.”
‘너무 퉁명스럽다. 최소한 ‘여보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언제나처럼 마음속으로 여직원의 행동을 비난한다.
그 순간 내 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네?”
“나예요.”
“누구시죠?”
“나, 모르세요?”
“아, 김서연 씨. 그런데 어쩐 일이죠?”
“어쩐 일이라니, 우리 계약하지 않았나요?”
“무슨 계약이요?”
“내 기사 써주기로 했잖아요. 기억 못 하세요?”
“기, 기억합니다.”
“그럼 빨리 나오세요.”
“네?”
“밖으로 나오세요.”
나는 어리둥절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아니, 그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창문에서 떨어졌다. 마치 사채를 빌려 쓴 사람처럼 그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책상에 위에 있던 수첩을 가방에 대충 찔러 넣었다. 사무실을 조용히 나가려고 일어났다. 하지만 뒤통수가 따가워 돌아보니 김숙희 씨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 뭐?’
나는 그녀에 눈을 피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항상 그런 식으로 나를 노려본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을 기어 내려오다시피 내려와 밖으로 나가자 그녀가 있었다.
"웬 식은땀?”
“아, 네.”
그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내 이마를 닦아주려고 손을 뻗었다.
“어, 어.”
나는 그녀의 손을 피하려 고개를 뒤로 뺏다.
“왜 이렇게 놀라지?”
“괜, 괜찮습니다. 제가 할게요.”
나는 손으로 땀을 쓱쓱 닦아냈다.
“밥 먹었어요?”
“네.”
“전 아직. 밥이나 먹으러 가죠.”
내가 분명히 먹었다고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같이 드세요.”
그녀가 제육볶음을 입에 세 번째 구겨 넣은 후 내게 말했다.
‘빨리도 말하네.’
나는 아무런 말없이 돼지고기를 한 젓가락 집었다.
‘맛있다.’
“근데 왜 연락을 안 하세요? 작업하려면 빨리 만나서 진도를 나가야죠.”
“네?”
“근데 이런 식으로 해서 저에 대해서 얼마나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동안 ‘죽음의 끝에서’에 나왔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인터뷰했어요? 몇 번이나 만났어요?”
“왜 그런 질문들을 하시죠?”
“이게 제 유서 같은 거잖아요. 말하자면.”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고기를 한 점 집었다.
“저는 유서를 대신 써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이 참,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나란 사람을 깊이 이해해야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죠.”
얼떨결에 대답한 후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혹시 제가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제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하는 스타일이라 서요.”
“아, 그렇구나. 워낙 조용해서 어느 세월에 기사가 나가나 궁금했어요. 뭐, 각자 나름의 방식이 있는 거죠.”
확실히 비꼬는 말투였다.
이 여자랑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는 걸까?
왠지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 나가죠.”
다시 한번 나는 순순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거예요?"
"갈 곳이 여기밖에 없었어요."
"네? 그럴 리가요."
그녀는 내 정면에서 나를 보며 뒤로 걷고 있었다. 아주 불편한 자세였고 보는 나 역시 몹시 불편했다.
"정말입니다."
"유명한 기자였잖아요?"
"근데 왜 그렇게 걷고 있는 겁니까?"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두 손을 꺼냈다.
"그쪽이 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거 같아서요."
"그렇게 걸으면 위험해요."
어색함에 섞인 한 가지 두려움. 그녀가 넘어지며 머리가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고 피가 온 사방에 튀는 상상을 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뒤로 자빠졌다.
덜컥 겁이 났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괜찮아 보였다.
"아, 엉덩이야. 근데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좀 도와주던지 해야죠. 여자가 넘어졌는데 손도 내밀지 않고 말이야."
그녀는 투덜거리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내 눈앞에서 나를 원하던 그녀의 왼손이 아닌 팔목을 잡고 일으켰다.
“괜찮으세요?”
“아, 아.”
“어디 다쳤어요?”
“아니요. 그냥 그래 봤어요.”
“네?”
그녀는 훌훌 털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앞장서 걸었다.
“저 이곳 처음이에요.”
“네.”
나의 대답에 그녀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단답형의 대답이라면 듣지 않겠어요.”
“그럼 뭐라고 해요?”
내가 물었다.
“저라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아 그래요? 이곳 어때요? 이곳은 어떤 것들이 유명하고…….’ 등등.”
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너무 차갑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글쎄요. 저는 그저 제 방식대로 하는 겁니다.”
“나보다는 윤재 씨가 더 절망적인 사람처럼 보이네요.”
나는 침묵했다.
침묵은 때론 긍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같아요. 무엇보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좋아요.”
“높은 건물이 없으면 자살률이 줄어들거든요.”
“정말 그래서 없는 거예요?”
그녀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윤재 씨는 오직 그 생각뿐인 거예요?”
그랬다.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에는 대부분은 ‘죽음’, ‘자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린 시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영화의 몇몇 장면처럼 정지된 영상이 있는데 그 장면을 클릭하면 그 안의 이야기가 재생된다. 그중 죽음 때문에 몹시도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나란 존재는 어떻게 될까?'
수업 중에도 생각했고, 길을 걸을 때도 생각했다. 천장에서 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작은 방안에서 두 다리를 벽에 올리고 누워 며칠을 생각했다. 나는 죽으면 암흑 속으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공포에 휩싸여 며칠을 고민한 결과는 너무나 단순했다. 명확한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고민했고 어느 순간 그 고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대답도 안 하고.”
“침묵으로 대답한 건데…….”
“죽고 싶어요?”
또 침묵.
“예스네요. 그러면 본인 이야기를 기사로 한 번 써보지 그래요?”
‘언젠간.’
“의견으로만 받을게요.”
나는 살짝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나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은 말투였다. 미묘하지만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걷다 보니 풍물시장이 나왔다.
시장을 둘러보다 그녀가 한 곳에 멈춰 죽은 생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생선이 불쌍한가요?"
큰 의미 없이 던 지 나의 말에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우리 엄마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았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잘 정돈된 그런 시장은 아니었고, 내 기억에 썩 기분 좋은 곳은 아니었어요."
불쌍한 생선 한 마리에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
"예전에는 그랬겠죠."
"엄마는 항상 힘들게 일했어요. 추운 겨울에 손발이 다 얼어 동상이 걸리는 일이 다반사였거든요. 나중에는 병까지 얻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도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요. 왜냐고요?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그럼 아버지는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나 할까.”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말해주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집에 와서는 엄마가 시장에서 일해 번 돈을 몽땅 가져가고 그랬어요. 그런 상황이 항상 반복되었고……. 엄마는 늘 똑같이 당했죠. 나는 정말이지 그 사람이 너무 싫었어요. 가정을 만들어놓고 내팽개친 것도 모자라서 남은 것까지 다 빼앗아 갔으니까요."
우리는 계속 걸었다.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남성을 보고 그녀의 팔을 살짝 잡고 내 쪽으로 당겼다.
"음....... 가만히 생각해보니 빼앗아 간 게 아니라 엄마가 주었던 거죠. 그래서 바보같이 당하는 엄마가 더 싫었어요. 또 시장에서 일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언제부턴가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고 너무 후회했죠. 그러지 말걸……."
우리는 시장을 빠져나와 계속 걸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논, 밭, 그리고 집들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왜 그때는 내가 그렇게도 이기적이었을까요? “
“청소년기에는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엄마에게 따뜻한 말도 해주고 싶고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의 시장일도 도와주고 싶어요.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게 슬픈 거죠."
"돌아가셨나요?"
내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버지는요?"
"엄마 돌아가시고 그 이후로는 보지 못했어요.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군요. 누구나 누군가를 그리워하죠. 그리고 자신의 지난날을 자책하기도 하고."
"윤재 씨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나요?"
"왜 없겠어요. 나도 사람인데……."
어쩌면 우린 다른 것 같지만 같은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솔직히 지금껏 살면서 특별한 추억이 없었어요. 그저 흘러간 시간만 남아 있는 거죠.”
그녀가 말했다.
논이 넓게 펼쳐진 벌판을 걷자 어디선가 바람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봄 냄새가 잔뜩 묻은 채로 말이다.
그녀의 머리카락도 달려온 바람에 영향을 받아 물결치듯 부드럽게 휘날렸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에 오후의 태양이 비쳤다. 눈이 부신 듯 그녀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정면을 응시했지만 그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받은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태양은 그녀고 그녀는 태양 같아 가까이에 있던 나는 똑바로 그녀를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앞을 보고 있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똑바로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녀의 숨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침내 투명해졌고 나는 그 안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행성과 밝게 빛나는 별들이 반짝였다. 마치 값비싼 보석처럼 여기저기서 빛나는 그곳은 바로 우주였다. 끝도 없이 광활한 우주공간이 나의 눈으로 빨려 들어왔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랑 특별한 추억 한번 만들어볼래요?”
“네?”
그 순간, 왜 나는 10분 전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다른 사람 같이 느껴졌던 걸까?
“내게 시간을 줄래요. 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예요. 물론 윤재 씨는 나에 대해 알아 가면 되는 거고, 그럼 기사 쓰는 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안 했지만 그녀는 또 ‘Yes'로 받아들였다.
내 머릿속에는 투명하게 빛났던 그녀의 잔상만이 떠올랐다. 신비로운 순간을 조금만 더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고 어딘가로 들어갔다.
간판도 없는 커피숍에는 서너 개의 테이블뿐이었고 그 흔한 음악도 틀지 않았다. 손님은 없었고 종업원이라고는 나른한 표정의 젊은 여자 한 명뿐이었다.
우리는 통유리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작고 동그란 테이블이 있는 곳에 앉았다.
그녀는 내 가방을 뒤져 펜과 종이를 꺼냈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점점 예측하기 힘들었다.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본 거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글쎄요.”
“글쎄요, 글쎄요.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요?
“글쎄요.”
“말해 봐요, 하고 싶은 거.”
나는 생각에 빠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그렇다고 섹스나 뭐 이런 쪽으로 가면 안 돼요.”
그녀가 두 눈을 반쯤 감은 채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 침묵은 예스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에요! 아니에요. 절대로…….”
나는 손사래를 쳤다.
세상에는 절대란 없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양손을 엑스자로 만들어 자신의 가슴에 대더니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 때문에 나의 눈은 자연스레 그녀의 가슴으로 향했다.
“지금 하고 싶은 거는 여행이요. 이왕이면 해외 배낭여행.”
“나랑 단둘이 여행하자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하고 싶었던 거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그녀의 농담에 나는 당황하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했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입에서 커피가 폭발했다.
“콜록, 콜록.”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그녀는 갑자기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만 웃을래요? 그냥 사례 걸린 건데.”
“그니까 긴장을 좀 푸세요. 릴랙스. 여자만 만나면 원래 그래요?”
“아닌데요.”
“에이, 가만 보니 그런 거 같은데 뭐. 숙맥이구나.”
나는 또다시 침묵했다.
“근데 신기한 게 있어요. 왜 지구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가지 성별 밖에 없을까요?”
그녀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졌다.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우리 대화는 그렇게 삼천포로 빠졌다.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그런 거겠죠.”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런 생각 혹시 해본 적 없어요?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은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정말 궁금하네요.”
“우주에서 왔으니 결국 우주로 돌아가는 거 아닐까요.”
나는 궁금했다.
한 쌍의 남녀가 사랑에 빠져 혹은 성적 욕구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탄생시킨다. 그 누군가는 남자 혹은 여자로 결정된다(대부분). 그 순간 자신과 같은 생식기를 가진 30억 명중 하나로 포함된다.
하지만 여기서 신비로운 일이 또 일어난다. 30억의 사람들 중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30억 명이 모두 다른 얼굴, 몸, 성격, 관념을 가지고 있다. 때론 비슷한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히 모든 것이 일치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들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30 억 명 모두가 결국 사라진다. 그것도 제각기 다른 이유, 다른 시간에.
태어나고 죽는 것은 우리 자신이 결정하지 않는다(물론 죽음은 자신이 선택할 수 도 있다). 어쨌든 이것 역시 가능한 일일까?
또 우리의 영혼은 신체와 함께 썩어버리는 걸까, 아니면 정말 몸과 따로 분리돼 어딘가로 이동되는 걸까.
이 사라짐은 탄생보다 더 어렵고 난해한 문제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혹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거죠? 그래서 이런 기사를 쓰는 거예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렇게 심오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그저 어쩌다가 하게 된 겁니다.”
“웃는 모습 처음 보네요.”
“과학적으로도 밝히지 못한 것을 제가 무슨 수로 알아낼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궁금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죠. 제가 죽으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죽음이란 것을 밝혀내 제2의 아인슈타인이 되어보세요.”
나는 다시 웃었다. 하지만 이내 내 웃음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죽으면…….’
나는 최소한 ‘죽으면 안 되죠.’라는 말을 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게 일반적인 사람이 말해야 하는 예의란 것이 아닐까? 비록 언젠가 모두 죽게 될 지라도 말이다.
갑자기 화가 났다.
제길!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나는 보통사람과 다른 내가 싫었다.
“좋아요. 일단 여행은 적어놓았어요. 언젠간 기회가 있겠죠. 또 다른 거 말해 봐요. 당장 할 수 있는 거부터 해야 하니까.”
나는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히 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관심 있는 것도 없고…….”
“좋아요. 뭐, 할 수 없죠.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걸로 해봅시다.”
그녀는 내 말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걸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1. 클럽 가기
2. 높은 곳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침 뱉기
3. 높은 곳에 누워 밤하늘 올려다보기.
4. 낮부터 새벽까지 가만히 누워서 하늘 올려다보기.
5. 좋은 일 해보기
6.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서 미친 듯이 뛰어보기
7. 비 오는 거리를 걷기
8.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군가와 키스하기
“왜 이런 게 하고 싶은데요?”
그녀의 위시 리스트를 본 나의 첫마디였다.
“살면서 왜 자기 스스로 한계를 두어야 하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해보고 싶어요. 죽기 전에 꼭.”
“여기 이거는 범죄 아닌가요?”
나는 손가락으로 2번을 지목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펜으로 쓱쓱 지우고 다시 고쳐 썼다.
2. 높은 곳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 뿌리기.
“자 어때요? 우리 같이 해봐요. 그래야 저란 사람을 알게 되죠. 원한다면 하고 싶은 걸 더 추가해도 되고.”
그녀는 내 앞에 종이를 들이밀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해본 거 있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없어요.”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오후의 조용한 거리는 멈춰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 안에서도 수많은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단지 나에 눈에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향했다. 그녀는 오늘 당장 클럽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후 늦게 서울에 도착했고 홍대의 한 클럽으로 들어섰다.
쿵쾅쿵쾅쿵쾅…….
음악 소리는 가슴을 두드리듯 크게 울렸다.
“어때요?”
“뭐라고요?”
“좋아?”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클럽 안에는 젊은 남녀가 마치 2호선 출근 지하철처럼 빼곡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지하철 안에서와는 달랐다.
아침 지하철에서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지만 여기서는 오묘한 표정으로 서로의 몸을 일부러 부딪치고 있었다.
그녀가 왜 이곳을 오고 싶어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나가면 안 돼요?”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내 상황을 에둘러 보여줬다.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봐요!”
그녀는 내손을 잡아끌고 광란의 2호선 지하철로 온몸을 구겨 넣었다.
내 몸은 마치 파도에 휩쓸린 듯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2호선 지하철에서는 그리도 싫어하더니 지금은 뭐가 그리 좋은 걸까?
그 안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만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낯선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이곳저곳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마치 파도에 몸을 싣고 남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어디론가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나갈까요?”
“네, 뭐라고요?”
“나 가 자 고!”
나는 또 한 번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곳을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갑작스러운 고요가 찾아왔다.
온 세상이 순식간에 멈췄다. 그녀와 난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느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선가 들었어요. 클럽은 이 맛에 온다고. 난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었어요. 세상이 이렇게 조용한 적이 없었거든요. 심지어 혼자인 경우 에도요.”
“저도 그래요. 처음이네요. 이런 경험…….”
“하지만 이 경험은 한 번이면 만족!”
그녀는 앞으로 걸어가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뭐해요?”
내가 물었다.
“지워야죠.”
그녀는 1번에 있던 클럽 가기에 가로선을 그었다.
“아, 근데 3번 하고 4번은 비슷한 거 같은데…….”
내 말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아! 그러네.”
3. 높은 곳에 누워 밤하늘 올려다보기.
4. 낮부터 새벽까지 가만히 누워서 하늘 올려다보기.
“됐다. 음....... 그러면 오늘은 할 게 없네.”
그녀가 아쉬운 듯 비음 섞인 말투로 말했다.
“자, 그럼 안녕!”
그녀는 손을 두어 번 흔들고 뒤돌아 가 버렸다.
‘이 여자 올 때도 자기 마음대로 오고 갈 때도 자기 마음대로 가버리네.’
오늘 하루를 빨리 감기 해버린 것처럼 믿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일들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쿵쾅쿵쾅쿵쾅.
귓가에 맴도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그 후 이틀이 지나갔지만 그녀는 연락이 없었다.
사실, 나는 내가 혹시나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나의 핸드폰 속에 그녀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볼까?’
나는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이 이상했던 걸까? 김숙희 씨가 날 쳐다본다.
‘뭘 봐!’
나는 고개를 슬며시 내렸다.
그렇게 잠시 그녀의 생각을 내려놓았을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네!”
“어이쿠. 내 전화 기다렸나 보네. 뭐 그리 급하게 받아요.”
“아, 아닌데요. 기다린 거 아닌데요.”
“나와요.”
그녀는 건물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왜 연락하지 않으셨어요? 기사 안 쓸 거예요?”
“네? 서연 씨가 며칠만 시간 달라면서요.”
“어? 내 이름 말했다…….”
“김서연 아니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처음이잖아요, 내 이름 말한 거.”
“네? 처음 아닌데…….”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아닌가? 그냥 뉘앙스가 뭔가 달라져서 그렇게 느꼈나 보다. 뭐, 아무튼 그건 그렇고 오늘은 2번입니다.”
“네?”
그녀는 앞장서 걸었고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그녀의 손에는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불행한 예감은 항상 맞았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30분 남짓 달려 김포시내에 도착했다.
“자, 여기가 우리 결전의 장소입니다.”
“꼭 해야 해요?”
“잠시 만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무시한 채 주전자를 들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는 이것이 그녀의 위시리스트 중 가장 말도 안 되는 항목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여자야.’
잠시 후, 그녀가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낑낑대며 걸어오고 있었다.
“자, 들어요.”
그녀는 내게 주전자를 떠넘겼다.
“무슨 물을 이렇게나 많이…….”
넘칠 듯 물이 가득 차있는 주전자를 보며 내가 말했다.
“자, 갑시다!”
그녀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휴.”
이번에도 나는 할 수없이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건물로 들어갔다. 대략 7~8층 정도의 높이로 보였다.
우리는 8층에서 내렸고 걸어서 한 층을 더 올라갔다.
‘설마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하지 않겠지.’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가 점점 무서워졌다.
“문 잠겨있지 않을까요? 요새 누가 옥상 문을 열어놓겠어요.”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내 바람은 처참히 무너졌다. 그녀는 옥상 문을 열고 뒤돌아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뭐랄까? 진실도 거짓도 아닌 다른 것이었다. 마치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된다는 것처럼…….
나는 투덜거리며 옥상에 올라섰다.
김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복잡하지 않은 작은 도시였다.
6차선의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도로는 한산했다. 시내 중심가에는 10층 높이의 빌딩은 그리 많지 않았고 아파트도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드넓은 광장이 보였고 그 옆으로는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광장에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 광장은 거짓말처럼 텅텅 비어있었다.
내가 시내를 구경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자그마한 빨간색 바가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주전자에 있던 물을 바가지에 가득 부었다.
“자, 이제 됐어요.”
그녀는 내게 바가지를 내밀었다.
“나보고 하라고요?”
놀란 나의 표정과 다르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요? 서연 씨가 하고 싶었던 거라면서요?”
“그래도 남자가 먼저 좀 해주면 안 돼요? 우리 둘이 같이 하는 거라니까요.”
그녀는 갑자기 뾰로통한 표정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당황스러웠다.
“아, 알겠어요.”
나는 물 한 바가지를 들고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리에는 많지 않은 사람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오고 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애처로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지금 왜 이런 것을 하고 있는 걸까? 그녀의 낚싯대에 걸린 듯 한 이 기분.
나는 조심스럽게 물을 아주 조금 건물 밖으로 뿌렸다. 다행히 아무도 맞지 않았다. 맞았다 한들 빗방울 즈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여보세요. 뭐해요?”
“뿌렸잖아요.”
“다 부어야죠. 확 부어요, 그냥 확!”
그녀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 9층 아래를 내려다보며 때를 기다렸다.
“윤재 씨 때문에 연습도 못했잖아요. 뭐, 그럴 줄 알긴 했지만. 자, 내가 신호하면 다 부어버려요!”
“우리 잡혀 갈 수 도 있다는 거 알아요?”
“하나, 둘…….”
그녀는 내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셋! 지금이야!”
'에라 모르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바가지에 있던 물을 아래로 힘껏 뿌렸다.
몇 초 후…….
“뭐야!”
물 폭탄을 맞은 남자의 강한 분노가 9층까지 타고 올라왔다.
나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숨었다. 그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제 어떡해요?”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잘했어요.”
그녀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칭찬했다.
“나 원 참. 이게 그리도 재밌어요? 다른 사람 골탕 먹이는 일이? 요즘 초등학생도 이런 장난 안치거든요.”
“자, 이제 갑시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 하고 싶다면서요? 하지도 않을 거면서 여기는 왜 올라온 겁니까? 설마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건 아니죠?”
“윤재 씨가 나 대신해줬잖아요. 내가 한 것처럼 아주 만족스러워요.”
“뭐라고요?”
나는 너무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짜 여기 계속 있을 거죠? 그럼, 나 먼저 갈게요. 조금 있으면 저 아저씨 올라올 텐데…….”
그녀는 나를 놀리듯 비아냥거리며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너무 얄미웠다.
"확 물을 한 바가지 끼얹어 버릴까 보다!"
앉아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재빨리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서둘렀다. 그녀는 벌써 내려간 듯 보이지 않았다.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년의 한 남성이 물에 잔뜩 젖은 생쥐 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움칫하는 걸 남자는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몇 걸음 가다 뒤돌아서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나는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러댔다.
“저기요. 이봐! 야!”
그가 소리쳤지만 이미 엘리베이터 문은 닫힌 후였다.
“젠장!”
내손에는 빨간 바가지 들려있었다.
다행히도 운이 좋아서 잡히지 않았지만 그가 계단으로 미친 듯 쫒아오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5층에서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다시 3층. 여자 한 명이 엘리베이터 버튼 누른 채 누군가를 여유 있게 부르고 있었다.
“빨리 와.”
‘젠장! 이 여자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거야!’
너무 긴장돼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1층에 도달했다. 문이 열리자 나는 득달같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여기! 여기!”
길 건너 그녀의 다급한 손짓이 보였다.
그녀는 계속 길을 걸으라고 내게 사인을 보냈다. 나는 건너지 않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반대편 거리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치 경보 선수처럼 빠르게 걸었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그녀가 웃었다. 나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웃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뒤를 힐끔힐끔 쳐다봤고 그녀가 손짓으로 뒤에 누가 따라온다며 나를 놀릴 때는 정말이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우린 계속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뒤에는 더 이상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나도 그녀와 걸음을 맞췄다.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았다. 좁은 4차선 도로라 무단횡단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계속 응시한 채 길을 걸었다. 우리는 4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있었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눈빛과 얼굴 표정으로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마음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끈 같은 것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가 아픈가요?'
'혼란스러워요. 나의 삶이 혼란스러워요.'
'알아요. 우리 모두 그러니까요.'
'당신도 그런가요?'
'그럼요. 내 삶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작은 조각배와 같은 걸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글쎄요. 조금씩 어디론가…….'
'조금씩, 조금씩…….'
길이 끝나고 마침내 횡단보도가 나왔다. 마침내 우린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파란불로 바뀌자 그녀도 나를 향해 걷고 나도 그녀를 향해 걸었다.
“아니, 계속 오면 어떡해요? 내가 거기 그 자리에 있으라고 했잖아요.”
“어? 내가 말했잖아요, 그 자리에 있으라고.”
횡단보도 가운데 서서 우린 함께 웃었다.
신호가 얼마 안 남았고 그녀는 다시 그녀가 온 방향으로 나는 내가 온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뒤돌아섰다.
“장난하지 말고 이리로 와요.”
우린 다시 함께 걷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우리 사이에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었다. 그것은 ‘설렘’이었다.
마친 그녀가 아닌 그녀를 만난 것처럼.
“그 아저씨 봤어요? 홀딱 젖었던데…….”
“너무 안타까운 표정 하지 마요. 그 사람은 당해도 싸니까.”
그녀가 내 표정을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
“아는 사람이에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추행당했어요.”
“진짜요? 말도 안 돼! 진작 말하죠! 지금이라도 가서 한 대 줘 패고 경찰에 신고합시다.”
“아니에요. 벌써 오래전 일이고 증거도 없는 걸요.”
“아니 그래도 복수해야죠.”
내가 더 화가 났다.
“사실은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한테 그랬던 거예요. 그때는 소문대로 엄마가 유부남과 그런 관계 인 줄로만 알았던 거죠. 자신의 딸조차 그렇게 믿었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해요.”
“그러니까 오늘은 일종의 복수인 거군요.”
“다 지난 일인걸요. 복수라기보다는 그 남자 얼굴에 차가운 물 한번 끼얹고 싶었을 뿐이에요.”
“귀여운 복수네요.”
“그 남자에 대한 복수심은 없어요. 모두 나의 잘 못인걸요. 내가 엄마를 믿지 못했고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으니까…….”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요.”
내가 애써 위로했지만 그녀는 자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날카롭게 날이 서있던 우리의 대화는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를 만나고 오는 날은 어렵지 않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녀는 또다시 이틀 만에 연락이 왔고 우리는 남들처럼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었다.
그 사이 우리는 5번에 있는 ‘좋은 일 하기’를 실천했다.
고아원, 양로원을 차례로 방문해 봉사활동을 했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는 것은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봉사활동을 하며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나마 나 자신을 버릴 수 있었고 모든 생각을 놓을 수 있었다.
불편한 그들을 위해 내가 먼저 움직여야 했고 어린이들을 위해 먼저 웃으며 다가가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며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그녀는 보란 듯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웃었고 즐거워했다.
그들을 돕기 위해 갔는데 마치 그들이 우리를 돕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불편한 것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치유되지 못하는 마음에 있다.
몸이 불편한 한 어르신이 우리를 보며 애인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볼은 분홍빛 복숭아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음이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한술 더 떠 우리에게 착한 부부라며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떠나는 걸 몹시 아쉬워했다.
한 할아버지는 가는 길에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 주셨다. 모두 한결같이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도 나도, 우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다. 정확히 만난 지 이틀이 지나면 그녀는 날 찾아왔다.
이틀이 지난 그날도 그녀는 어김없이 전화로 나를 불러냈다.
오늘도 나를 노려보고 있던 김숙희 씨가 나의 표정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나는 재빨리 달려 나갔다.
“어? 전화 끊자마자 바로 나왔네. 나 기다리고 있었나 봐.”
오늘따라 왠지 매혹적인 그녀의 표정.
“아, 아닌데요.”
“자, 오늘은 새로운 일을 해야죠. 갑시다.”
그녀는 새침하게 돌아섰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를 따라 길을 나섰다. 전과 다르게 투덜거리지 않으며.
우리는 강화 버스터미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 계속 1위래요.”
이번엔 그녀의 놀란 듯 귀여운 말투였다.
“몰랐어요? 그뿐 아니라 전 세계 1위예요.”
“솔직히 내가 이런 이야기 하는 건 우습지만 무엇이 문제일까요?”
“선진국의 자살을 보면 정신적인 문제나 심리적 문제 등이 많은 이유를 차지 하지만 우리나라는 40대 이상은 경제적 이유 그리고 청소년들은 성적비관, 학교생활 등이 주된 이유죠. 더욱 특이한 점은 청소년층의 자살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거죠.”
“성적비관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혹시 학생들이 찾아온 적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학생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고 있는 게 진짜 심각한 문제죠. 사회 전체의 문제를 한 학생의 문제로만 전가시키려고 그래요. 많은 수 의 청소년들이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분명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어른들이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해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죠.”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이 자살하는 건 괜찮다는 거예요? 살만큼 살았으니까?”
“그건…….”
나는 그녀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그리고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경제적 문제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것도 믿을 수 없어요.”
그녀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잘 사는 사람을 위한 나라, 못 사는 사람은 계속 못 사는 나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되겠죠.”
“대한민국은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잖아요. 웃기는 게 뭔 줄 알아요? 경제적, 그리고 성적비관을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 하지만 그런들 뭐해요.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결국 이런 이유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데.”
“맞아요. 국가가 나서야 해요. 로봇처럼 공부하는 입시위주의 교육, 완벽을 요구하는 사회, 일하는 기계 같은 직장생활부터 전부 바꿔야 해요.”
“경제는 발전해 가는데 우리의 삶의 질은 형편없죠. 행복지수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우리보다 한 참 못 사는 나라보다 떨어지니…….”
“결국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맞는 거겠지?”
“갑자기 왜 반말이에요?”
그녀가 정색하며 물었다.
“반말 안 했는데요. 반말은 서연 씨가 더 많이 하지 않나?”
“나도 반말 안 하는데요.”
그녀가 웃음기 가득 해맑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하지 말아야 하는 너무나 유혹적인 마약에 손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국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게 안타깝네요. 계속해서 경쟁을 부추기고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말 테니까요.”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죠?”
“네. 말했다시피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감정이나 혹은 그저 유명인을 따라 하는 모방 자살이라고 치부해버리죠. 갑작스럽게 자살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자살을 하게 되는 거죠. 거기다 하나 더 추가된 게 있는데 그게 뭘까요?”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그건 바로 죽음의 끝에서…….”
“그 정도로 파급력이 있나요?”
내가 물었다.
“잘 모르나 봐요? 그런데 사실 파급력은 그들이 만들어 준거나 다름없죠. 누가 시골 잡지사에서 나오는 조금 한 기사에 그렇게 관심을 갖겠어요. 안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기를 벗어나는 그들의 가장 완벽한 방법은 바로 희생양을 찾는 거죠. 윤재 씨는 거기에 딱 맞는 사람이었던 거구.”
이상했다. 그녀는 나를 희생양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높아져만 가는 청소년층의 자살 때문에 사회 안팎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죠.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당연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 넘겨야 했어요. 잘못된 것을 뜯어고치려 하지 않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죠, 그들은.”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나 보네요.”
“미디어에서는 ‘죽음의 끝에서’ 가 자살을 조장한다고 떠들어 대니 세상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죠.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라고 하지만 요즘 세상은 그렇지도 않아요. 미디어 매체에서 나오는 것들을 믿지 않으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서연 씨는 믿지 않았나요?”
내가 물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보이는 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원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저는 우리가 보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믿어요.”
사실 죽으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으니까.
그녀와의 대화는 시간을 잊게 해준다. 어느 순간 버스는 와 있었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은 6번 하러 가는 겁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냥 받아들였다. 아니, 어쩌면 함께 즐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가만 6번이 뭐였더라?’
나는 곰곰이 생각, 또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답답했지만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엉뚱한 곳에서 자존심이 발동되었다.
내가 6번을 모르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내가 6번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뭘 그리 생각해요?”
그녀가 물었다.
“생각나지 않는 것들.”
나의 대답이 그녀의 오래돼 먼지가 쌓인 센서에 신호를 주었던 것일까, 그녀의 표정은 갑자기 난해해졌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그녀의 눈빛은 창문 밖 풍경이 아닌 마치 과거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생각나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기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에게 과거의 기억은 사실 50% 도 남아있지 않아요. 수많았던 날들 중 가장 즐거웠거나 혹은 완전히 엉망이었던 날이었겠죠. 사람들에게 생각나지 않는 것들은 그녀에게 버림받기 하루 전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 혹은 직장을 나가고, 돌아와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던 그런 순간들, 혹은 그녀와 헤어지고 3일이 지난 어느 날이에요. 그런 날들 속 우리들의 반복적인 생활, 생각, 몸짓 등이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 아닐까요.”
그녀의 표정은 마치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내게 묻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헤어지고 3일이 지난 어느 날이지?”
그녀가 표정을 정리하고 내게 물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바로 다음날은 믿어지지 않고 모든 게 거짓말 같잖아요.
헤어지고 첫 번째 날은 헤어지기 전날과는 완전히 다른 날이 되겠죠. 이런 날은 분명 기억 속에 남을 거예요. 원하던 원하지 않든 간에 말이죠. 하지만 3일째 되면 페인처럼 지내는 삶의 시작점이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그냥 ‘힘들었던 시간들’ 로 한꺼번에 묶이는 거죠. “
“나로선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겠네요. 하지만 내게 생각나지 않는 것들은 평범한 날들에 했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거요?”
“가령 이런 것들이죠. 어느 가을날 집 앞마당에 앉아 책을 읽는다던지, 혹은 단풍이 물든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한참 동안 관찰하는 것들이요. 그런 편안한 순간은 우리가 굳이 기억하려 들지 않으니까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내게도 세상 어딘가에 혼자 있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던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린 마치 영화처럼 우리 뇌에서 편집한 내용만 보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당연히 이야기가 있어야겠죠. 기쁜 일도 있어야 하고 나쁜 일도 나와야 이야기가 만들어지니까요. 하지만 앞에서 내가 말했던 그런 것들은 너무 평범하단 이유로 기억되지 못해요.”
“그렇다면 생각나지 않는 것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진 않겠네요.”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는 어느새 도심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린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가는 5살 어린아이처럼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그녀와의 물리적 거리는 실질적인 우리의 정신적 관계보다 몇 백배 더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재빨리 어디론 가로 시선을 돌렸다.
‘키스하지 않는데 누군가를 이렇게 가까이 바라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 시점에서 나는 내 안에서 싹트고 있는 작은 감정들을 무시하지 말고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을 때 나는 그녀와의 키스를 상상했다. 이것은 내 안에 있는 어떠한 감정이 키스라는 행동으로 표현되어 나타났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남자의 수컷 본능이 모든 걸 짓누르고 일어난 것일까?
결론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녀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버스 안을 살폈다.
버스 안에는 달리는 것이 낭비일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버스기사, 그녀와 나, 잠에 취한 20대 청년, 그 뒤로 20대 여자 둘까지.
그녀에게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지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사실 우리에게 목적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 목적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6번. 6번.
머릿속으로 리스트를 정리했다.
1. 클럽 가기
2. 높은 곳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침 뱉기
3. 높은 곳에 누워 밤하늘 올려다보기.
4. 낮부터 새벽까지 가만히 누워서 하늘 올려다보기.
5. 좋은 일 해보기
6.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서 미친 듯이 뛰어보기
7. 비 오는 거리를 걷기
8. 사람 많은 곳에서 키스하기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정확히 4개가 남았다. 그제야 나는 생각났다.
6번은 바로 달리기야!
'그래, 지금 우리는 어느 바닷가로 가고 있는 중일 거야!'
그 순간 창문 밖으로 '88 고속' 버스가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8번…….
그녀는 나와 8번을 하려 하는 걸까? 그녀와의 8번을 생각한 순간 옥시토신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상상하자.'
나는 그녀 옆에 제대로 앉아있기 불편했다. 그녀의 무릎과 살짝 닿기만 해도 계속해서 손끝이 찌릿찌릿거렸다.
“자리 옮기고 싶으면 옮기세요.”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그럴게요.”
내가 슬며시 일어나며 말했다.
“다시 앉아요.”
“네?”
“다시 앉으라고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앉았다.
“내가 옆에 앉아있는 게 뭐가 그리 불편해요? 여자인 나는 괜찮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버스에 자리가 많아서....... 아니, 서연 씨 불편하실까 봐요.”
“그거라면 그냥 앉아있으세요. 나 심심하단 말이에요.”
나는 계속 그녀의 옆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버스가 고속도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버스가 차선을 바꾸려고 하다 달려오는 차와 충돌한 후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 5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온몸의 뼈가 꺾이고 부서져 잔인하게 죽고 말겠지.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당장 일어나 버스기사에게 속력을 줄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내 안에 시한폭탄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있었어요?”
“네?”
그녀에 말에 나는 고개를 간신히 들었다.
“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어디 아파요?”
“괜찮아요.”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내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향기가 좋네요."
걱정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화제를 돌렸다.
그녀의 손에서 꽃향기가 났다.
"핸드크림 써볼래요? 이게 냄새가 아주 좋거든요."
그녀는 핸드크림을 꺼내 내 손등에 한 움큼 발랐다.
"냄새 좋아요?"
그녀가 물었다.
"근데 어떤 사람들이 있었냐는 건 무슨 말이죠?"
"아, 윤재 씨가 그동안 취재했던 사람들이 궁금해서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해서요."
"그게 무슨 뜻이죠?"
"사실 기사에서는 애매모호하게 끝을 내잖아요. 사람들은 당연히 기사에 나왔던 주인공들이 자살했다고 믿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휩쓸리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알 수 있죠."
"그게 중요한가요?"
내가 물었다.
"갑자기 궁금해서요."
"글쎄요. 그 이후의 삶은 그들이 선택하는 거죠. 다시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그 말은 기사의 주인공들이 모두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니란 건가요?"
나는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기자세요?"
"네? 무, 무슨 뜻이죠?"
"마치 기자처럼 물어봐서……."
"제가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했나 보네요. 그런데 누구나 다 궁금해할걸요. 특히나 내 입장에서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가 절벽 끝에 서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버스는 어느새 고속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버스를 갈아탔다.
우리는 강원도에 와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 내 이름 언제부터 저기요지.”
“미안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고분고분 해졌어요? 원래 막 인상 쓰고 그랬잖아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본인은 모르겠지만 상대방은 다 알 수 있는 거거든요.”
나는 아무런 말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아니라, 6번, 그거 바다에서 달리기잖아요. 바다는 강화에도 있거든요.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잠깐만요. 강화에 바다가 있어요?”
“아, 네. 있긴 있죠.”
“그러면 진작 말했어야죠!”
“그게…….”
“괜찮아요. 일부러 멀리 여행도 가는데....... 뭐, 어때요.”
그녀는 언제나 청바지에 단색 티셔츠, 잠바 혹은 재킷을 입고 운동화는 회색 나이키 러닝화를 신는다. 여성미가 강조된 굴곡진 옷들은 입지 않는다. 언뜻 보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은 옷차림 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마치 매일같이 치마와 구두를 착용해야 하는 여자가 어쩌다 신경 써서 캐주얼 의상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