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행복을 찾는 지도
행복을 찾는 지도
두 달 후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 '행복을 찾는 지도' 저자 특별 초청 강연회'
언덕을 힘들게 올라 평화의 전당 내부로 들어서니 한창 강연회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자 갑자기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나는 괜스레 깜짝 놀랐지만 강연자의 재미있는 이야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상 중 하 무려 세층으로 나눠진 내부는 언뜻 보아도 몇 천 석이 넘는 듯 보였고 그 안은 젊은 사람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콘서트도 아니고 대통령 연설 행사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분비는 이유는 오늘의 강연자 때문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 최근에 많은 강연을 하고 있어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작가는 청춘에게 길을 찾아주는 멘토로 불리고 있었다.
나도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강연을 들었다.
TV에서 강연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와서 보니 왜 사람들이 이 작가의 강연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유머가 남달랐고 세상에 대한 해학은 날카로우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강연 내내 학생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끝이지 않았고 마지막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감탄한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이야기와 감동을 우리에게 채워줄 수 있는지를.
한 인터뷰에서 리포터가 물었다.
“특히나 젊은 층에서 큰 호응을 얻고 계신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런 소중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지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합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높은 지위와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뭐, 그 사람들은 그냥 신기했을 뿐이고요. 하하.
사실,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죠. 삶의 끝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요. 저는 지금도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그들로 인해 용기를 얻은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그들에게 지도를 보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행복의 지도를 보는 방법을 말이죠.
아, 참. 그리고 내게 처음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불어넣어준 한 사람이 있는데요. 마치 새 생명을 얻은 것과도 같은 기분이었죠.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분이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럴 순 없죠.”
작가와 리포터는 동시에 웃었다.
“그 친구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네요.”
그녀가 화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네 차례야.”
강연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강연자에게 보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기실 문에는 낯선 작가의 이름이 붙어 있었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노크를 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내가 아는 사람 맞는 거죠?”
“아이고, 새삼스럽게 왜 그래.”
“이렇게 직접 와서 들어보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데요.”
“어휴, 칭찬을 그렇게 해주니 이 엄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아주머니와 포옹을 했다.
이제는 아주머니라는 호칭보다는 엄마라고 부르고 있지만 아직도 쉽지 많은 않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그때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주머니가 보낸 엽서 한 장.
바로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엽서로 나는 아주머니가 유럽을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들, 잘 있는 거지? 이 엄마가 유럽을 왔어. 벌써 13일 째야. 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갔던 아줌마가 어떻게 유럽에 와 있는지 신기하지?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던 중 우리 아들이 엄마에 대해 쓴 기사가 있더라고. 그걸 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하루 종일 울었어. 사실 나이 먹고 억울한 일에나 울지 감동받아 우는 일은 잘 없거든. 사람들은 아들 기사가 나쁘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엄마 생각은 조금 달랐거든.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잖아.
‘행복의 길을 찾는 지도는 특별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내 과거를 탓하고 현재를 불평하며 살지 말고자 마음먹었어. 그리고 눈을 감을 때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지. 비록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날 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또 죽음을 먼저 찾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유럽여행을 떠나기로 한 거야. 딸내미는 미쳤냐고 나를 치매환자 취급했지만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이곳에 와 있잖아. 몸은 힘들지만 지금 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감격스러워. 돌아가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 지금 얻은 것들을 당장 써먹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 마음속에 깊게 박혀 오래도록 즐거울 거야. 우리 아들도 꼭 엄마처럼 행복을 찾는 지도를 발견하길 바랄게.
-부다페스트에서 엄마가
아, 참! 아들에게 줄 한 가지 선물이 있어. 아들이 언젠가 이곳에 오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비로소 이 선물이 아들께 되는 거야. 늦지 않길 바랄게.’
나는 아주머니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우리 옆에 앉은 사람이 미래에 내 남편이 될지, 부인이 될지, 혹은 대통령이 될지를. 아무것도 모르는 인생의 앞날처럼 누군가에게 정해진 길이란 없다.
지금 당장 불행할 수 도 있고 지금의 행복이 미래에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에는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고 빠르다.
내가 아주머니처럼 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정말 내 차례다. 나는 두려운 인생을 가만히 앉아서 살기보단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의 깊은 동굴을 들어가 제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아주머니 말대로 이제는 내 차례고 나는 다음 주 유럽으로 향한다. 회사도 그만두고 몇 개월의 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다.
새로운 어딘가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다해도 그리 두렵지 만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리란 믿음 때문이다.
그 사이 계획하지 않았던 마지막 기사가 나갔고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편집장은 지나칠 정도로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물론 나는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과 함께 정중히 거절했다.
<여성 매거진>
죽음의 끝에서
#에필로그 /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죠?"
그때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조차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의 끝에서’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사실, 나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하는 일은 분명 아니었기에 당당할 수 없었다. 내 글을 읽어 보고 비난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내 글을 읽지도 않은 채 비난했던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다.
나는 죽음의 끝에서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지만 삶이란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줄곧 믿어왔다. 자신의 인생은 어차피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다고 믿었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그들을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취재하며 내가 알게 된 비밀이 하나 있다.
우리에게는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한다. 그 끈들은 이리저리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있다.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게 될 사람, 그리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그 끈은 연결되어 있다.
내 몸에 연결된 끈들은 나 스스로 끊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후련하고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몸에 끈으로 연결되어져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결정으로 인해 중심을 잃고 넘어질 것이다.
하나의 끈이 끊어져도 회복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자살은 나의 고통을 소중한 누군가의 어깨에 올려놓고 떠나는 일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자살을 부추긴 장본인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나를 닮아있었다. 그들에겐 나의 과거도 있었고 미래도 있었으면 현재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아픔은 언젠가 나의 아픔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죽음의 끝에서'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점차 이 이야기를 잊어가게 될 것이고 유명인이 자살하지 않는 한 방송에서 자살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모방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살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우리나라가 자살 세계 1위 자리에서 순식간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리 위, 혹은 고층빌딩, 또 어떤 이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극단적인 마지막 선택을 하려 하고 있다.
그들의 죽음을 우리는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걸까? 그리고 쉬쉬하며 숨기는 것이 정말 우리를 위한 것일까?
사회는 그들을 인생의 낙오자쯤으로 여기며 존중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고 자신보다 다른 이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과도한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자살을 한다.
나는 죽음이 End 가 아닌 and라고 줄곧 믿어왔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확실한 한 가지는 우리가 죽음을 선택해 and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남은 인생은 End 가 돼 버릴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런 말이 있다.
'집에 돌아와서 자신의 오래되고 익숙한 베개에 기대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인생도 똑같다. 우리가 중간에 포기해 버리면 우리 인생이 얼마 아름다운지 알 수 없다.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은 끝까지 가본 사람 많이 마침내 아름다운 노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여 마지막까지 이 여행을 포기하지 말지어다.
*지금까지 '죽음의 끝에서'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여성 매거진> 박윤재 기자
날씨가 좋아 무작정 길을 걸었다. 맑고 파란 하늘 때문인지 몰라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 마음이 바로 저 하늘이었다.
모처럼 마음 편히 걷다 보니 마포대교가 나왔다. 순간, 나는 멈칫했지만 이내 마포대교를 걷고 있었다.
다리 위 난간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런저런 글들이 쓰여 있었다.
오늘 하루 어땠어?
바람 참 좋다
많이 힘들었구나
기분이 꿀꿀할 땐
파란 하늘을 봐봐
3년 전에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는지 기억나?
기억, 잘 안 나지?
다 그런 거지 뭐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누군가를 변화시킨다면 결코 세상은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리 위에 올라서니 많은 후회가 밀려온다.
인생은 후회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를 다시 한번 살아본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누구나 그렇듯 내 삶도 후회의 연속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나이 서른넷, 내가 처음으로 살아보는 나이고 오늘은 내가 처음 살아 보는 날이다.
언제나 처음은 실수와 후회가 남는다. 우리는 매일 처음을 산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잘 걸었고, 잘 뛰었는가?
우리는 걷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울었다. 그 결과 걷게 되었고 뛰게 되었다.
나는 마포대교 한가운데에서 푸른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같아 보이는 하늘은 오늘 유독 다르게 보였다.
하늘이 달콤 쌉쌀했다.
이 순간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고 생각하니 더 느끼고 만져보고 싶었다.
내일이면 나는 후회 가득할 시간을 향해 떠난다.
내가 돌아와도 세상은 여전히 똑같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웃고, 누군가는 슬퍼하며, 또 어떤 이들은 후회 가득한 삶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