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나는 나이 든 나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17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by 박시원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솔직히 지금의 내가 낯설다.

그녀가 나를 찾아왔던 날로 시간을 돌이켜 보면 후회가 남기도 한다.

“선아야. 사실 나는 말이야 단 한 번도 나의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바다에 시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만난 후에도 나이 든 우리 미래의 모습을 생각한 적 없었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 나는 그녀와 평생 사랑하는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와 함께 볕이 잘 드는 앞마당에 앉아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한 참 동안 그곳에 앉아있었다.

우리가 좀 더 늦게 만났다면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만 가볼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처럼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왠지 모르게 여전히 낯선 그녀의 모습.

“잘 지내고…….”

그녀가 나의 어깨에 손을 서투르게 살며시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응.”

그녀가 눈인사를 남긴 채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선아야!”

그녀가 돌아서 나를 바라봤다.

“그거 알아? 김치찌개는 먹기 바로 직전에 끓이는 게 가장 맛있다.”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날에 사랑할 수 있어서, 그리고 사랑에 아파하고 이별에 슬퍼할 수 있어서 감사해. 고마워 선아야 나와 그 시절을 함께 해줘서…….’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그동안 큰 아픔으로 나를 괴롭혔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한때는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녀를 만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픔을 잊는 방법으로 그녀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마저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방법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는다.

기억이란 놈의 특징은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꺼내보면 이전과 다르게 180도 변해버린다는 것에 있다.

시간이 더 흐른 뒤, 그녀와 나의 추억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나는 그때가 또 기다려진다.

회사 퇴직 일주일 전

그날도 나는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는데 김숙희 씨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익숙한 장면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섰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김숙희 씨 앞에 가서 섰다.

"뭘 봐요? 미안한데 눈 좀 깔아줄래요."

내 말에 그녀는 흠칫 놀라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말해줄까요?"

그녀는 나의 말에 눈을 컴퓨터 모니터로 돌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출국일

아주머니가 챙겨준 고추장과 밑반찬을 들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제주도 여행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밀봉돼 포장되어 있었다.

이런 게 무슨 필요가 있냐고 투덜대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이제는 자신만 믿으라며 알아서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주소가 적힌 쪽지 하나를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이제 나는 영국으로 떠난다.

어릴 적 나는 낯선 곳을 찾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꿈이 수시로 바뀌었던 때라 아마도 TV에서 나왔던 탐험가를 보고 나도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탐험을 앞둔 사람처럼 미치도록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떨리기도 한다.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문득 아주머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했다.

아마도 이미 다른 누군가와 친해져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나처럼 혼자서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나쁠 것은 없다.

공항은 어떤 곳일까?

누군가는 돌아올 테고 누군가는 떠날 것이다.

반가움에 얼싸안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떠나는 이의 뒤에서 아쉬움 가득한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공항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공항은 손끝이 찌릿한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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