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는 나이 든 나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18화 나이 든 나를 만나는 방법

by 박시원

나이 든 나를 만나는 방법


“나 결정했어요. 배낭여행 가보려고요.”

“정말? 잘 됐네요!”

“비행기 표랑, 철도 패스 고마워요. 대신이건 제가 살게요.”

“너무 차이가 큰 거 아니에요?”

“그럼 뭐, 비싼 거 먹을래요? 소고기 먹으러 갈래요?”

“아, 아니에요. 다음에요, 다음에…….”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나....... 그 사람 찾아가 보려고요.”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말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렀다.

“걱정되네요, 내가 여행 잘할 수 있을지…….”

내가 침묵을 깼다.

“젊음이 좋은 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어쩌죠. 난 젊지 않기 때문에 이제 도전할 기회가 점점 없어지네요."

“윤재 씨가 배낭여행 다녀오면 우리 위시리스트 전부 완료하는 거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밖으로 나와 걸었다. 나는 인도의 안쪽으로 걸었고 그녀는 바깥쪽으로 걸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도 나를 바라봤다. 우린 함께 웃었다.

우린 왜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그녀는 그녀만의 아픔이 있었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이유로 아파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 몸에 묶인 끈 하나가 그녀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몸에 묶인 하나의 끈은 끊어져 버렸을까?

“윤재 씨 기억나요? 생각나지 않는 것들.”

“아, 네.”

“그때 내가 그런 순간들은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요. 평범하게 스쳐간 순간을 잘 기억해 보세요.”

“생각나지 않는 것들?”

내가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나 인연이란 것도 엄청난 느낌을 받는다거나 한눈에 반하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지나친 어떤 순간에 있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여행 18일째, 부다페스트

Gloomy Sunday

익숙해지려고 하면 떠나고 편해지려고 하면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다.

여행이란 게 그런 걸까?

나는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아주머니가 꼭 선물을 찾으라고 말했던 바로 그곳이다.

그날 밤, 어부의 요새 2층에 올라서니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난 언제나 가로등 불빛을 사랑했다. 이곳에선 그 가로등 불빛의 황금색이 도시 건물을 비추어 고풍스러운 건물에 옷을 입혔다.

마치 강 위에 떠있는 듯 국회의사당의 매혹적인 자태에 홀려버릴 것 같았다.

대학시절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이 도시의 야경은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가야 했지만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조금 더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언젠간 조금씩 희미해질 것을 알기에 안타까웠다.

몇 년 전, 한 기자가 내게 몇 년 후 나의 모습을 예상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흔이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계속 나이가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

평범한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일이 내게는 마치 이루어질 수 없이 멀리 있는 꿈같았다.

나는 내 인생이 젊은 시절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행복이란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졌으니까.

사실, 지금 나는 그때와 크게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저 몇 년의 시간만이 흘렀을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내 옆에는 아무도 없고 삶을 향한 의지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왜일까?

내일, 내일이 안 되면 언젠가 라도 지금과 다른 나를 발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과거만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내 몸과 연결되어있는 끈을 끊을 수는 없다. 이제는 내가 내 몸의 끈을 끊어버리면 중심을 잃게 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내게 물었던 그 질문을 나는 단 한 번도 잊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내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그때의 그 질문을 꺼내 생각해본다.

지금보다 조금 늙어 있을 테고, 어쩌면 누군가의 남편, 아빠가 되어 삶에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이 한편으론 기다려지기도 한다.

나는 황금빛 조명이 비추는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어느 동양인 노부부가 서로의 손을 소중히 잡은 채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들이 나를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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