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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Dec 11. 2016

새로운 이름, 그리고 늦은 시작

나는 왜 개명을 했을까

나는 왜 개명을 했을까

개명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일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개명을 한다. 이제는 흔한 일이다. 

아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개명을 했다.

저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명학적으로 좋지 않다거나 결혼을 못하는 노총각, 노처녀 아니면 몸이 아프거나 운이 매우 좋지 않다거나 기타 등등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리 명확한 이유를 가진 사람은 사실 없다.

성명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다른 이유들 역시 증명될 수 없다. 

그렇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삶이 좀 더 나아진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개명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이 개명할 이유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개명을 한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변하는 것은 별로 없어."

하지만 그래도 만족한다고 말한다.

결국 변하지 않았는데 만족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현실이 변하길 바라며 개명을 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정말 아주 나쁜 일이 연속해서 생기지 않는 이상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랬어야만 했던 일로 믿었기 때문이다.



바우와우, 개새끼, 멍멍, 왈왈. 

청소년기 나의 별명들이다. 

친구 하나는 길을 가다가 대변을 싸고 깻잎으로 닦아 그때부터 깻잎이 되었고 또 다른 친구는 껌 돌이 혹은 남극물개 그런 것들이 있다.

그 시절은 그런 시절이다.

그때 그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별명은 생생히 기억나곤 한다.

나의 별명의 근원은 이름에서 파생되었다. 

덕우.

덕우를 빨리 하면 도그가 되고 도그는 영어로 개.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이유다.

그래도 이름에 큰 불만은 없었다. 이름을 바꿔야지 하는 마음도 가지지 않았다.

미신 등을 믿지도 않는다.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결단 마음가짐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점점 무너져 버렸다.

사회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나는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사회를 따라가지 않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사실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변명 혹은 합리화였을 뿐이다.

모순이 충돌하는 그 사이 나란 존재에 하나씩의 숫자가 쌓여가고 나는 그 안에 갇혀 버렸다.

자유롭다는 것은 세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이 세계에 갇혀 버린 걸지도 모른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나쁘다는 성명학적 이론과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36년의 나의 인생에 대한 버림이 아니라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그동안 이름을 불러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주는 혼란이 아니라

나의 이름으로 만났던 사람들, 사랑과 추억에 대한 잊힘이 아니라

한 번의 인생에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다.

주민증에 찍힌 새로운 이름이 주는 새로움이 아니라 나에 대한 새로운 시각, 존재에 대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삶에 대한 마음가짐, 두 번째 시작.

낯선 이름을 가진 새로운 시대.

두 번째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

나의 시작은 늦었다. 그럼에도 봄 날을 꿈 꾼다.

꽉 막혀 버린 나의 자유에 나비효과처럼 한 줄기 희망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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