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부정이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우리부부는 아이 교육에 많이 신경 쓴다. 돈이 많아 강남의, 아니 강남까지 갈 필요도 없이 주변 집들처럼 고액 영어/수학학원에 보내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아이가 하고 싶다면 피아노, 미술 정도 보내고, 아이가 싫다면 그 선택을 존중할 뿐이다. 좋아하는 것은 도와주되,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 집의 방법론 중 가장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부모의 관심을 최대화하자는 것이다. 그 관심은 돈이 아닌 진짜 관심이다. 예를 들어 영어는 주말에 짬을 내어 내가 가르치고, 수학은 엄마가 이런 식이다(와이프는 아이 수학교육을 위해 수학 교습자격증을 땄다)
다른 하나는 교육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일주일에 서너차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문제점을 서로 찾아내며 때로는 격렬하게(?) 논쟁한다. 아직까지는 이 방식이 괜찮은 것인지 아이도 공부를 싫어하지 않고 노력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면서 얻은 인사이트 중 하나는. ‘우리 세대의 성공방정식을 아이에게 전수하진 않는다'이다.
우리시대의 성공방정식? 말 그대로 중고등학교 내신 잘 받고 좋은 대학 나와서 소위 대기업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것보다는, 나나 와이프가 알고 있는, 혹은 그 이전 세대가 알고 있던 방식이 우리 아이세대에게 적합한 것이냐에 대한 질문에 우리 부부는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었다는 것이다.
이미 직장인의 생명선이 마흔 중반대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아래로 내려와 있다. 내 연차가 1년 늘수록 최대 직장생활 연수는 1년 씩 줄어가는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속칭 별을 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모그룹 상무급의 평균 재직 연한이 1년 반이라고 한다. 별을 달아도 그 별은 유성(流星)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은 우리의 목표를 '오래 잘하는 것'이라 하셨다. 난 그 말씀에 100% 동의한다. 대부분 그럴 것이다.하지만 그 목표에 비춰보면, 지금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온, 우리 부부가 살아온 성공의 지표와 과정을 아이에게 쉽게 물려주기 어렵다.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목표라 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관심을 갖고 경험을 발견케 하며 꿈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일게다.
예를 들면 이런 얘기다. '대학은 목표가 아니다. 너가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면 그 곳은 대학이어도 좋고, 현장이어도 좋으며, 너의 책상이어도 좋다. 좋은 대학은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과정을 도와주는 곳이다’. 또,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점수나 자격증이 아니라, 너가 알고 싶은 정보 중 영어로 된 것을 알 수 있도록, 너의 생각을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우리의 기준이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 방식을 주입하는 것은 변화대응이나 효용성 차원에서 적어도 앞으로는 맞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여 최상의 방식을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자신의 기술로 체득하여 오랜동안 잘할 수 있는 근육을 만들어 주자'가 우리 부부에겐 중요하다. 그러기에 우리가 생각하고, 살고 있는 이 방정식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가만보면, 이런 현상이 비단 아이의 교육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기업의 운영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성공을 누리는, 누렸던 회사들이 있다. 다만, 그 성공 방정식이 지속가능성이냐를 물으면, 그것은 조금 다른 얘기이다.
(출처: 디라이브러리 http://dl.dongascience.com/article/view/S201305N032/40)
성공은 그 시점에서 적절했던 방식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공했을 때 가장 먼저 그 방식에 대한 부정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 때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고 구가하던 기업은 일반적으로 그 방식을 지속적으로 밀어부치면서, 거기에 효율화를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방법의 강요와 효율성의 잣대가 기준이 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은 시도될 수 없고 도전의 가치를 부정하게 된다. 성공 방정식이 어느순간 미래의 성공을 가로막는 허들이 된다.
주변에서 그런 기업들의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적용했던 단말기 제조사들도 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휴대폰 사업에 있어 안드로이드는 가히 혁명적이었고, 쉽고 빠른 길이었을 것이다. 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Top Tier에 오르고, 덕분에 하드웨어에만 집중(?)할 수있었던 기업들은 저가 제품의 등장(중국 내 경쟁업체), 정책의 변화(단통법 등), 로컬업체들의 강세(경쟁환경 변화)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내가 늘상 이야기하는 광고업도 마찬가지이다. 광고업의 가장 큰 허들은 업의 이름 자체이다. '광고업’ ATL이 위상을 떨치며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던 시절, '광고'라는 것은 그 업의 아이덴터티를 잘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디지털이, 스마트폰이, CATV가, 즉 파편화된 타겟과 소비자와 미디어가 '넓게 알린다'는 광고의 의미를 급격히 과거의 것으로 돌려놓고 있다.
하지만, 이 업의 아이덴터티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기존 업이 주는 수익률과 현재 매출에서의 비중, 즉 '성공적으로 보이는 지표'이다. 광고업의 수익성은 디지털의 등장 등 환경변화로 낮아지고 있다. 거시적 경제지표도 수익성 저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미 빠른 것도 아니지만, 수익성 저하와 디지털 전환의 시대를 그나마 ATL이 받쳐주고 있을 때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어렵다. 매년 목표는 높아지고, 기댈 곳은 ATL 뿐이다.
이것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업의 아이덴터티와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광고업이 아닌 무엇인가로 변화해야 할 때임을 보여주는 시그널인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은 단정하거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확정적인 것 중 하나는 성공을 추구하되, 성공 후 그것에 얽메이지 않고 부정할 수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부모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나, 기업에게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