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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n 27. 2022

삶의 일탈 중 감상한 <일탈한 여인>

주말에 <라 트라비아타>를 봤다. 지난달 뮤지컬 감상 때처럼 오페라도 단짝인 큰 딸과 함께했다. 최근 공연 경험을 바탕으로 지출 규모는 40%로 줄이고, 대신 관람의 질은 살짝 높일 수 있었다. 자리는 더 뒤였지만, 중앙 쪽 좌석을 선택해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오페라 시작 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인터미션 두 차례를 포함해 상연시간이 무려 3시간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생소한 오페라를 이리 오랜 시간 동안 졸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없었다. 지난번에 봤던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도 중간쯤 살짝 지루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공연일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토요일엔 새벽 아르바이트를 가는 큰 딸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이른 기상을 하게 된다. 오전에 3시간 동안 이어지는 불어 수업을 듣기 위해 3시간 왕복 이동시간을 쓰니라 집에 오면 보통 기진맥진하곤 한다. 늦은 점심을 해결한 후 5시에 시작하는 공연까지 약 90분 정도 짬이 있었지만, 오페라 직후에 내가 주재하는 영어 스터디 준비를 위해 쉴 여유가 없었다.




온갖 우려를 안고 도착한 공연장. 각종 악기를 조율하느라 바쁜 오케스트라가 먼저 보인다. 조금 후 무대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준비해 간 쌍안경 도움으로 지휘자와 악기 연주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다 보니, 이미 막이 올라가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무대에 올라 정지화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출연배우들의 화려한 의상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이어 <축배의 노래>를 비롯한 익숙한 곡들 덕분에 귀가 호강한다. 공연을 볼 때는 오페라 배우들이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뮤지컬 배우들처럼 마이크가 이마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무대 밖에서 노래를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풍부한 성량에 압도당했다. 주인공 외에도 50명에 육박하는 배우가 함께 등장해 노래에 힘 있는 선율을 보태고 무대에 화려함을 더했다.


지난번 뮤지컬처럼 쌍안경을 내리 들고 있기는 힘들었다. 놀랍게도 공연 내내 모든 대사와 노래가 전부 이탈리아어였기 때문이다. 쌍안경으로 배우를 살피다 보면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한국어 번역을 놓치기 때문에 쌍안경은 꼭 필요할 때만 잠깐잠깐 이용했다. 팸플릿에 언어가 이탈리아어라고 안내되어 있었지만, 대사까지도 모두 다 이탈리아어라니! '국립오페라단은 역시 다르구나'라며 감탄사만 연발했다. 성악적 기량이 더 요구되는 분야라서 인지 오페라 배우들은 뮤지컬 배우처럼 비주얼이 화려하지 않아 쌍안경을 그리 쓰지 않아도 아쉬움이 덜했다.




범상치 않은 주변 관람객들 덕분에 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앞자리에는 초등학생 남학생 둘이 데려온 부부가 함께 했다. 1막부터 몸을 배배 꼬며 못 견뎌하던 아이들은 2막 때는 급기야 일어나기까지 했다. 부모의 제지로 자리에 다시 앉기는 했지만 팔과 다리를 부산히 움직이며 시야를 다소 방해했다. 뒷자리 여성 둘은 인터미션 때마다 고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목소리가 무척 컸고 웃음소리는 더 컸다.


1막 때 내 왼쪽에는 홀로 온 남자 관객이 있었는데, 2막이 되니 어떤 여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여성 분은 공연장이 마치 안방인 양 다리를 의자 위로 올리며 세상 편안 자세로 관람하기도 했다. 두 번째 인터미션 후 3막에는 다시 남성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표 한 장으로 둘이 나눠가며 본 걸까? 서로 다른 자리를 예약해서 바꿔가며 본 걸까? 후자라고 하기엔 이 커플 바로 옆자리도 비어 있었는데...


두 번에 걸친 인터미션 15분은 금세 지나갔다. 두 번째는 출출하다는 딸에게 먹을 것을 사주러 공연장 밖 편의점으로 행차했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사서, 나도 한 입 얻어먹고 나니 어느새 다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주인공인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케미보다는 오히려 2막에서 등장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케미가 더 돋보였다. 비련의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노래로 호소하는 장면에서 뭉클한 감정도 느껴졌다. 감정선이 충만해지는 건 좋았지만, 눈물, 콧물이 함께 흐르니 힘들었다. 눈물 닦느라, 마스크 살짝 들어 콧물 닦느라 분주했다. 눈물로 시야는 흐려졌지만 가끔은 쌍안경을 꺼내서 무대 세부 연출과 배우들의 표정을 살폈다. 쌍안경을 들 때마다 초기 노안 단계인 내 눈은 다시 초점을 맞추느라 분주했다.


공연이 다 끝나고 드디어 커튼콜. 무대가 정리될 동안 막이 내려지고 3명의 주인공이 먼저 인사를 한다. 장시간에 걸쳐 노래하랴, 연기하랴 혼신의 힘을 쏟아서인지, 아니면 비극이라서인지 셋 다 모두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잠시 후 막이 올라가고 무대를 가득 메운 50명 남짓의 배우들이 인사를 한다. 지휘자와 연출가, 무대감독까지,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여러 차례 박수를 치고 나니 어느새 조명이 다시 밝아졌다.




나의 생애 첫 오페라 관람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오페라를 보다가 잠들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는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감상했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지 않아서였을까? 아무리 훌륭해도 기대가 크면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익숙함과 낯섦이 적절하게 섞여서일까? 줄거리는 다 알고 있었지만 낯선 형식이라 신선했다. 비록 이탈리아어지만 대부분 노래의 멜로디가 익숙해서 즐거웠다.


다음번에는 좀 더 수준을 높여 순수 클래식 공연에 함 도전해봐야겠다. 참, 자막을 조금 놓치더라도 좀 더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게끔 쉰 되기 전에 이탈리아어도 배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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