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서치 힐데 Sep 24. 2023

스우파 프로젝트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동료분을 통해서다. 위트가 넘치지만 독실하고 매사에 진중함이 가득한 분이라 이 분이 스우파 팬이라는 게 놀라웠다. 게다가 원밀리언 리아킴 님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춤을 배운 적도 있다고 하셨다.


스우파를 처음 봤을 때는 큰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걸그룹보다는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탓인지, 그루브와 자연스러운 신체 움직임보다 각 잡힌 칼군무를 선호하는 탓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둘 다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동료분 외에도 여러 분이 스우파를 즐기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시 찾아본 짧은 동영상 속에서 <잼 리퍼블릭>이라는 그룹이 눈에 밟혔다. 크루들을 따뜻한 카리스마로 챙기는 커스틴의 리더십에 우선 눈길이 갔다. 뼈를 갈아 넣으며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치열한 태움 문화가 느껴지는 몇몇 한국 크루들과 달리, 대부분 크루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춤을 즐기면서 경연에 참여한다는 바이브가 느껴져서 멋져 보였다.


나도 이렇게 삶을 즐기는 크루들과 함께 스우파를 결성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었다. 대신 길거리 춤 대신 내가 관심을 갖는 외국어 말하기와 운동이라는 투트랙으로. 문법도 안 맞고 억지로 만든 듯한 단어 조합이지만, 일명 <피킹 앤 피트니스 이터>를.



며칠 전, 세계대학 랭킹 관계자와 줌미팅을 가졌다. 영국에서 세 명, 한국 관계자 두 명, 이제 갓 수습을 뗀 새내기 후배님 한 분과 함께 통역 없이 진행했다. 미리 토킹 포인트를 좀 정리했지만, 완벽한 문장으로까지 만들어 연습하지는 않고, 키워드 중심으로만 정리해 둔 탓에 내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는 하고 싶은 말과 질문을 충분히 하지 못해 좀 아쉬웠다.


하지만 녹화된 회의 영상을 보니 화면 속 나는 제법 당당하고 바디 랭귀지도 적극 활용하면서 꽤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영국 측의 대화는 제대로 녹음이 다 되었지만, 내 목소리는 녹음되지 않아 한국식 영어발음에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더욱 만족스러웠다.


미팅에 함께 했던 까마득한 후배님의 영어실력도 훌륭했다. 어렸을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말하기에 특화된 학원을 계속 다닌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입사초기 내 모습과 비교해 보니 더욱 놀라웠다. 예전 같으면 당장 스터디 함께 하자고 강력하게 제안했겠지만, 이제 이런 주책이 후배들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가는지를 알만큼 철이 들었기에 꾹 참았다.



 

부내 동료들과 영어말하기 스터디 그룹을 가장 길게 운영했던 것은 2008년, 무려 15년 전이다. 같은 부서 동료 다섯 명과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만나, EBS <입이 트이는 영어>를 암기했다. 외국 관계자와 수시로 메일과 유선, 대면으로 소통해야 해서, 영어실력 향상이 절실했던 탓에 우리는 나름 꽤나 진지하게 스터디에 임했다. 하지만 수개월 이상 꾸준히 지속했던 이 스터디는, 내가 다른 부서로 전보되면서 아쉽게 끝내게 됐다.


몇 년 후, 영어 스터디를 재개한 것은 유학을 목전에 두고 서다. 토플 말하기 영역이 자신이 없어서,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던 후배 한 분과 점심시간에 만나 스피킹 테스트를 준비했다. 임신 중이었음에도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우며, 투혼을 불태우는 동료분 덕분에 긴장감 놓지 않고 정말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박사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국제협력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같은 부서에 있는 두 분께 스터디를 제안했다. 암기하고 싶은 텍스트는 각자 정하고, 한글을 보면서 암기한 영어를 자연스럽게 읊는 식으로 진행했다. 두 분 다 영어실력이 수준급이라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명절을 맞이해 스터디 해산이라는 선물을 드리는 걸로 짧은 스터디를 마감했다.


작년에는 연말에 예정된 국제포럼을 앞두고, 컨셉노트를 암기하는 6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매주 가장 잘 암기한 동료분께 내가 소정의 선물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스터디 초반에 우리는 서로 놀랬다. 나는 부서원분들의 탁월한 영어실력과 유창한 발음에. 그들은 나의 전형적인 한국식 발음에. 내가 몇 시간에 걸쳐 간신히 외운 본문을, 어떤 부서원분은 단 30분 만에 완벽하게 암기하곤 해서, 나이의 벽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스피킹에 관련된 나의 스우파 결성 열정은 단지 영어에 국한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는 일본어를 잘하는 동료 한 분과 함께 매일 아침 일드를 암기하는 스터디를 했었다. 그분은 JLPT N1까지 합격한 분이었고, 당시 나는 일본어 공부에 막 재미를 갖기 시작했지만 검정시험에 도전은커녕 기초문법도 제대로 모르는 초보 수준에 불과했다. 왜 그렇게 말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마냥 좋아서 매일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스터디 멤버분이 원래 소속기관으로 복귀하면서 이 스터디도 끝맺게 되었다.


그다음 해에는 마침 불어를 잘하는 동료분이 같은 부서에 있어서, 불어 알파벳도 모르는 분까지 합류해 셋이서 <파리지엔느 되기 프로젝트>도 진행했었다. 단어 암기 중심으로 진행하긴 했지만 셋의 불어실력이 너무 차이가 커서 얼마 못 가서 이 스터디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사내에 불어를 잘하는 후배님들과 가끔 점심을 함께 하며 불어공부에 대한 의욕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중국어 공부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불어공부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서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중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사내 후배님들을 볼 때마다, 빨리 공부를 시작해서 이 분들과 함께 중국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열망이 이글거린다. 몇 년 전 맛보기로 잠깐 배웠던 스페인어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도 아직은 식지 않았다.


2030년까지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5개 외국어에 모두 유창해져서, 폴리글랏 크루로 구성된 스우파를 만드는 게 퇴직하기 전 내 꿈이다. 그런데 사내에서 과연 크루 모집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올해가 이제 딱 99일 남았다. 어제 챌린저스 앱에서 100일 프로젝트가 꽤나 여러 개 론칭됐다. 100% 달성자에게 3백만 원 상금을 나눠준다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었다. 작년 이맘때 나 홀로 작심삼일 프로젝트도 진행했던 내가 이 좋은 기회를 그냥 지나쳤을 리 만무하다.


https://brunch.co.kr/@justina1031/114


사내에서 피트니스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분과 며칠 전 처음으로 소통을 하게 됐다. 업무 관련 대화로 시작했지만, 평소에 내가 늘 궁금해했던 건강관리 관련 꿀팁으로 소통이 마무리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분의 말씀은 '다이어트는 평생!'해야 한다는 거다. 잠깐 체중감량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2주 간격으로 눈바디를 하면서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는 것. '퇴근할 때만이라도 집에서 계단 이용하기, 산책 후 단백질 챙겨 먹기, 탄수화물을 거르지는 말기, 잠을 7시간 이상 푹 자기, 좋아하는 걸 정해서 그걸로 운동하기'와 같이 크게 부담되지 않으면서 요긴한 팁을 전수받았다.


마침 챌린저스 100일 프로젝트에서 이런 배움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러 개 있었다. 욕심 내서 이것저것 가입하다 보니 가외로 진행하고 있던 것들까지 포함해 무려 10개 정도의 미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플랭크, 스쿼트, 주 3회 피트니스, 계단 이용, 프로틴 섭취'와 같이 대부분은 운동 등을 통한 건강관리에 관한 도전이다.


그동안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뤘던 때를 돌이켜보니 내 목표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 또한 공개했을 때였다. 오늘까지 11일째 아침활동을 블로그 서로이웃에게 공유하면서 다시 한번 이 전략이 내게는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공표했다는 것만으로, 꼼지락대며 늦잠 자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고, 야식 하고 싶다는 욕구를 이겨내고, 스트리밍의 늪에 빠지려는 나를 구출할 수 있었다.


99일 후, 좋은 습관들로 더 나아져있을 나를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작가의 이전글 예상외로 가까이 있었던 롤모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