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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an 30. 2021

지금까지 나를 담금질한 세 가지

문계기무(聞鷄起舞)


꽤나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사자성어로 글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다소 있었지만, 가장 사랑하는 단어 중 하나이기에 첫 번째 요소로 기꺼이 선택해봤다.


범양 사람 조적은 진나라를 비롯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닭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나 무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여기서 비롯된 이 고사성어는 포부를 품은 자는 때가 되면 분발하여 나아간다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어느 책에선가 이 사자성어를 접했을 때 나는 4시 기상을 습관으로 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새벽 기상이 점차 습관으로 자리 잡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악전고투를 면치 못하던 때였다.     


나라를 위한 충성심에서 자신의 개인적 삶을 희생한 이도 있는데, 나와 가족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이렇게 새벽행을 불사한다는 점이 약간 부끄러웠다. 그래서 포부를 더 크게 잡았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와 같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이가 되겠노라고. 평범한 이가 어떻게 비범함을 갖출 수 있는지 보여주겠노라고. 새벽에 일어나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명분을 부여하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늘 새벽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새벽이라는 시간대도 컨디션에 따라, 업무과중에 따라 수시로 바뀌곤 한다. 그럼에도 지난 10여 년 간 나를 다잡고 싶을 때면 이 단어가 어김없이 내 삶에 등장했다. 새벽 기상과 미라클 모닝을 일구기 위한 새벽 활동은 지금 나를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내 삶의 두 번째 공신은 바로 촘촘한 시간 가계부다. 어렸을 때부터 계획 세우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계획을 세우다 보면 언제나 등장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점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계획과 실천을 위한 매 순간의 노력들이 담긴다. 매일, 매월, 매년의 이 인생 계획표는 이정표로 늘어선 중간중간의 목표점들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을 향해 걸어가도록 만들었다.     


시간 가계부를 쓰지 않을 때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흐릿해진다. 마치 금전 가계부를 쓰지 않을 때 돈에 대한 개념이 흐리멍덩해져서 잔고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써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계부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기 전, 나는 줄줄 새어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멍하니 TV를 보거나 어제 만난 사람과 어제 나눴던 이야기를 되풀이하곤 했다. 그 이야기가 전혀 생산적이지 못했던 것은 당연지사.


날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셈해보면서 그 날 해야 할 일들을 꼽아보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답적으로 변신해가는 데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플러스 변화만을 생각해보자면, 예전에 재미를 느꼈던 대부분의 일들이 갑자기 너무 시시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원하지 않던 점심, 저녁자리에 동석하는 일, 해야 할 일이 끝났음에도 눈치 보면서 사무실에 남아있는 일, 부내에서 떠도는 갖가지 소문과 복도 통신에 안테나를 세우고 귀를 쫑긋하는 일. 조직생활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선 이런 일들에 너무 무관심한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내 인생의 평화와 행복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자 부침이 심한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삶이 어리석게 여겨졌다.


시간 가계부가 알차 질수록 내 주변의 사람들도 알맹이가 야물게 찬 이들로 채워졌다. 책을 사랑하고 삶의 목표가 뚜렷하고 영혼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 말이다.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마지막 요인은 무한 긍정이다. 처음에 내 삶을 바꿔보겠노라는 굳은 결심을 했을 때 내가 만든 명함에는 '긍정 회로 설계사'라는 퍼스널 브랜드가 자리 잡았다. 외국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영어로 Optimisim Enhance Optimizer라는 영문명까지 만들었더랬다.


지금은 '긍정'이라는 진부한 항목으로 내가 제1인자가 되기에는 쉽지 않아 그 이름을 내렸다. 그럼에도 긍정은 여전히 내 안의 연금술사이다. 희망에 가득 찬 밝은 미래를 꿈꿀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해 내가 생각하는 그 모습이 한갓 백일몽이나 신기루가 아니니 힘을 내라고 속삭인다.     


이런 내 안의 힘은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그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돌파구가 되어 주었고, 인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 속에서 교훈을 찾으려 노력했다. '마크툽', 인간의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신의 섭리가 작용하는 상황에서는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었다고 내게 일러주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긍정의 힘 덕분에 나는 나보다 한 가지라도 더 강점을 갖고 있는 이들은 쉽사리 좋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모든 사람들이 다 나보다 나은 점이 한 가지 이상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는 스승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쉽게 좋아하고, 상황 속에 내재된 밝은 면만 바라보면서 비상한 결과, 오늘날 나는 지금 이 자리에, 꽤나 만족스럽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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