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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Feb 01. 2021

고3 딸 뒷바라지 후기

2002년 12월 첫눈이 폭설급으로 내리던 날,
큰 아이를 낳았다.


첫 아이라 너무 신기하고 더욱 소중했다. 출산휴가 3개월은 순삭이었다. 당시 직장은 서울에 있었지만 거처할 곳이 없는지라 큰 딸을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남편은 지방에서 홀로 직장생활 중이었으니, 세 명의 가족이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게다.


퇴근한 후 늦은 밤, 말도 못 하는 큰 아이 목소리를 듣겠다고 친정집에 전화해서는 아이의 옹알이에 눈물을 흘리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 방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도 없기에 소리 죽여가며 끄억끄억 울곤 했더랬다.


이렇게 내 마음을 몽땅 가져갔던 큰 아이가 벌써 성년이 돼서 오늘 키즈 통장 대신에 홀로 예금통장을 만들 계획이다. 친지들로부터 받은 대학 입학 축하 용돈을 모은 덕이다.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고3 학부모.
역시나 어설펐다.


여름 끝자락, 딸이 작성한 자기소개서에 대한 어쭙잖은 피드백을 했다 딸과 사이만 어색해졌다. 한 달쯤 후, 9월 말에 수시 원서 6개를 접수할 때는 소신지원과 안정지원 사이에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다 딸의 마음만 더 혼란스럽게 했다. 5개 원서는 딸이 전공하고 싶어 하는 웹툰과 애니메이션 학과에 넣고, 나머지 한 개를 보험용으로 일반학과에 넣기로 했다.


딸이 만화를 전공하고 싶다고 마음을 정한 건 고2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그 전에는 미술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었고, 홀로 재미 삼아 그림을 그리곤 했던 게 다였다. 딸이 공부를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기에, 약간 고민이 됐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게 남는 거라는 소신 덕에 숙고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것은 즐거웠지만, 입시용 그림이 즐거웠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다른 학생들보다 꽤 늦게 그림을 시작했기에 상대평가 구조에서 딸에게 실기고사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정시는 실기고사가 거의 기본 조건이었기에 수시에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5개 원서는 소신지원용으로 쓰기로 했다. 작년 입결을 봤을 때 가능하지도 않을까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1개 대학은 집 근처 거점 국립대로 정하고, 마지막 날 원서를 접수하기로 했다. 실시간으로 경쟁률을 확인하다 그나마 졸업 후 취업이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학과를 지망했다. 말로만 듣던 눈치보기 원서접수를 해보니 딸이 고3이라는 게 더욱더 실감이 났다.




12월 3일, 수능일이다.


오늘 이 날을 위해 수능용 도시락 싸기 리허설까지 했다. 지인들에게 수능 날 도시락 반찬을 문의해본 결과, 평소에 먹던 게 가장 무난하다는 답을 들은 터라, 스팸 부침과 메추리알 장조림, 김치와 된장국을 준비했다.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나서 도시락과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전날 밤, 딸이 냉장고에 넣어둔 요거트를 눈치 없는 막내가 먹어버린 탓에 요거트를 사겠노라고 6시 대에 온 동네를 뒤졌다. 편의점은 모두 불이 껌껌하게 꺼져있다. 그나마 문을 연 커피숍은 요거트가 있긴 한데, 7시부터 주문이 가능하니 밖에서 기다리란다.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 딸에게 상황을 알려주니 너그럽게 그냥 집으로 들어오란다. 성격이 동글동글한 남편을 닮은 딸이 새삼스레 더 좋아진다.



벌써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중이다


수능시험 종료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데, 날씨가 이렇게까지 춥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릴 거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얇은 가을용 점퍼만 걸친 남편은 오들오들 떨고, 따뜻한 점퍼 대신 겨울 코트만 걸친 나도 오들오들 떨고 있다.


딸은 거의 마지막으로 나왔다. 친구와 함께 재잘거리면서 나온다. 표정은 밝다. 가채점을 해보니 실기 준비를 하느라 수능 공부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 치고는 점수가 나쁘지는 않다. 수시는 최저만 맞추면 되기에 큰 부담 없이 시험을 치른 게 주효했던 게 아닌가 싶다.




12월 6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김밥 16줄을 쌌다


어젯밤 김밥용 재료를 자정 넘어까지 다 준비해둔 덕에 제법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오늘은 딸이 면접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다. 며칠 전 수능시험장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던 우리 부부는 갖고 있는 옷 중 가장 따뜻한 걸로 중무장을 했다.


면접시험은 14분 준비에, 10분 발표다. 딸이 몇 번째로 면접을 볼 지 알 수 없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종잡을 없다. 집으로 아예 돌아가서 기다리자는 남편과, 교문 앞에서 아이를 맞이하도록 학교 근처에 머물러야 한다는 내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내가 이겨서 남편은 차 안에서 자면서 기다리고, 나는 다음 주에 생일을 맞이하는 딸에게 줄 목도리를 뜨면서 아이를 기다렸다.


차 안에 갇혀서 뜨개질을 하는 내 모습이 마치 백조왕자의 한 장면 같다. 물론 쐐기풀로 장작더미 위에서 뜨개질하는 공주의 시련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갑자기 배뇨감이 들면 어디에서 어떻게 해결하지라는 고민을 잔뜩 안은채, 초조한 마음을 기계적으로 뜨개질을 하면서 달랬다.


다행히 내 시련은 길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아이 전화를 받았다. 수험번호 2번이었고 시험은 무난했고, 그럭저럭 잘 본 듯싶다고 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꽤나 들떠있었다.




수능을 앞두고 초콜릿, 떡, 케이크를
챙겨주는 분이 많았다


매년 수능 보는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3 학부모가 된 주변 분들을 챙겨줄 생각을 미처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앞으로 마음 잘 나누는 배려심 깊은 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만 쌓였다.


시험을 보고 난 후에 딸의 모습은 밝았지만, 입시결과는 그리 밝지 못했다. 수시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아이의 눈물만 늘어갔다. 마지막 결과가 발표되던 날, 딸은 하염없이 울었다. 웹툰과 애니메이션으로 지원한 대학에서 모두 고배를 마시게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보험용으로 넣어둔 인근 대학 일반학과 하나. 1월 초, 매일 초조하게 입시결과를 확인하던 딸이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합격! 가까운 친지분들께 기쁜 소식을 전하니, 딸 등록금에 보태라며 십시일반 마음을 건네주셨다. 어차피 다음에 되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친지분들이 보내준 용돈은 오늘 딸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으로 재탄생한다.


사회인으로, 경제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딸의 미래가 기대된다. 고2인 아들이 내년에 고3이 되면, 이번엔 좀 더 프로다운 고3 엄마가 되어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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