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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Dec 29. 2020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어에 취해 비틀거리다

“혹시 관용여권 있나요?”

“아니요.”


“금요일자로 00팀장으로 발령이 날 텐데, 이틀 후인 일요일에 바로 이집트로 출장을 가야 하니 시청에 가서 일단 여권부터 발급받으세요.”


“관용여권을 받으려면 구체적인 출장 일정과 사유를 적은 공문이 필요한데, 아직 저는 정식발령이 안 나서 어려운데요.”


“그럼 인사 통지서를 하루 먼저 목요일에 공지할 테니 그걸로 진행하세요.”


이렇게 엉겁결에 나는 아프리카와 처음 만났다.

현지 날짜로 2016년 11월 21일,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했다. 내 역할은 아프리카 교육장관들의 협의체인 교육발전협의회(ADEA)에 우리나라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내 임무는 회의 안건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다음 해 3월에 있는 총회 기간 중 ‘제2차 한-아프리카의 날’을 개최하겠다는 것을 천명하고 참여 국가의 지지 발언을 이끌어야 한다는 특수 임무도 있었다. 새 업무를 차분히 숙지할 겨를이 없었기에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자료를 읽고, 발언문 초안을 손보고, 핵심 요지를 암기했다.     




회의는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로 동시통역이 진행됐다. 안건과 관련한 한국의 의견과 협력 상황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기내에서 부지런히 준비했기에 큰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발언 기회를 얻어서 특별 세션을 만들고 싶다는 한국의 의지를 표명하고 참여국의 찬성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국제협력 업무는 네트워킹의 힘이 매우 중요하기에 일단 내 편부터 만들기 위해 접촉할 국가를 골랐다.     


당시에 아프리카 몇 개 국가들과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 중 가장 핵심 국가라 할 수 있는 케냐부터 공략했다. 세션 중간 잠시 쉬는 시간에 케냐 대표에게 다가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지지를 요청했다. 


케냐는 스와힐리어 외에도 영어가 공용어였기에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후에 접촉한 국가들도 대부분 흔쾌히 지지의사를 밝혔다. 아프리카 국가 각료의 상당수가 유학파라서인지 외국어가 유창한 게 인상적이었다.    




나를 더욱 매료시킨 것은 다음 세션이었다. 이 국제회의에는 수원국인 아프리카 국가 외에도 공적개발원조를 하는 공여국도 대거 참석했는데, 유럽에서 온 한 대표가 영어에 이어 프랑스어로 발언을 이어갔다. 


영어와 불어를 혼용해서 발표하니 영어권 국가뿐 아니라 불어권 국가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다. 언어의 힘과 저력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10년쯤 후에 국제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면 저 대표처럼 영어와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서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싶다는 열망이 타올랐다.




그로부터 넉 달 가까이 흐른 2017년 3월 13일, 아프리카 교육장관회의가 개최되는 세네갈로 출국하기 위해 한국대표단이 공항에 집결했다. 


두 번째로 방문하는 거라 긴장은 덜했지만, 큰 행사를 치러야 했기에 부담은 더 컸다. 출장 내용과 절차를 챙기는 것 외에도 소소하게 신경 쓸 일이 더 있었다. 이번에는 황열 주사를 접종하고 출국 이틀 전부터 말라리아 약도 복용했다.      


세네갈 다카르에서 나는 또다시 프랑스어와 만났다. 


공용어가 불어라서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늘 불어가 먼저 들렸다. 특히 세 명이 나를 프랑스어의 매력으로 이끌었다. 


제일 먼저 불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이는 한국인이었다. 한-세네갈 양자회담에 배석한 주세네갈 한국대사께서 유창한 불어로 공식 통역관이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보충했다. 회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서 협의 밀도도 높아졌다.      


다음으로 나를 가슴 설레게 했던 프랑스어는 현지인을 통해서였다. 총회 기간 동안 여러 국가와 기관에서 다양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중 우연히 들른 한 부스에서 현지인이 내게 간단한 불어 단어를 몇 개 알려줬다. 불어를 거의 모르던 때였지만, 동글동글한 발음과 매력적인 보이스가 조화를 이뤄 프랑스어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불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정적으로 결심하게 된 것은 함께 했던 한국 대표 중 영어와 불어가 유창했던 한 20대 여성분을 통해서였다. 많은 현지 언론이 우리가 운영 중인 공간을 방문했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과 인터뷰는 거의 이 분이 전담했다.


불어공부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게 된 것은 이렇게 역량이 뛰어난 분이 비정규직이라는 점이었다. 정규직인 나는 외국어에 있어서 최소한 이분만큼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기특한 반성을 하게 됐다. 기쁘게도 몇 달 후에 이 분은 정규직 입성에 성공했다.




아프리카에서 받은 자극이 계기가 되어 얼마 후에 불어공부를 시작하게는 되었지만, 불어는 그리 만만한 언어가 아니었다. 


영어만 해도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는데 어쩌다 한번 시간 날 때만 찔끔찔끔하는 공부로 실력이 쌓일 거라 기대하는 게 과욕이긴 하다. 게다가 부서까지 국제협력과 무관한 곳으로 옮기고 나니 외국어 공부의 동력이 확실히 낮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도 일어나면 출근하기 전에 단 5분이라도 불어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적어본다. 언제가 될지, 기회가 오기는 할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 국제협력 업무를 맡게 될 때 뒤늦은 후회만 하고 싶지는 않기에 불어공부를 중단할 수 없다. 


아, 생각해보니 오늘은 휴일이라고 콧노래 부르며 일어나자마자 이 글을 쓰느라 아직 불어공부를 못했다. 이제 이만 글 마무리하고 불어공부해야겠다.      


À bientô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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