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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Dec 29. 2020

점심을 거르는 아들의 뒤에는

아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않는다. 올해로 4년째다. 코로나 19로 인해 도입된 온라인 클래스가 아들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점심이다. 집에서 수업을 들으니 점심을 굶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들은 왜 점심을 먹지 않을까? 먹고 싶지 않아서? 아니다. 급식 식단표에 흘깃 눈길을 주는 걸 여러 차례 봤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이것도 아니다. 식욕이 왕성할 나이라 집에 돌아오면 늘 배고프다는 말부터 한다. 특이 체질이라서? 절대 아니다. 편식이 심한 편이기는 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식품은 딱히 없다.     


점심을 먹지 않으니 아침 식사를 고열량으로 준비하게 된다. 아침 밥상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소화에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육류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 건강에는 안 좋지만 담백한 구이보다는 기름을 두르고 부침이나 튀김을 해서 조금이라도 늦게 배가 꺼지게 한다. 간식으로 가볍게 먹을 만한 영양바나 초콜릿도 챙겨준다.




아들이 점심을 안 먹는 이유는 친구가 없어서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주지를 몇 번 옮기면서 친구 사귈 기회를 놓쳤다. 4년여 전, 지금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 왔을 때, 아들은 6학년 2학기였다. 아는 친구 단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외롭게 한 학기를 버텼다.


이미 형성된 친구 그룹에 호기롭게 끼어들 만큼 배짱도, 친화력도 부족했다. 전학생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끔 말 걸어주는 친구가 있었지만, 지나치게 내성적인 아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친구는 없었다.      


중학교에 가면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다른 이의 시선에 굉장히 예민한 아들은 결국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급식실까지 함께 이동하고, 즐겁게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르는 아들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을 바꿔보려고 강경책과 회유책을 모두 써봤지만 다 실패했다. 크게 혼내니 아이와 사이만 나빠졌다. 밥을 먹으면 용돈을 주거나 공부를 줄여줘 봤지만 이 역시 지속적인 효과를 못 봤다.     


두 살 터울이라 같은 학교에 다니던 큰 딸에게 물어봤다. 딸은 의외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급식실 분위기가 친구가 없으면 홀로 먹기가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어지간히 강한 멘털을 지녔더라도 쉽지 않을 거라며, 자기도 혼자 먹는 것보다 굶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는 딸의 이야기는, 그러나 당시에는 위로도 공감도 되지 않았다.



의외의 곳에서 아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년 전, 담당하던 사업이 진행되던 학교를 방문해서 프로그램을 참관했다. 마치고 나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함께 급식을 먹자는 교장선생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급식실로 향했다. 도시락 세대인 나는 급식실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대학시절, 기숙사 안 식당을 이용해보곤 했지만 초중등학교 급식실과는 굉장히 다른 분위기였다.     


친구가 없으면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사방이 뚫려있는 곳에서 아이들의 시선은 함께 식사하는 또래 친구들에게 향했다. 즐거움과 흥분이 가득 담긴 목소리들이 빚어내는 생동감과 활력이 공간을 채우고도 남았다.


이 다양한 연대의 층위 속에서 홀로 외딴섬이 되어 많은 이들의 시선을 감내하며(정작 다른 친구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수 있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밥을 먹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거라는 판단이 섰다.     


돌이켜보니 나도 내가 속한 그룹 안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내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게 되면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찾아가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재빨리 먹어치운다. 이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스러워 아예 샌드위치처럼 가벼운 식사를 따로 준비해서 내 자리에서 먹을 때도 있다.


가끔씩은 부서원들과 먹기도 한다. 하지만 말없이 밥만 먹는 분위기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 내키지 않아 차라리 홀로 먹는 게 마음 편하다.




그 뒤로 아들을 혼낼 수 없었다. 점심을 거르는 아들 뒤에는 이렇게 내성적인 엄마와 더 내향적인 아빠가 있었다. 남편은 외식을 하면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남편 또한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하다. 2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키워둔 외향적인 부캐를 가끔씩 꺼내놓기라도 하는 나와 달리, 퇴직한 뒤로 외부와 접촉을 완전히 끊은 남편의 경우는 5년 간 내항적인 성격만 더 공고해졌다.      


부모의 유전자 중에서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DNA만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 아들에 대한 화는 연민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친구를 사귀기 위해,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좀 더 노력하지 않는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졸업 후에 맞닥뜨릴 여러 규율과 제약에 익숙해지도록 훈육하는 것이 부모의 책무인데, 내가 책임을 방기 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금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아들이 자유롭게 살도록 허용해주고 싶다. 학교에서 눈치 보면서 위축되어 지내는 아들이 집에서만은 무장해제하고 실컷 웃고 마음껏 말하도록 하고 싶다. 남들에게는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에도 심신이 지쳐서 돌아오는 아들에게, 내 어깨를 내주면서 포근히 쉬도록 해주고 싶다.




“과장님, 오늘도 저희랑 점심 안 드세요?”

대답이 바로 안 나온다. 2초쯤 정적이 흐른 뒤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따로 먹겠다고 답했다. 아들도 이렇게 친구가 매일 점심 같이 먹자고 물어봐주면 일주일에 한 번, 아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못 이기는 척 함께 먹을 텐데.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친구와 친해질 수도 있을 텐데.      


코로나 19로 급식실에 방역 투명 칸막이가 설치되었을 때 정말 기뻤다. 이제 아이들이 각자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고 먹으니 드디어 아들도 학교에서 점심을 먹으며 ‘보통’ 아이들처럼 지내겠구나 싶었다. 아들도 내심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적응에 ‘실패’했다. 3년 이상 뿌리내린 행동과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의 삶을 바꾸려 하지 말고 일단 내 삶부터 바꿔야겠다. 내년부터는 용기 내서 부서원들과 함께 하는 점심을 한 달에 두 번으로 늘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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