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하실 분께 연락을 드렸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직접 연락이 닿지 않아 스케줄을 총괄하는 분을 통해 기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차량 출입 허가를 사전에 받아둬야 하기에 차종과 차량번호가 필요했다. 문자로 차량번호가 도착했다.
1111
골드번호 차량을 소유할 정도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둬야 할까? 물론 꽤 저명한 분이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재화의 규모에 주눅 들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치지만, 잠시뿐이다. 마침 전문가분의 연락처도 알려주셔서 핸드폰에 저장하니, 최근 발간하신 저서가 1위에 오른 사진이 프사로 확인된다.
이렇게 전문성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거머쥐고, 당연한 수순으로 재력까지 갖춘 분이라면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당당하게 확립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을까? 남들 자는 시간에 글 쓰고, 남들 노는 시간에 강연 원고 쓰고, 남들 쉬는 시간에 방송에 도전하신 결과일 게다.
잠 줄이고, 남들보다 곱절 노력하면 역시나 만족스러운 성과가 따라온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히 살았던 때가 딱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고3 시절. 누구나 다 열심히 할 때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서 그 혜택을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취업준비 시절. 만 3년 반, 햇수로 4년을 정말 고 3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다행히 운도 따라줘서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나보다 더 노력해도 운이 살짝 못 미쳐 행운을 잡지 못한 선후배들도 많았다. 어떤 결실이 오롯이 나만의 노력 덕분이라고 큰소리 칠 수 없는 이유다.
마지막은 유학 준비 시절. 아이들은 어리고. 회사 일은 폭증 상태고. 읽고 싶은 책은 산더미고. 그 와중에 꾸역꾸역 영어공부를 했고, 절실하게 매달린 결과 원하는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학위과정 중에도 제2의 고 3이라는 각오로 임한 덕에 예상보다 빨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힘들게 살 때는 너무 고달픈데, 지나고 나면 뿌듯함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쉬엄쉬엄 일하고 난 뒤에는 기억나는 성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 미친 듯이 몰두하고 주말도 반납하고, 한밤중까지 매달렸던 것들은 기억에 유독 남는다.
몸이 힘들어 과정 중에 불평이 나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좋은 결과까지 얻지는 못했더라도, 몰입하며 보낸 시간과 함께 한 열정과 헌신이 가슴 깊이 새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 때 초인을 꿈꿨던 적이 있다. 지금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유치하지만, 이렇게 담대한 꿈을 꾸던 과거의 나도 내 일부다. 예전의 나를 부끄러워하면, 지금 내 일부를 부인하는 셈이다.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가슴 벅찬 꿈을 꿨던 건, 당시 자기 계발서를 주로 읽었기 때문이다. 기적을 이룬 스토리로 쌓여서 지내다 보니 나 역시 이 대열에 당장이라도 합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범인으로 살고 있다. 맡겨진 일은 충실하게 하려고 한다. 근로자가 아닌 엄마, 딸이라는 다른 역할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가열차게 나를 몰아세우는 일은 거의 없다. 피곤하면 쉬고, 놀고 싶으면 논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내가 흠모하는 삶을 꾸리고 있는 단단한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될 때 더욱 그렇다. 차량번호 <1111>을 확인하는 순간, 며칠 전에 책으로 만나본 경계의 철학자 최진석 교수님의 글이 떠올랐다.
"공부를 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왜 어떤 사람은 그냥 일반적인 학자고, 어떤 사람은 지성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까지 올라설까? 왜 어떤 군인은 형식적으로 근무하는데, 어떤 군인은 목숨을 바치는 헌신성을 발휘할까? 결국 그 사람의 내면과 함량이 어떠한가가 관건이다. 곧 사람이 문제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는 그 사람의 문제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가 그 사람의 지성적인 높이를 결정한다. 또한 삶의 수준과 시선의 고도를 결정한다."(경계에 흐르다, p. 141)
이 글을 쓰게 된 건, 어제 아들의 성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주지주의 학습결과를 압축한 성적표만으로 아이의 잠재력을 꺾어 버리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하다. 나름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부모로서 훈육을 더 했어야 했나 싶다가도, 나 자신을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신독!
초인이 되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초인을 지향하며 살고 싶다. 비록 범인의 수준에 머물더라도 시선은 저 높이 두고 싶다. 다음 주 <1111>의 주인공, 그분을 만날 때까지만이라도 이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