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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May 30. 2021

내일 일기

그래 결심했어


내일을 미리 리허설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조금 더 먼 미래를 미리 살짝 살아볼 수 있다면? 고3과 대학 새내기 시절, <TV 인생극장>은 이런 내 고민에 대한 답을 줬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선택지 앞에서 이휘재 씨는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며 결정을 했다.


미래를 미리 살아보지는 못하지만, 내가 원하는 미래에 가까워지는 지혜는 조금씩 터득했다. 미래일기를 써보는 것. 조혜련 씨의 <조혜련의 미래일기>란 책을 읽은 뒤로 아주 아주 가끔이지만 미래일기를 썼다. 1년 후, 3년 후, 5년 후를 그려보기도 하고, 좀 더 멀리 가서 20년 후를, 아예 내 삶의 마지막 날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6년 전 미래일기...그리고 지금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7_20년 후 미래일기_2031년 8월 2..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20년 후 미래일기를 쓴 게 10년 전이니, 이제 10년 후면 내가 상상했던 그때가 도래한다. 이 글대로라면 나는 올해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해야 한다. 5년 전부터는 체계적인 책모임을 시작했어야 했다. 이룬 게 거의 없다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글 쓰는 이로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고 싶다고 열망만 했지, 꿈만 꾸고 부지런히 실천하지 않으니 눈에 띄는 결실이 부족하다. 여전히 내가 쓴 글은 사장님 목소리로, 내가 작성한 계획은 기관의 입장으로만 대변된다. 내 이름 석 자로, 오롯이 내 이야기로 세상에 빛을 보는 건 거의 없다.


시간 전망이 너무 길어 자칫 책임감도, 이행 의지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먼 미래일기 대신에 당장 내일 하루를 먼저 그려보는 건 어떨까?


5월 31일, 내일 일기


새벽 5시에 눈을 뜬다. 일요일 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늘 늦게 잠자리에 들곤 했지만, 어제는 굳은 의지로 11시에 잠자리에 들었기에 새벽 기상이 힘들지 않았다. 감사일기 세 꼭지를 쓴 다음에 5월 한 달을 마무리하는 블로그 포스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올해 들어 매달 말미에 한 달을 반추하는 포스팅을 남기고 있다. 올해 세운 계획을 대충 뭉개버리지 않기 위해 시작한 습관인데, 새로운 달 시작 전 연착륙 전략으로 탁월한 선택이다.


블로그 포스팅을 끝내자마자 오늘치 일본어를 공부한다. 오늘은 2012년 기출문제 <청해 1> 파트와 문법을 익숙할 정도로 읽어서 녹음 인증을 해야 한다. 와카메 센세께서는 문장과 내가 혼연일체가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달달 암기해서 녹음하라고 강조하신다. 영어 공부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비록 발음은 구수한 한국식이더라도 최소한 내가 원하는 표현만큼은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해 매일 <입이 트이는 영어>를 암기하곤 했다. 일본어도 영어만큼 정성을 들이면 언젠가는 일상회화가 가능한 날이 오겠지?

 



TED ED 쉐도잉으로 출근 전 공부를 마무리한다. 영어공부에 좀 더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하는데, 하루에 기껏 10여분 정도밖에 투자하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요즘 딸과 함께 걷기 운동할 때는 영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그걸로 자위를 해본다. 아침을 먹으며, 김호연 작가님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마저 읽는다. 오늘 점심 후 서점에 반납할 예정이라 속독을 했다.


5월에는 지난달에 이어 독서에 전념했다. 4월 45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38권을 읽었으니 꽤 선방한 셈이다. 읽는 책이 쌓이면서 낯선 작가, 좋은 문장, 감동스러운 스토리, 새로운 정보를 알게 돼서 기쁘다. 물론 읽기가 쉽지 않아 너무 심한 발췌독을 하거나, 진심을 쏟지 않고 읽은 책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아예 책장을 펴보지 않고 포기하기보다 지금처럼 욕심껏 마구마구 읽고 싶다.

 



출근해서 숨을 돌린 후 이번 주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 우선순위를 정한다. 목요일 오전에 중요한 회의가 있고, 다음 주 업무 관련 사장님 사전 보고도 목요일 경 있을 예정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지시받은 대형 프로젝트 관련해서 이번 주 중반까지 어느 정도 보고서 윤곽을 짜두어야 한다. 다행히 지난주 수요일 회의 이후, 업무 소관이 불분명해 고민했던 사항은 유관부서의 협조로 잘 마무리가 되고 있다.


예산 시즌이기 때문에 오전에는 내년도 예산 관련한 논리를 보강하며 보냈다. 내년에는 올해 대비 예산을 5배 이상 증액했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감액이 불가피하다. 새롭게 추진하려는 신규업무 관련해 부서를 재편하는 준비도 이번 주에는 본격화된다. 목요일에 새 책상을 몇 개 더 들여놓게 되니, 후임 인사 관련해서 인사부서와 다시 한번 논의를 했다.




올해 들어 거의 매달 신규 기획안을 내놓았다. 1월에 금년도 사업방향을 제시했고, 2월에는 기관 위상과 역할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3월에는 사장님의 관심사항 관련 추진방안을 도출했고, 4월에는 기술분야별 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가정의 달 5월에는 이에 맞춘 계기 방안과 각종 행사를 준비했다. 6월에는 확정된 신규 어젠다가 없으니 차근차근 신규조직 내실을 기해야겠다는 계획은 사장님의 긴급 지시로 물거품이 되었다.


목요일 오후에 예정된 사내 교육에 참석한 후 이를 새로운 의제로 발전시켜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각 기관이 추진하는 업무를 한데 모아 새롭게 발표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재설계해서 타 기관장들과 함께 공동 발표하는 플랜도 구체화해야 한다. 오후에는 6월에 정교화해야 하는 지시사항 관련 참고자료를 찾고, 숙독하고, 대략적인 구상을 하며 보냈다.




퇴근 후 이번 달 마지막 불어 수업을 들었다. 신중성 불어 학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수업을 넉 달 동안 연이어 수강했다. 다음 달에는 일본어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불어 수업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수업이라고 생각하니 다소 아쉽기도 하다. 수강생은 수강신청을 통해 선생님과 다시 만남을 선택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그리운 수강생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자본주의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잔인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수업 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달엔 근력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운동한 만큼 먹는 양도 만만치 않았지만, 운동량을 늘리고, 가족과 함께 운동하는 재미를 느끼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최근에 플랭크 4분, 레그 프레스 80kg, 데드리프트 20kg로 시간과 중량을 늘렸는데 아직까지는 별 무리 없이 해내고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 일기를 썼다. 6월 1일 내일 일기를 블로그에 비공개 포스팅으로 남겼다.


1년 가까이 중단해 온 꿈노트도 기록했다. 꿈노트의 위력을 몇 차례 절감한 적이 있다. 시각화 이미지보드로 만들어 놓은 꿈보드도 아직 거실과 방문에 걸려있다.


이런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게으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곤 했다. 내일 일기 덕에 위약한 존재에서 탈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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