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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an 01. 2021

내 인생에서 잊고 싶은 500원 동전 두 개

“누가 내 지갑에 손댔어? 너지?”

“아니에요.”

“그럼 누구야?”     


고모 지갑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있었다.      


지폐도 있었던 것 같다. 지폐까지는 손댈 엄두가 안 났고 그저 동전 하나가 갖고 싶었다. 500원 주화가 새롭게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신기했던 것 같다. 그걸로 뭘 했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범인은 나였는데, 서슬 퍼렇던 고모가 무서워서 고백을 못했다는 거다. 고백했다면 아마 뺨따귀쯤은 가볍게 맞지 않았을까. 당시는 체벌이 행동교정용으로 각광받던 시절이었으니.     


내가 아니라면 범인은 남은 하나.


내 남동생이다. 나는 남동생이 범인이 아니란 걸 알지만 고모는 모른다. 일종의 마피아 게임이랄까. 나는 마피아 역할이지만 마피아가 아니라고 우기면 된다. 고모는 경찰 역할이다. 마피아가 누군지 알아내야 하지만 정보가 없다. 탐문을 통해 찾아야 한다. 남동생은 의사 역할이라 마피아로 몰리면 억울하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면 억울함은 풀린다.




안타깝게도 남동생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시치미를 제대로 뗐고 고모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포기했다. 대신 동생을 추궁했다.     


“00야, 네가 고모 돈 500원 훔쳤어? 거짓말하면 지옥 간다.”

“안 훔쳤는데도, 훔쳤다고 말하면 그것도 거짓말이에요?”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아 동생은 사리분별력이 낮았다. 동생은 뭔가 억울했지만 그냥 훔친 걸로 마무리를 했다. 동생이 고모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을까? 대답은 ‘NO’다. 당시 동생은 고모에겐 치외법권과 유사한 존재였다. 귀여운 외모, 막내다운 넘치는 애교.      


동생만 편애하는 고모가 미웠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동생도 얄미웠다. 고모 돈 500원을 훔친 이면에는 이런 증오와 질투 또한 적당히 뒤범벅되어 있었다.




고모 돈 500원을 훔친 원죄의 대가를
치르게 된 건, 몇 년 후였다.     


중학교에 갓 입학해 친구가 거의 없던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아 안면이 있던 친구가 500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500원이면 자장면 한 그릇을 사 먹을 수 있었다. 당시 학생 버스비는 달랑 100원이었다. 거금을 통 크게 빌려줄 만큼 친구가 절실했다. 내성적이라 친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뒤로 친구가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가끔 보일 때면 늘 손에 뭔가 들고 있었다. 매점에서 만나면 양 손에 빵이며 음료수가 있었다. 궁금했다. 간식을 사 먹을 돈이 있는데 왜 내 돈을 갚지 않을까.


친구가 되고 싶어서 돈을 빌려줬는데,
우리는 원수가 됐다.


그때부터 그 친구 얼굴이 보일 때마다 돈을 갚으라고 했다. 친구는 알겠다고만 하고 전혀 갚을 기색이 없었다. 500원 동전 하나가 간절하게 필요할 만큼 궁핍하지 않았는데도 왜 그렇게 그 친구를 추궁했을까?   

  

내로남불

내가 고모 돈 500원을 훔친 건 괜찮지만, 내 돈 500원을 안 갚는 친구는 용서가 안됐다. 배신감과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1학년을 보냈다. 그 뒤로 친구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한참이 지나
이 친구의 소식을
어느 날 뉴스에서 들었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친구네 집에 화재가 발생했다. 친구는 동생들과 함께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나 때문에 친구가 죽은 건 아니었지만 가슴이 콩닥거렸다. 원인불명의 죄책감과 수치심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친구의 죽음 후에 내겐 소소한 변화가 생겼다. 내 돈을 빌려간 이에게 갚으라고 종용하지 않는다. 괘씸한 마음까지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지만 밖으로 드러내 놓고 내 증오를 표출하지는 않는다. 채무자가 밉지만 그게 죽음과 맞바꿀 만큼 큰 죄는 아니다.


결혼 후 시댁은 여러 차례 남편에게 돈을 빌렸다.     

큰 형님이 1,500만 원을 빌린 것으로 시작해 둘째 형님은 5천만 원을 빌리셨다. 새 사업을 시작하시던 시숙님은 9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셨고, 남편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1억 원을 빌려드렸다.    

 

남편과 성향이 가장 비슷한 둘째 형님은 꼬박꼬박 성실하게 거의 다 갚아주셨다. 큰 형님은 천만 원을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으셨다. 시숙님은 절반을 갚으셨다. 남편이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보살펴 주었으니 나머지는 그걸로 갈음하기로 했다.     


어릴 적 상처 때문에 시댁에 드러내 놓고 돈을 갚아달라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대신 호인과 호구를 겸비한 남편에게 도끼눈을 흘기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     




고모는 지금 꽤 부자다. 고모부의 사업이 번창한 덕분이다. 하지만 난, 고모가 그때 날 너그럽게 용서해준 덕분이라고 맘 편히 생각한다.     

 

동생은 아직까지 억울한 과거의
뒷이야기를 모른다.      

아마 기억도 못할지 모르겠다. 죄책감을 용돈으로 퉁 치고 있다. 동생이 학생일 때는 동생에게, 조카가 생긴 뒤로는 조카에게 주고 있다. 새해 첫날인 오늘도 ‘세뱃돈’이라 쓰고 ‘마음 빚 갚기’로 읽힐법한 용돈을 조금 보냈다.




몇 시간 전에 큰 형님이 500만 원을 갚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외벌이로 큰 애를 올해 대학 보내야 하는 내 사정이 안쓰럽게 느껴지셨나 보다. 아예 잊고 있으니 이렇게 복을 받는다.     


이제 나도 동생에 대한 내 마음속 500원 빚을 갚고 싶다.

이 글을 마치고 동생에게 슬쩍 브런치 주소를 보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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