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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n 17. 2021

10년 만의 정리

메일 함이 꽉 찼다. 10년 전에 유학 준비를 하면서 글로벌한 느낌의 메일이 필요할 것 같아 부랴부랴 만들었던 구글 계정이었다. 몇 달 전부터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는데, 메일함 정리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100%를 초과해 더 이상 메일을 수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메일함만 정리해도 환경보호를 꽤나 할 수 있다는데...

10여 년 간 쌓인 메일 삭제를 시작하자, 제일 먼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을 만나게 됐다. 장기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주고받았던 메일을 보니 엊그제 연락했던 것인 양 낯설지가 않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을 통해 유년시절 추억 속으로 흠뻑 젖어들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엄청난 대작을 남겼다. 평범한 소시민인 나는, 작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메일 수백 개를 확인하며 경험하는 10여 년 전 타임루프 감상을 브런치에라도 남겨두고 싶어 졌다.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일 처음 지운 메일은 캐나다 대학에서 받았던 답장들이었다. 당시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면서 토론토, UBC 등 세계랭킹 30위권에 포진한 대학뿐 아니라 전공 희망 분야가 개설된 10여 개 대학원에 입학지원서를 제출했더랬다. 혹시나 원하는 대학원에서 합격 통지를 받지 못하면 유학행이 좌초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저인망식 전략을 펼친 것이다.


대학마다 교수님들 전공과 선행연구를 살펴보고, 지도교수님으로 삼고 싶은 분들을 골랐다. 이 분들께 따로 메일을 드리기도 하고, 입학지원서마다 이 분들의 이름과 연구 희망분야를 적었다. 매일 퇴근 후에는 도서관으로 가서,  캐나다에 보낼 지원서, 자기소개서, 석사논문 영문 작업 등을 부지런히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고생이 헛되지 않아, 원하던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예비 지도교수님과 미리 소통도 할 수 있었다.


비자를 준비하고, 이사를 준비하던 과정도 메일 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마침 내가 유학 준비를 하던 때에는 주한 대사관에서 비자업무를 하지 않아서 필리핀까지 따로 비자 관련 서류를 보내야 했다. 해외이사를 관장한 업체분들과 주고받은 메일을 보니 이사에 얽힌 에피소드도 떠올랐다. 해외이사가 처음인지라 짐 싸주시는 분들을 조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팔랑귀답게 불필요한 것들까지 몽땅 보내는 해프닝을 연출했었다.


세 아이들의 국경 너머 전학을 위한 준비 흔적도 남아 있었다. 예방접종기록과 생활기록부를 비롯한 다양한 서류들. 영문 작업을 거쳐 공증까지 받았었지. 직장 다니며 여러 서류를 홀로 준비하느라 몹시도 분주하고, 꽤나 애를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그때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떠올려보니 다시 외국행을 꿈꾸는 나 자신이 무모하게까지 느껴진다.




추억을 가득 품고 있는 메일을 지울까 말까 망설이며 1차 정리를 끝내고 나니, 좀 색다른 결의 메일들이 눈에 띈다. 캐나다에서 운전면허증을 받고 보험가입을 하기 위해 준비한 무사고 증명서. 의료보험 관련해 준비한 서류들. 아이들이 캐나다 공교육 안으로 진입하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현지 교육청과 주고받은 메일들. 공항 픽업도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서 불확실성을 최대한 회피하려 노력했다. 나를 제외한 남편과 세 아이는 해외 출국이 처음이었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어깨 위 부담이 더욱 컸던 듯싶다.


낯선 공간에 정착하기 위해 물건을 사고팔고, 집을 구하기 위한 우여곡절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정착해야 하는 곳에 이미 자리 잡은 분들을 수소문해서 현지 정보를 얻기도 하고, 곧 떠날 분들과 소통하며 짐을 받기도 했다. 테이크 오버를 사기급으로 받게 돼서 결국 세탁기 등을 비롯해 여러 가전제품과 일상생활용품을 구입해야 했다. 가전제품이 비싼 곳인지라 중고제품을 알아본다며 세 아이들 모두 끌고 중고 밴을 운전하며 이리저리 다녔었지.


동생과 주고받은 메일도 꽤 있었다. 마침 유학 직전에 생애 첫 주택을 갖게 됐는데, 출국 직전에 부랴부랴 세입자를 구하고 등기는 동생에게 맡겨더랬다. 위임장을 작성하고 인감도장을 맡겼었지. 참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는데 용케도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 직전에 호주에 살던 분을 알게 되어 스카이프 스터디를 한동안 했었다. 국제뉴스를 주고받으며, 이걸 매개로 토킹을 이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참 열심히, 부지런히 살던 시절이었다.




준비과정과 관련한 메일 회고가 종료되니, 이제 본격적으로 해외수업 적응기가 펼쳐진다. 박사과정생 동기들과 주고받은 메일. 수업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학생처에서 보내온 다양한 메일들. 수업 수강과 연구 일정 등과 관련해 지도교수님과 주고받은 메일. 논문 주제, 연구방법론, 연구가 막다른 벽에 부딪칠 때마다 제일 먼저 지도교수님을 찾았고, 그럴 때마다 교수님은 기꺼이 도움을 주셨다.


지도교수님은 9.11 이후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한 양심적인 학자 군단 중 한 분이셨다. 남편분은 컴퓨터 분야 테크니션이셨다. 처음 만났을 때는 우리나라 기존 각도로 대학교수 부인에 기술자 남편이라니 신선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내 캐나다 내에서 전문기술자의 위상을 알게 된 후 매력적인 조합에 대해 이해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지도교수님은 일본 아이 두 명을 입양해서 키우던 중이셨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더 동양문화권에 대해 우호적인 마인드를 갖고 계셨다.


추억돋는 메일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삭제할지 여부를 결정하다보니 어느덧 두어시간 가까이 훌쩍 지나버렸다. 시계는 벌써 새벽 1시를 향해가고 정신이 혼미해지니 땀방울, 한숨, 기쁨, 감탄사가 뒤엉킨 메일을 감정 절제하고 삭제하는 게 더 어려워진다. 결국 그다지 고민 안해도 되는 광고성 메일, 주기적으로 받아보지만 전혀 읽지 않는 메일들을 중심으로 눈 질끈 감고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지쳐서 이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살펴보니 15기가 중 6기가 남짓을 지웠다. 받은 편지함에는 아직도 1,849개, 보낸 편지함에는 1,265개의 메일이 남아 있다. 다음 10년 후엔 어떤 메일을 만나볼 수 있을까?


새로운 문화, 공간, 세계, 사람들과 만나 더욱 넓어지고 한층 깊어진 시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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