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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n 28. 2021

꾸역꾸역 쓰는 이유

사무실에서 홀로 야근했다. 걸어서 퇴근하는 길. 어디선가 감미로운 선율이 들려온다. 울적한 마음이 부드럽고 고운 음색에 조금 풀리는 듯하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보니 통기타를 멘 두 명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관객은 톨톨 털어봤자 불과 다섯 명 남짓. 한참 떨어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을 포함해도 열명이 채 안된다. 문득, 구독자가 적지만 기죽지 않고 글 쓰는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회사에서 재작년에 출간했던 책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몇 명 옹기종기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라면 별 고민 없이 응했을 터다. 하지만 공식 직장교육의 일환이었다. 외부 전문가와 함께 한다는 콘셉트를 바꿔 내부 동료가 강사로 나선다며 새롭게 도입한 형태의 첫 주자였다.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도 바쁘고, 외국어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아 이래저래 바쁜 탓에 중간에 고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의를 중요시하는 성격 탓에 일단 맡기로 했다. 첫 책은 벌써 잊혀가고 두 번째 책도 출간 계약을 맺었건만, 월중 업무에 포함이 된 탓에 간부님 몇 분이 뒤늦게 책을 낸 걸 알아차리고 아는 척을 해주신다.




책 출간을 마음에 두고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책 내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도 글 쓰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좀 더 청중이 몰입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발표 자료를 만들고 발표용 스크립트를 준비하면서 생각에 생각을 이어갔다.


책 읽고 글 쓰며 살아온 지난 10여 년 내 삶에 대한 경험을 소소하게 나누는 걸로 시작해서, 독서와 글쓰기가 직장인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강조하며 끝맺음을 하면 자연스러울 듯했다. 일단 콘셉트를 잡고 나니, 제한된 시간 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기보다 슬라이드 20장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졌다.


발표자료를 만들다 보니 마음은 어느덧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에서도 존재감 없고, 가정 위기도 팽배해서 이직과 함께 이혼까지 심각하게 고려하던 때였다. 아이 셋을 홀로 키워야 하는데 당시 박봉으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프리랜서 전문강사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에 당시 롤모델에 가까웠던 김미경 대표님의 아트스피치를 수강하기도 했다. 40명 원우 중에 대상을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과정을 마무리했지만, 역시나 프로의 길은 험난했다. 아무리 강의를 준비해도 무표정한 청중들 앞에서 밝은 표정과 강한 멘털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1년 365권 미션을 마치고 만난 이지성 작가님의 "이직은, 외부에서 성공하려는 마인드와 열정을 본업에 쏟아서 인정을 받은 후에 다시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가슴에 품고 마음을 돌렸다.




이후 내 삶은 치열하고 절박했다.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홀로 세 아이를 책임져야 했다.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커주지 않았고, 남편도 내가 변화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몰두했다. 내가 원하는 이상향에 맞춰 나를 계속 담금질했다.


독서와 글쓰기가 고달픈 여정에 친구가 되어줬다.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책으로 만났다. 가슴속에 응어리와 생채기가 가득 차면, 홀로 조용히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랬다. 정리되지 않았던 분노와 슬픔은 신기하게도 글로 표출하는 순간, 그 뜨거움이 완화됐다. 방향 잃은 채 분주하게 커져만 갔던 부정적인 감정은 글과 함께 조용히 줄어들었다.


나 자신에 대한 Me Story를 100개 꼭지 쓰고 나니 나를 좀 더 알게 되었다. 감정이 출렁일 때마다 글로 조용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이어가니 내가 언제 화가 나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서 약해지는지 조금 더 파악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 정체성과 내 욕망의 발로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가 많다. 회사를 들어서는 출입문부터 석고대죄라도 바라는 듯한 시끌벅적한 시위대를 마주쳐야 한다. 지금 부서는 덜하지만, 예전 부서에서는 악성민원인이 많아 전화 벨소리만 울려도 기함할 듯이 놀라곤 했다. 갑자기 떨어지는 '해야만 하는 일'의 홍수 속에서, 문득문득 현대판 노예 같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곤 한다.


읽고 쓰는 삶은 비루하다고 여겨온 삶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세상은 여전히 내가 종사하는 직군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수용하기 버거운 요구사항을 늘어놓는다. 일을 잘 해내면 다음 일이 바로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읽고 쓰는 삶은 이런 고단한 여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바꿔준다.


그리고 이 시선의 전환이 선사하는 변화는 꽤나 가치롭다. 밋밋한 일상이 다채로운 특별함의 시퀀스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유의미한 변주로 가득 찬 매일매일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바쁘다고 좀처럼 시간 내지 못하다가도 이렇게 가끔은 숨 고르고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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