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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Aug 27. 2021

미션 중독

엄마, 이게 뭐예요?


오랜만에 묵은 서류들을 정리하던 중에 정체불명의 이면지를 놓고 아이들이 묻는다. 5층 3인방이라는 제하의 무슨 프로젝트다. 참가자들이 이니셜로 표기되어 있어 기억을 더듬어보니, 불과 3년 전 옆 부서 동료들과 함께 진행했던 미션 계획표다.


여름이 다가오면 매년 다이어트 버디들을 찾아 자체 프로젝트를 가동하곤 했다. 온라인으로 동지들을 모으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자주 보는 동료들을 설득해보기도 했다. 가공할만한 추진력으로 뚝딱 모임을 만들고 목표도 정하고 플랜도 잘 세우고... 하지만 3주가 채 되지 않아 계획은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계획 이행 실적 저조의 유일한 장본인은 아니었다. 일하느라 바쁘고,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없고, 집안 대소사도 살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 사치에 가까운 연령대라는 것도 흔들리는 미션 여정에 한몫 단단히 했다. 이렇게 나약한 의지력을 지녔지만, 무모하게 계획을 만들곤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도한 한 동료는 나를 <프로 다이어터>라고 일컫는다.


벌금만 20여만 원 가까이 모인 채 중단한 다이어트 클럽 3인방이 다음 주에 만난다. 작년에 시작하다 지지부진해 모임을 없앴지만, 무거운 몸으로 올여름 마침표를 찍기가 아쉬워 자신 체중의 5%씩 감량해서 만나기로 했더랬다. 목표 달성자에게 벌금 몰아주기라는 어마어마한 인센티브를 걸고. 중간 점검이라기에는 꽤나 늦은 감이 있지만 미션 종료일 4일을 앞둔 오늘 점검해보니 아직 목표에 근접한 멤버는 없다.




성당을 다니면서 세례를 받을 때는 영성에 충만해 같은 부서에 있는 분들과 가톨릭 3인방 모임을 만들어 자기 계발에 매진했던 적도 있다. 근무지가 달라지고 셋 다 지금은 냉담 중이지만, 아직도 종종 만나면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직장에서 시작한 인연이지만, 서로를 세례명으로 부르기에 만날 때마다 자매 같은 느낌이다.


외국어를 좋아하니 스터디 모임도 꽤나 만들어왔다. 영어실력을 필요로 하는 국제협력 업무를 할 때 결성하곤 했다. 13년 전에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입이 트이는 영어(입트영)를 모여서 암기했다. 모임 이름은 개나리를 영어로 옮긴 노랑노랑 골든벨. 상큼 발랄한 20대 인턴분 두 분도 합류해서 진짜 화사한 느낌 물씬 풍기곤 했더랬다.


지금 토요일 밤에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영어 말하기 클럽 이름은 YMM이다. 한때 카피라이터를 꿈꿨던 분이 <영어를 사랑하는 미인들의 모임(영미모)>이라고 거창하게 지어준 후, 본인은 개인 사정으로 탈퇴했다. 멤버 교체 이후에도 이름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일어 N1 공부 인증을 함께 하는 분은 일본에 체류하는 분이다. N2 시험에서 어휘와 청해 만점을 받은 실력파시다. 부지런하고 내공 단단한 분과 함께 하니 공부를 대충 하지 않게 된다. 영프일 3개 외국어 공부 인증을 함께 하는 분도 엄청 부지런하시다. 주말에도 공부 인증을 자주 남기고 얼마 전에는 중국어 공부도 시작하셨다.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리시지만, 늘 많이 배운다.


군대에서 공부해서 외국어 인증시험에 합격한 수기를 종종 읽는다. 엄격한 규율과 훈련으로 삭막한 시공간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젊음과 패기가 멋져, 이런 포스팅 두세 개 읽고 나면 다시금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해진다.


출근 전 2시간 불어공부와 퇴근 후 3시간 일어 공부 셀프 미션을 세웠다.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어영부영 중도 하차할까 싶어 대외 공개용 포스팅을 남겨본다. 이제 계획표대로 이행하는 것만 남았다. 이런 류의 중독이라면 괜찮은 거겠지? 미션 중독자, 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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