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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an 14. 2021

내 인생을 이끌어준 북극성

짜이 찌엔? 

샤워하던 중에 아이들과 그녀가 나누는 유쾌한 웃음과 대화가 간간이 들렸다. 

몇 년 전에는 돋보기 너머로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우더니 이제는 중국어를? 궁금해하는 내게 그녀는 A4 종이 한 장을 건넨다. 月亮代表我的心과 夜來香 노래 가사가 적혀 있었다. 올해 초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기염을 토하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이 분은 늘 사랑으로 날 감싸안으셨다. 하지만 내가 바르지 않은 길을 간다고 느껴질 때면 악역을 주저하지 않고 맡으셨다. 덕분에 나는 비록 행동으로는 그분의 뜻대로 따르지 못할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줄곧 '바른 길'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이 분은 아들 여섯인 집에서 고명딸로 태어나셨다. 그런데 지금이야 딸이 좀 대접받는 세상이지, 먹을 것 입을 것 하나가 아쉬웠던 어려운 시절에 딸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 분 역시나 통상의 사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좀 독특한 면이 있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대접을 받지 못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집안일과 농사일, 오빠, 남동생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면서 학교 문턱도 밟아볼 수 없었다. 학교 가는 형제들 도시락을 싸면서 흘린 눈물만으로 책 한 권 분량은 거뜬할 수 있다. 또래 다른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녀의 초라한 행색을 행여라도 들킬세라 담벼락에 숨으면서 또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토록 원하는 책 대신 그녀의 유년시절과 청춘은 물레질과 함께 흘러갔다.




그녀 나이 스물셋, 처음 선을 본 이와 인연을 맺었다. 식모 역할만 하는 집에서 하루빨리 해방되고 싶었다. 그런데 부잣집 맏며느리라고 좋아하면서 단행한 결혼도 결코 녹록한 길이 아니었다. 손윗 시누이 둘, 손아래 시동생 다섯, 시할머니에 시부모가 모두 그녀 몫이었다. 시원스럽게 큰 두 눈이 매력적이었던 남편은 룸펜에 가까웠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곧잘 했다고 들었는데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전답 있는 부모님 슬하에서 농사일만 슬슬 하면서 지내는 처지였던 것이다.


새벽녘 대가족의 식사 준비부터 시작해 고된 농사일,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가마니 짜기. 그녀의 고단한 하루는 그렇게 흘러만 갔다. 그러다 남편이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낯선 경기도로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삶도 쉽지 않았다. 지역갈등이 심했던 시절인데 사투리를 감출 수 없어 온갖 차별과 무시를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근면과 근성으로 다져진 그녀는 그곳에서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비누, 고추 행상부터 시작해 집에서 할 수 있는 뜨개질, 맥주 박스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두 손은 쉴 틈이 없었다.




큰 아이가 학교에 갈 무렵, 남편의 전보로 또다시 터전을 옮겨야 했다. 쉴 짬이 전혀 없었던 그녀의 하루는 더 거친 숨결로 가득 채워졌다. 아직 어린아이를 홀로 집에 떼어두고 맏며느리 노릇을 하기 위해 매일 새벽 첫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막차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도 못 먹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오면 밀린 빨래며, 다음날 시댁에 가지고 갈 반찬을 하느라 주린 배를 채울 겨를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미래나 꿈이란 것은 언감생심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그녀의 일상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학력자도 배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마침 시동생 모두 시집, 장가보내고 농사일만 거들면 되는 때였기에 그녀는 시댁에는 식당일을 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매일 막차를 타고 배움터로 떠났다. 농사일에 지쳐 그녀의 머리는 책상으로 기울기 일쑤였지만, 땀으로 얼룩진 지저분한 몰골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가득 차 있던 그녀에게 이런 것들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 병시중 10년, 딸내미 세 아이 키우기 7년, 아들내미의 아픈 아들 돌보기. 짧은 지면에 담기에는 버겁기 그지없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중단되기를 몇 번. 하지만 그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했고 작년부터 일요일이면 방송통신고등학교로 등교한다. 


몇 년 전에는 운전면허증도 땄기에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을 한 보따리 해서 손수 차를 몰고 간다. 내년에 환갑을 바라보는 그녀를, 그녀의 시어머니는 집안의 복덩이로 여긴다. 시댁의 주춧돌이자 기둥, 그녀가 없는 시댁은 상상할 수 없다. 


긍정과 근면과 따뜻함의 결정체인 그녀는, 바로 자랑스러운 나의 엄마다.




10년 전 엄마의 모습이다. 그 당시 엄마의 가장 큰 고민은 노안이었다. 보고 싶은 책도 많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침침한 눈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집중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하셨다. 당시 난, 노안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다고 다짐했더랬다. 10년 동안 원 없이 읽고 쓰다 보니 어느새 나도 노안을 곁에 두게 됐다.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대만 영화를 봤다. 등장인물의 매력에 빠지니 중국어도 좋아졌다. 영화를 볼 때마다 중국어 공부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데, 이상하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현타가 온다. 지금 공부 중인 일본어와 프랑스어도 왕초보인데, 왕초보 외국어를 하나 더 추가할 명분도, 시간도, 에너지도 충분치 않다. 환갑을 눈앞에 두고도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셨던 엄마의 열정을 배워야 할 때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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