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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Sep 30. 2021

나만의 방

부모님이 따로 주무신다고?


아이 친구가 놀라서 되물었다고 한다. 아이는 다른 집 부모가 같이 잔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 듯하다. 어느 집에선 '정상'이 다른 집에선 '비정상'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우리 부부가 잠자리를 달리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물리적으로 방이 부족하다. 방은 3개. 사람은 5명. 누군가는 방을 공유해야 한다. 이미 훌쩍 커버린 큰 딸과 아들에게 방 하나씩 나눠주고 나니 남은 건 안방 한 개. 막내딸과 내가 안방을 공유했다.


야행성인 남편은 내가 일어날 때쯤 잠자리에 든다. 주로 거실에서 자지만, 안방이나 아들 방으로 향할 때도 가끔 있다. 어쨌거나 나와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 교집합이 거의 없다. 결혼 초기부터 남편이 퇴직할 때까지 15년 가까이 주로 주말부부로 살았기 때문에 20년째인 지금도 각자 공간에서 생활하는 게 익숙하다.


나만의 방이 생겼다


큰 아이가 기숙사로 나가면서 중학생이 된 막내딸이 콧노래를 부르며 언니 방으로 독립했다. 널찍한 안방이 나만의 방이 되었다. 며칠은 기뻤는데 내가 홀로 생활하기엔 너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이 함께 하다 홀로 하는 삶이 적적한 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키도, 체중도 날 따라잡은 막내딸이 내 등에 찰싹 들러붙는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육중한 무게감이 참 기분 좋다. 독립선언 후 늘 홀로 자기를 고수했던 막내딸이 며칠 전, 혼자 자기 싫다며 함께 자자고 제안했다.


막둥이의 요즘 최애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을 함께 정주행 한 밤이었다. 막내는 극장에서만 두 번을 봤고, TV 방영분도 두 번이나 챙겨볼 정도로 광팬이다. 만화책도 전 권을 사서 방을 장식했다. 함께 자자는 제안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막내의 최애 캐릭터 렌코쿠에게 격하게 공감해준 것에 대한 답례 인지도 모르겠다.


아들과 방을 바꿨다


나만의 방이 생겼지만 기대만큼 기쁘지 않았다. 아마도 지나치게 크고, 지나치게 서늘한 것이 한몫했던 듯싶다. 추위를 많이 타기에 계절이 서늘하게 바뀌면 겨울 잠옷부터 꺼내 입어야 한다.


내 방이 없던 시절 공부할 때 내가 주로 이용했던 건 아들방이었다. 방 두면을 가득 채운 서가가 맘에 들어서였다. 행거와 책꽂이, 책상으로 4면이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도 좋았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가족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곧잘 방해받기 쉬운 안방과 달리 일단 문을 닫고 나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아들에게 방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선선이 수락할 줄 알았는데 반발이 생각보다 커서 내가 생각하는 안방의 '단점'을 '장점'으로 둔갑시키고, 몇 가지 인센티브를 제안했다.


더위 많이 타는 아들에게 최적인 공간이다. 양면에 창이 있어 무척 시원하다. 안방에 딸린 화장실을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다. 가장 혼잡한 아침 시간대 독점도 가능하다. 옷가지와 책은 주말 동안 다 옮겨놓겠다. 지금 방에 있는 컴퓨터와 책상은 그대로 둘 테니 원할 때 언제든지 게임을 해도 된다.


방을 맞바꾼 지 오늘로 4일째. 아들도, 나도 꽤나 만족스럽다.


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버니지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꿈꿨을 테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몇 년 전 그 유명한 그녀의 책을 원서로 접할 수 있었다. 울프는 내게 필요한 건 방뿐만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돈도 역시나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녀만의 방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조카의 회상록에 따르면 독립된 서재가 없이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울프의 책에서도 30분 이상 차분히 쓰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해받는 걸 여성의 숙명인 것처럼 푸념하는 대목이 나온다. 본인의 경험이 뒷받침되었을 게다.


그녀가 침실, 책상, 식당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안 곳곳에서 글을 썼다는 증언도 있다. 그녀가 살았던 '몽크스 하우스'의 관리인이었던 루이 메이어에 따르면 글을 쓰면서 주변에 쌓아두는 게 울프의 습관이었다고 한다. 넓은 서재도 있었지만, 서재에만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이어갔다는 거다.


버지니아 울프가 등장하는 영화 <디 아워스>에서 보이는 울프의 모습은 신비롭지만 우울하다. 글 쓸 수 있는 공간이 도처에 산재했는데 왜? 아마도 정신이상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이어나가는 글쓰기라서 일까? 자기만의 방은 여성의 홀로서기를 위한 충분조건은 될지 모르겠지만, 건강한 삶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내가 쓴 최고의 명작은 바로 내 인생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녀가 주로 글을 썼던 <자기만의 방>은 다름 아닌 공공장소였다. 파리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같은 공간에서, 오전엔 글 쓰고, 점심을 먹고, 오후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체의 가정사를 거부했던 그녀는 요리를 비롯한 어떤 살림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사야말로 여성의 자유로운 삶과 글쓰기를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보다도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대목이다. 아이가 없었기에 지킬 수 있었던 삶의 신념이 아니었을까 싶다.


울프와 보부아르 사례만 봐도 꾸준한 글쓰기는 경제적 독립이 선결된 뒤에 가능한 듯싶다. 보부아르처럼 카페에서 글 쓰고, 점심 사 먹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글 잘 쓰는 이라면 돈 벌기 위해 글을 쓸 텐데, 돈 주고 내 글 사 볼 독자가 아직은 거의 없다. 자유롭게 글쓰기 위해 일단 돈부터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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