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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Oct 20. 2021

캉쿠 00도 못 감!

얼마 전 승진을 했다. 입직 후 10년 만에 첫 승진을 경험한 후 10년 차에 다시 경험한 두 번째 승진이다. 많은 선후배, 동료분들이 축하해 주셨다.


그동안 승진 경험이 거의 없어 승진이 이렇게 기쁜 라는 것도, 승진한 동료들에게 나누는 격려가 이리 힘찬 응원이 된다는 것도 미처 몰랐다. 앞으론 승진하는 동료들에게 아낌없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겠노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며칠 전, 유네스코 본부에 근무하시는 선배님이 보이스톡으로 축하해 주셨다. 이 분은 지금 파리에 계신데 내년 9월까지 근무 예정이시다. 나 역시 경험이 있는 아프리카 신탁기금 관리업무를 담당하신다. 내가 불어공부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셨다며 내년 하반기 후임자로 응모할 것을 적극 추천하셨다.


다음 달에 있는 프랑스어 시험공부가 지지부진하던 차에 공부의욕을 고취시키는 응원에 한껏 고무됐다. 신이 나서 나의 새로운 도전을 가족에게 알렸다. 남편은 별 반응 없이 내 뜻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내년 고3이 되는 아들은 이제 조만간 독립해야 하니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문제는 중 1 막내다.




막내에게는 한글도, 영어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 캐나다행을 멋모르고 따라갔다 고생만 하다 온 과거가 가슴 깊이 아픔으로 새겨져 있다. 한국인 한 명도 없는 킨더 과정에서 1년을 보내면서 소외감과 부정적 자아감을 몸서리치게 경험했더랬다. 다음 해, 영어가 살짝 들리려는 찰나에 마침 한국인 친구가 생겨 영어 대신 한국어 실력만 유창하게 늘었다.


막내딸은 내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달구똥같은 눈물을 떨궜다. 귀국 후 영어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영어에 별다른 흥미도 없다. 내년에 나가야 한다면 지금부터 영어공부에 박차를 가해야 할 텐데 일단 이런 노력을 하는 게 싫은 거다.




더 싫은 건 친한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거다. 막내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서울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세종까지 전학을 거듭해오면서 친구 사귀는 데 어려움이 컸다. 이제 한 곳에 정착해서 친한 친구들이 생겼는데, 다시 이 친구들과 헤어져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는 거다.


옆에서 오빠는 한 술 더 뜬다. 중국인 비중이 높아 그나마 아시아인에 대해 포용적이었던 캐나다와 달리 유럽은 인종차별이 심할 거라며 동생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막내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시작도 하기도 전에 꿈이 좌절될 듯싶다. 국제무대 진출을 독려한 선배께 상황을 공유하니 프랑스는 한국보다 공부 부담이 없는 걸 강조하며 잘 설득해보라고 하셨다.  이 분은 자식농사에 성공하신 분으로 유명하다. 아들은 서울 유수 대학에 재학 중이며 지금은 그랑제꼴 중 하나인 시앙스뽀에서 수학 중이다. 딸은 의대에 진학했다.


우리 집 막내는 공부파가 아니다. 중학생인 지금도 집에서 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림 그리고 웹툰 보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이런 막내가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지내고 싶을 리가 만무하다.




나 역시 외국에서 일하는 건 두렵다. 전문영역에 대해 깊이 있게 학습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해 심도 깊게 검토해서 소통하는 건, 한국어도 어려울 때가 많다. 국내에서 일하는 것보다 2~3배 더 노력해도 비슷한 결실을 거둘까 말까다.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건, 버거운 상황을 담대하게 이겨냈을 때 큰 폭으로 성장한다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만 3년 남짓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만 하며 희생했던 일상 덕분에 지금 직업을 갖게 됐다.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던 30대, 매일 3~4시간만 자면서 악착같이 하루에 책 한 권씩 읽어대던 그 시절이 기틀이 되어 내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아이와 내 몫으로 도시락 5개씩 싸서 주말까지 톨톨 털어 공부에 매진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동기 중 가장 빨리 박사학위를 거머쥘 수 있었다.




새롭게 도전해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가슴이 자꾸 부푼다. 유럽이 너무 멀다면, 가까운 일본은 어떨까? 다담 달에 일본어능력검정시험 최고급 단계에 도전하니 일본 생활도 좋을 듯하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낯선 프랑스보다는 좋다며 반색한다.


관건은 막내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고, 한국에서만 살고 싶어 하는 막내에게 새로운 절충안을 제시했다.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께 SOS를 보내, 할머니랑 아빠랑 함께 국내에 머무르는 거다. 엄마 공백이 불가피하지만, 가까우니 자주 올 수 있지 않을까?




내 대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강하게 도리질을 친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딸로부터 "캉쿠 00도 못 감"이라는 톡이 와 있었다. 아무래도 내 팔자에서 향후 6년간 외국행은 좌절인 듯싶다.


허나, 낙담은 금물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내 글을 외국어로 소개하고 독자들과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바쁘다고 글도 거의 안 쓰는 요즘을 떠올리면, 거의 망상 수준에 가까운 꿈이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꿈을 음성 녹음하는 챌린지에 참여하다 보니 제법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프랑스행은 좌절되었지만 당초 꿈을 이루기 위해 3종 외국어 공부는 계속해야겠다.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은 충분하고 배우고 싶은 외국어도 끝이 없다. 내년부터는 중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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