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라면 누구나 세례명이 있다. 세례명을 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좋아하는 성인이나 본받고 싶은 성인 중에 고르기도 하고, 추천을 받기도 한다. 대개 남자는 성인 중에서, 여자는 성녀 중에서 정한다. 성별과 관계없이 정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여성이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을 세례명으로 하고 싶으면 미카엘라, 라파엘라, 가브리엘라로 부른다.
나는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세례명을 정해주셨다. 세례명은 유스티나. 이유를 물어보니 간단했다. 생일과 축일이 같은 성녀를 찾았는데 없어서, 생일과 가장 가까운 축일을 가진 성녀로 정했다고 한다. 유스티나 축일은 10월 7일, 내 생일인 10월 5일과는 이틀 차이다. 축일은 성인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기념일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생일이 2개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나는 생일과 축일에 똑같이 선물을 받았다.
나에게 유아세례를 주신 분은 최세구 로베르토 신부님인데, 사진을 보니 외국인이신 듯하다. 세례를 받을 때는 영혼의 부모 격인 대부 대모가 필요하다. 나의 대모님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이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조인숙 로렌시아 대모님,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까.
유스티나 성녀에 대해 검색해보면,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고 나온다. 그나마 전해지는 내용은 베드로의 제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것. 믿음이 굳건해 동정녀로 살았고, 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성녀는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세례명을 내가 고른 것이 아니기에, 어릴 땐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로니카나 엘리사벳처럼 이름이 예쁜 성녀, 마리아나 데레사처럼 유명한 성녀를 세례명으로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유스티나가 이름처럼 당연하게 느껴진다. 나의 영어 이름도, 이메일 주소도, 카카오톡 아이디도 전부 유스티나다.
"기자님도 천주교 신자세요?"
"세례명이 어떻게 되세요?"
평화방송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아예 명함에 세례명을 넣었다. 그랬더니 얼마 전 출입처에서 명함을 건네고 이런 얘기를 들었다. "어머, 저도 유스티나예요!" 유스티나라는 세례명을 가진 신자가 많지 않아서, 같은 세례명을 가진 분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갓난아기 때 세례를 받고 평생 천주교 신자로 살았기에, 나에게 신앙은 물과 공기처럼 자연스럽다. 유스티나라는 세례명도 마찬가지다. 출근길, 유스티나 성녀를 기억하며 기도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이탈리아 파도바에 있는 성녀 유스티나 대성당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