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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자 Feb 11. 2021

방송기자의 아찔한 실수담


살면서 실수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많이 했다. 중요한 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힘들어도 실수한 원인을 꼭 찾아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의 실수담을 공개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에게도 재다짐의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




2005년 하반기, 기자가 된 지 몇 달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파문으로 시끄러웠다. 배아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논란은 일파만파 커져갔다. 결국 황 교수의 연구 파트너였던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의 입장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국장은 나에게 기자회견 취재를 지시했다. 당시 보도국은 라디오 뉴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과 녹음기, 수첩을 챙겨 들고 미즈메디병원으로 향했다. 현장엔 기자들이 바글바글 했다. 나는 틈새를 뚫고 들어가 단상 테이블에 녹음기를 올려놨다. 노성일 이사장의 발언 중에서 핵심 부분을 편집해 저녁 뉴스에 내보낼 계획이었다. 마이크엔 이미 다른 방송사의 핀마이크가 잔뜩 붙어 있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기자회견은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나는 병아리 기자였지만 열심히 취재했다. 발언을 받아치면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하느라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런데 취재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와서 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1시간 짜리 녹음 파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음뿐이었다...... 녹음기를 껐다가 켜보고, 파일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도 마찬가지였다. 녹음기 조작 오류가 분명했다. 몇 달간 녹음기를 사용하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떨리고 무서웠지만, 국장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국장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녹음기를 직접 확인했다. 하지만 실수는 돌이킬 수 없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 국장과 선배들로부터 단단히 혼났던 것 같다. 결국 저녁 뉴스는 노성일 이사장의 현장음 없이 나의 멘트로만 처리했다.


이날 실수는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이후 취재에 나갈 땐 녹음기를 미리 켜서 작동 여부를 체크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면 새 건전지를 가지고 나갔고, 내장된 마이크를 사용할지 라인을 연결할지 설정을 확인했으며, 취재 중간중간 녹음이 잘 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때로는 아예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회사에 들어오기도 했다. 요즘은 보도국이 TV 뉴스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녹음기를 쓸 일이 많이 줄기도 했지만, 덕분에 지난 16년 동안 녹음기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당시 제작했던 경제 프로그램 홈페이지. 지금은 폐지됐다.


입사 4년차였던 2008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경제팀 발령을 받아, 매일 20분 짜리 라디오 경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앵커인 OO대 경제학과 교수와 매일 오후 녹음을 하고 편집을 거쳐 저녁에 내보내는 스케쥴이었다. 그날도 무사히 녹음을 마치고 스튜디오에서 편집을 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 남은 편집은 다른 스튜디오에서 마무리했다. 그런데 저장을 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챘다. 서버에 방송 파일이 빨간색으로 뜬 것이다. 검은색으로 떠야 정상인데 말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 파일을 열어보니 이번에도 무음뿐이었다.... 알고 보니, 처음에 편집하던 스튜디오에서 파일을 열어놓고 저장하지 않은 채, 다른 스튜디오에서 다시 파일을 열고 편집하고 저장하면서 오류가 발생한 거였다.


방송 시간까지 1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통파일을 날려버린 상황. 나는 라디오 엔지니어와 보도국 선배들에게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코너들은 따로 저장해둔 파일이 있어서 다시 붙일 수 있었지만, 오프닝과 클로징은 아무리 애를 써도 살려낼 수 없었다. 결국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로 오프닝과 클로징을 재녹음했다. 그리고 급하게 편집을 해서 방송을 내보냈다. 완성도가 떨어진 어수선한 방송이었다.


나는 시말서를 썼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오프닝과 클로징을 별도의 파일로 만들어서 녹음했다. 통파일을 편집하다가 실수로 날려도, 다시 붙여서 편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다.




2014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PD 시절에도 큰 실수를 했다. 이른 아침 생방송이라 전화 인터뷰가 많았는데, 인터뷰 대상자가 전날 과음이나 과로로 뻗어서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가 꺼져 있거나, 통화 중이라서 연결이 늦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심장이 쫄깃했지만, 아침 생방송의 묘미로 여겼다.


그런데 4개월쯤 지났을 때 역대급 실수를 하고 말았다. 광고 하나를 잘못 편집한 것이다. 광고 개수는 전날과 같았지만, 내용이 바뀐 광고가 있었다. 나는 광고 개수만 확인하고 내용이 바뀐 걸 체크하지 못해 예전 광고를 내보냈다. 결국 6년 만에 다시 시말서를 썼다. 그리고 불방된 광고 금액의 일부를 변제해야 했다. 이후 광고를 편집할 때 개수는 물론이고 내용까지 확인을 거듭했다. 그리고 광고 담당자에게 번거롭더라도 광고 내용이 바뀌면 따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큰 실수들을 돌아보니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하지만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실수들도 적지 않았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기사에 나가는 사람이나 기관 이름, 그리고 숫자다. 사실 몇 번의 아픈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취재원을 만나면 되도록 명함을 받으려고 한다. 명함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 이름을 수첩에 적거나 휴대폰에 적어서 보여주고 맞는지 확인한다. 기사를 넘기기 전에는 취재원에게 전화해서 전체 팩트를 다시 확인한다. 가끔은 그래도 불안해서 포털에 들어가 검색을 해보고,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사람에게 추가로 묻기도 한다.


실수는 아픈 경험이지만, 실수를 통해서 교훈을 얻는다면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실수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 반드시 원인을 짚어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번 실수는 실력이 아니지만, 반복된 실수는 실력이라고들 한다. 이건 기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인생의 진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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