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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20. 2024

림보_희망 없는 희망의 삶

단테신곡_지옥_4:25~45

1.   Note Me & Read Me



Quivi, secondo che per ascoltare, non avea pianto mai che di sospiri, che l'aura etterna facevan tremare; (inferno 4: 25~28)


여기서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에 따라, 그는 한숨 외에는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영원한 공기를 떨게 만들었다(지 4: 25~28)



이곳은 엄밀히 얘기하면 지옥은 아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림보(Limbo)라는 곳이다. 이곳은 천국도 아니므로 한숨으로 가득 차 있다. 지옥이 아니기 대문에 비통한 통곡이나 아픔으로 인한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도 한숨과 한탄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 한숨이 영원한 공기를 떨게 만들었다니, 그들의 진심이 여기까지 전해 오는 듯하다. 그들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 걸까?



34 innanzi che più andi, ch'ei non peccaro; e s'elli hanno mercedi non basta, perché non ebber battesmo, ch'è porta de la fede che tu credi; 37 e s'e' furon dinanzi al cristianesmo, non adorar debitamente a Dio: e di questi cotai son io medesmo. 40 Per tai difetti, non per altro rio, semo perduti, e sol di tanto offesi che sanza speme vivemo in disio.' 43 Gran duol mi prese al cor quando lo 'ntesi, però che gente di molto valore conobbi che 'n quel limbo eran sospesi. < inferno 4:34~45>


그들은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고, 공적도 있으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네가 믿는 신앙을 인정하는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이전에 살면서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나도 이 부류 중에 하나이다. 다른 잘못은 없으나 이 죄 때문에 우리는 버림받았고 우리의 유일한 형벌은 희망 없는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의 가슴속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어 왔다. 저 림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 4:34~45>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죄를 짓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류를 위한 위대한 업적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세례를 받지 않았고, 살아생전에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베르길리우스도 이 부류 중 하나였다. 그들은 버림받았고 그들의 단 한 가지 형벌은 ‘희망 없는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단테는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어릴 적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네 살 터울의 형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세례 받기를 거부했다. 어느 날 그의 일기장을 보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세례를 받지 않는 이유는 지옥에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옥에 가서 하나님께 애원하겠노라고, 불쌍한 우리 부모를 제발 천국으로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슬펐다. 슬퍼서 밤새 숨죽여 울었다. 형이 없는 천국에 나만 간다는 생각에 너무 외롭고 두려웠다. 당시 형은 신학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결국은 세례를 받고야 말았다. 기뻤다. 하지만 지옥에서 고난 받을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버림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나를 뼛속까지 깊이 알고 있다.


‘희망 없는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무시 무시하고 아득한 말이다. 나는 대학 때 신을 믿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빛을 잃은 세계 속에서 부유하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낯선 세계의 유적들 속에는 구원이 없었다. 그곳에는 잃어버린 고향의 추억도 약속의 땅의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 햇빛과 바람의 난폭한 교차 속에서 내 영혼은 지쳐갔다. 거의 죽어가던 내 영혼은 신음하며, 미약한 반항의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잊히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괴리된 나의 영혼은 저 바람처럼 이리저리 떠다녔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저 낡은 건물의 돌기둥이었고, 건물이 사라진 곳의 포석이었으며, 황량한 도시 주변의 나지막한 산들이었다.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면서 동시에 세계 속에 의미 없이 흩어진 조각들이었다.


이런 삶은 오늘 내가 본 림보와 같은 것이다. 거절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 거절의 의미 속에 앞날이라든가 더 나은 존재라든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희망이 없는 희망’은 '절망보다 더 깊은 절망'이다. 나는 이 절망을 완고하고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절망은 나를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었다. 당시에 죽은 나에게 또 다른 가능성의 관문이 아니라 삶을 무(無)화시키는 닫힌 문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 인생은 그 있음과 없을 사이에 놓인 얘리한 칼날의 단면과도 같았다. 잠시라도 삐끗하게 두 동각 나버릴 무시 무시한 현재의 칼날 위에서 나는 칼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늘 높이 나는 콘도르들은 자신의 비행이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닌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나는 도저히 죽음을 상상할 수 없고,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엄마 아빠의 죽음을 지켜본 것뿐이다. 나는 가끔 길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볼 때마다 무채색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들의 사체에는 슬픔도 기쁨도 고통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생의 마지막, Limbo에 매달린 우리의 인생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자연을 마주하면서 까지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죽음을 끝까지 응시해 볼 생각이다. 내가 지닌 질투와 공포 속에서 나의 최후를 끝까지 응시하고 싶다. 어떨 때는 죽음이란 세계와 분리된다는 공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 푸른 창공을 멍하니 보라 보면 삶과 운명에 집착하고 있는 나는 얼마나 초라한지를 실감하기도 한다. 이제 곧 봄이다. 폐허로 남은 나의 세계에도 이제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벽돌과 계단 사이사이에서 생명이 움터 오르겠지? 그것이 삶의 언저리에서 나에게 한 줌의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저 나의 어리석은 생각, 삶에 대한 집착일까? 아직도 우리 삶에는 희망이 있다고….



"아무리 돌을 깔아도

그 틈바구니로 아무리 뽑아버려도

석탄이나, 석유로 아무리 그을려도

또 아무리 나무를 자르고

짐승과 새들을 모조리 쫓아버려도

봄은 정령 봄이었다. "

<톨스토이 '부활' 첫 문단에서>




P.S 어젯밤 딸아이가 할머니 집에 핸드폰을 모르고 놓고 왔다고 안절부절했다. 모바일 금단증상이었다 .친구와 저녁에 로블록스(유명한 미국 게임회사의 게임)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핸드폰이 없으면 연락할 수가 없다며  우리(부모)가 친구네 엄마에게 전화해 주면 안 되냐는 것이다. 우리는 단호했다. 9시가 넘어서 그런 일로 전화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이 말을 듣고 아이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나는 그만하라고 단호하게 혼냈다. 그러나 나는 그 게임을 하는 시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 시간은 학원 숙제를 다 마치고, 친구와 연결되는 유일한 시간이다. 요즘 아이가 그 시간에 많이 집착한다. 친구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에게 그 시간은 유일한 연결의 시간인 것이다. 연결과 만남이 없는 세상 속에서 요즘 아이들은 오직 학교, 학원, 숙제와 성적에 억눌려 TV, 유튜브 숏츠, 게임 등의 가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숭배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 뿐이겠는가? 우리는 모두 오직 호기심, 애매성, 잡담에 빠져 ‘희망 없는 희망의 삶’을 살아간다. 오호라~ 누가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마음이 참 무거워지는 아침이다.


2.   Remember Me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게임중독 #책읽기(?) #희망없는희망 #결혼 #까뮈 #시지포스신화 #이방인


3.   참고 자료

The Devine Comedy by Dante_Inferno, Dante Alighieri, the classic

La Divina commedia, Inferno, Dante Alighieri

신곡 지옥(인페르노), 단테(이시연 역), 더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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