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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20. 2024

심야북살롱 아쳅토로 가는 풍경

팟캐스트 <고전으로 읽는 오늘> 오픈 기념

심야북살롱 아쳅토로 가는 풍경


팟캐스트 <고전으로 읽는 오늘> 오픈 기념

By 아쳅토 집사


https://podbbang.page.link/8rLpjkwHVCdQngze7


Greeting: 구독자님들께


이번에 팟캐스트에서 <고전으로 읽는 오늘>이라는 컨텐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고전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오늘의 문제와 현상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좋은 컨텐츠를 위해 손과 발로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방문해 주시고 좋아요와 댓글로 격려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망원동 사람들


요즘 매주 수요일 망원동에 있는 책 읽는 모임 아챕토에 출석하고 있다. 아쳅토는 외식과 문화의 성지, 망원동, 망원 시장 근처에 있다. 북살롱에 가기 전에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다. 오늘은 매주 수요일 오후 내가 경험하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망원동 칼국수 

<망원동 칼국수집>


우선 35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은 국롤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3500원짜리 식사라니? 더군다나 밀가루 값도 폭등했는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착한 가격이다. 칼제비(칼국수+수제비)를 시켜서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쫄깃한 식감이 너무 맛있다. 식사 중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분(사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을 많이 하네.

사람들 배가 많이 고파스렀는가 보네. 허허~”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오지랖을 부려 본다.


“사장님, 정말 맛있어요. 진짜요”


나는 진심이었다. 진짜 맛있었다. 어린 시절 먹을 것이 없을 때 밀가루를 반죽해 뚝딱 만들어 먹던 수제비 생각이 났다. 진짜 힘들 때는 한 달을 수제비로 연명한 적도 있었다. 그 비루했던 맛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나 보다. 그리고 감사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시는 어르신들은 나처럼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추운 겨울 그 뜨끈한 국수 한 그릇에 많은 이들이 허기를 채웠을 것이다. 모두들 말을 안 하지만 배를 가득 채운 따뜻하고 든든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채워준 그 온기에 깊이 감사하며 눈시울을 붉혔을지도 모른다.


 <복래로 커피>

https://www.instagram.com/bok.rae.ro_coffee?igsh=MXdyY2swbjRsZWRucQ==​​​

이제 배는 채웠으니 맛있는 커피를 한잔해야 한다. 카페 업종에 종사하는 나는 망원동의 카페 탐방에도 진심이다. 오늘은 아쳅토 1층에 있는 복래로 커피에서 한잔하기로 했다. 복래로 커피는 로스터리카페이다. 10평 남짓한 좁은 카페에 전기식 로스터가 2대나 보인다. 그중 한대는 전시용인 것 같고, 나머지 1kg짜리 기계로 로스팅하신다고 한다. 사장님은 취미가 만렙인 분인 것 같다. 손수 그린 그림엽서, 수제 목도리, 각종 액세서리들이 가게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구석에 마련해 놓은 사장님의 개인 공간이 마음에 든다.


https://youtu.be/UMl045yzIiU?si=SxD4c14uayd8rZXH​​

<안데스의 커피농장: 언젠가 써야할 나의 이야기,  커피 오뒷세이아>



카페에 왔으니 커피를 준비해야지. 나는 10년 이상 브라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를 넘나들며 커피 트레이딩을 했던 커피 전문가다. 현역 커피품질감별사이고 커피 감별에 대한 경험도 많다. 원산지를 가면 최소 500회 이상의 커핑(커피품질평가)을 감행한다. 그로 인해 치아가 커피색으로 착색되기도 했다. 매년 치과에서 스케일링할 때 의사 선생님이 묻는다. 뭘 먹길래 치아가 진갈색으로 변색됐냐고? 치아 건강에는 문제없지만, 많이 걱정된다고 했었다.


사장님도 낌새를 챘는지 눈치를 보신다. 골목식당 촬영? 카페의 신? 긴장감이 감돈다. 에티오피아 구지(Gugi) G1을 주문했다. 사장님은 은미심장 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한다. 드디어 사장님이 직접 로스팅 한 구지 커피가 나왔다. 후루룩 한 모금을 들이켰다. 역시 구지 커피는 맛있다. 햇볕에 잘 말려 귀하게 가공한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커피의 전형적인 맛이다. 마치 이 한잔은 마르쉘 프로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처럼 나를 에티오피아의 작은 마을로 데려다준다.


<에티오피아 커피스테이션, 구지>


구지는 에티오피아 남부의 이르가짜빼 지역의 면단위 정도되는 동네이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코체레 쪽에 거래하던 농장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메세렛, 아브라함 부부가 운영하는 농장 겸 워싱스테이션이다. 구지는 해발 고도가 1000미터가 넘는 산악지역이지만 큰 하천이 흐르고 물이 깨끗한 아름다운 지역이다. 커피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해발 고도, 풍부한 일조량, 큰 일교차, 그리고 깨끗한 물이다. 고랭지의 고도, 일조량, 일교차는 커피의 향과 맛을 풍부하게 한다. 그중 일교차가 중요한데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악조건 속에서 생존한 나무와 열매들은 좋은 품질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삶의 경험은 맛있고 향기로운 커피처럼 소중하다.


<다양한 가공 방법은 커피의 풍미를 깊고 풍부하게 만든다>


열매로 수확한 커피를 가공하는 방식은 크게 수세식(washed)과 건식(sundry)으로 구분한다. 건식은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물이 귀한 지역(브라질 세하도는 물부족으로 전량 건식으로 작업한다)에서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다수의 스페셜티커피도 물로 세척하지 않고 체리가 있는 상태 그대로 건조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태양초 고추처럼 열매 상태로 햇볕에 말린 커피의 풍미를 정말 사랑한다. 수세식이라고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커피 체리를 제거(펄핑) 한 후 커피를 깨끗한 물에 씻는 작업은 커피의 깔끔한 맛(Clean Cup)을 높여 준다. 그런 다음 깨끗한 물은 수확한 커피 열매를 씻고 발효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이 깨끗하면 잡내를 배제해 깔끔한 맛의 커피를 생산해 낼 수 있다.   


복래로 커피는 ‘복이 오는 길’이라는 뜻으로 사장님이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나도 카페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 카페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잘은 모르지만 커피 한잔만으로도 사장님의 커피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큰 자본은 없지만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정성껏 만든 커피 한잔의 소중한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아쳅토의 집사



밥 먹고 커피 마셨으니 이제 본업을 하러 갈 시간이다. 아쳅토는 매주 수요일 밤 8시에 시작하는 심야 북살롱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알게 된 책방지기 나은님과의 인연으로 알게 됐다. 심야북살롱에 참여하면서 나는 아챕토의 집사를 자처했다. 아챕토 지기는 이미 나은님과 수린님이다. 무엇보다 아챕토의 진짜 주인공은 생업의 전쟁터에서 나와 읽고 연결되기로 작정한 회원들이 있기에 나는 주인공일 수 없다.  


어려서 시골에 있는 교회를 다녔다. 거기서 내 별명이 사찰집사였다. 사찰집사는 전업으로 교회를 유지하는 관리자들을 말이다. 초 중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를 마치면 교회로 향했다. 수요예배, 금요 철야, 토요 기도회, 주일 예배는 기본이고 교회에 행사가 없는 날이면 본당, 교육관을 쓸고 닦았다. 그중 예배당에 있는 강대상을 돌보는 일을 좋아했다. 아무도 없는 본당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강대상을 청소할 때는 뭔가 거룩하고 경건한 느낌까지 들었다. 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느낌은 나에게 큰 위안을 줬다. 본당 전면에 있는 빨간 대형 휘장 뒤로 신이 계실 것 같은 생각에 휘장에서 가장 가까운 강대상 아래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따뜻하고 감동스러운 기운이 나를 감쌌다. 나는 그런 감정과 느낌을 신의 임재라 확신하며 키와 마음을 키워갔던 것 같다. 그런 속내를 알 수 없는 교인들이나 선후배들은 나를 사찰집사라 불렀다. 비록 무급이었지만 나는 마치 사찰집사인 것처럼 교회를 내 몸과 같이 쓸고 닦고 조였다.

 

고대 그리스어로 집사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 [diakŏnŏs])라고 했다. 디아코노스의 동사형인 디아코니아(διακονέω[diakŏnĕō])는 어떤 사람을 섬기다, 시중들다, 봉사하다, 식사 시중을 들다, 돌보다, 간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원으로만 보면 집사는 내가 어릴 적 경험했던 사찰집사의 일과 거의 일치한다. 교회를 유지 관리하고, 성도들의 식사를 지원하고, 교인들의 동정을 살피고 돌보는 일이 집사의 일이었다. 어원으로만 정리해 보면 집사는 현대의 사회복지사, 요식업 종사자, 간호사 등 공적 사적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단어인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챕토의 유집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챕토의 필요를 챙기고, 먹거리를 지원하고, 사람들의 동정을 살피고 돌보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심야 북살롱 아쳅토



밤 8시가 되면 아늑한 아쳅토에서 심야 북살롱이 시작된다. 독서의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치된 책 한 권을 골라 한 시간을 읽는다. 나머지 시간 동안 자신이 책을 고른 이유와 책에서 감명 깊었던 문장을 들을 엽서에 적고 서로 나누며 토론한다.


원래 정해진 나눔의 시간은 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복리의 마법을 부린다. 2시간, 3시간... 회원들은 집에 가기 싫은 듯하다. 이번 주도 가까스로 12시 전에 마쳤다.


홀로 집중하는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사유의 심연에 빠져든 인간은 타인의 사유와 깊이 연결되고, 고립된 자아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게 된다. 나는 아쳅토의 놀라운 '몰입독서'가 만들어갈 더 나은 세상이 기대된다. 한국에 이렇게 멋진 북살롱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감격한다.


나는 아쳅토를 도시 유목민들의 오아시스라고 부르고 싶다. 고립되고, 상처받고, 괴로운 도시생활자들의 허기와 목마름을 위로할 모두의 안식처 우리가 죽음 힘을 다해 찾아 헤매던 생명샘 오아시스! '나 혼자만 아니면 돼'라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나와 타인,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적극적 방법인 것이다. 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다음 주 수요일 빨리 와주라. 빨리 와주라. 빨리~


 팟캐스트: 고전으로 읽는 오늘, 그랜드 오픈  


https://podbbang.page.link/Tcd2tD7JJeZXBRc58​​


<Ep8. [고전으로 읽는 오늘] '죄와 벌' 1부>




책방지기 나은님과 함께 고전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첫 녹음 하는 주에 심한 목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녹음하는 당일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정말 덜덜 떨면서 녹음했다. 너무 경직되기도 했고 실수도 많았다. 다행히 나은님의 깔끔한 진행과 고난이도 편집 신공으로 들을 만한 내용이 된 것에 감사한다.


신기하게도 아쳅토의 책벙지기와 나는 MBTI가 같다. 한마디로 단무지이다. 솔직함, 단호함, 저돌적임, 지적임. 정말 쌍둥이라도 만난 것 같다. 나는 스스로 돈키호테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돈키호테는 혼자서 책을 읽다가 천인공노할 인간들의 작태에 대해 분노했다. 가만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의분으로 가득 찬 그는 언제부터인가 제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해괴하기 짝이 없는 무모한 계획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적의 기사가 되어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모험의 여정을 시작했다. 나에게 읽고 쓰는 일은 그런 이룰 수 없는 꿈에 도전하는 나만의 모험이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또 다른 돈키호테를 만났다. 책방지기는 나보다 더 무모하고 도전적인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망원동에 호기롭게 북살롱과 헤어숍을 오픈했다. 사실 나는 기도 같은 거 안 한지 오래됐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다. 잘못을 고칠 줄 알며, 순수한과 선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불가능한 꿈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을 갖고, 저기 아스라이 먼 별로 팔을 뻗는 사람들. 나는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신에게 기도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요즘 망원동 갈 때마다 기도하는 나를 발견한다. 알 수 없는 어떤 부름심이 그 작은 공간에 있는 것 같다. 마치 어린 시절 빨간 장막이 올려다 보이는 강대상 아래에서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기도했던 것처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나를 부르시는 그 거룩한 소명에 천천히 응답해 보는 중이다. 아무도 관심 없다 해도 나는 나만의 외로운 길을 가겠다. 아차, 나만이 아이다. 우리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때까지. 라만차의 기사가 되어~


https://www.instagram.com/p/C3EMxthv_QQ/?igsh=ODVtZ3Y3YjFqNW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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