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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20. 2024

심야독서살롱 아쳅토의 봄풍경

아쳅토 독서살롱 3기-1회의 기록

심야독서살롱의 아쳅토의 봄풍경

: 아쳅토 독서살롱 3기-1회의 기록


1.  시간이 도착했다(时间到了)


오늘 팟캐스트 죄와 벌 2부에 대한 구성 및 전략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오전부터 드라마를 보고, 웹툰도 보고 그동안 내가 썼던 글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다. 그런데 오전 오후 내내 팟캐스트 자체보다는 새로 도착한 책들(단테 관련 서적과 카프카 서간문, 까뮈 전집 등)과 새로 읽기 시작한 책(존재의 용기, 광기와 천재)을 뒤적이느라 산만한 하루를 보냈다. 새벽부터 일어나 쓴 글들을 브런치에 업로드하고, 이 책 저 책 쫓아다니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크로노스의 절대 시간은 카이로스 칼날과 같이 벼려졌나 보다, 얇디얇은 시간 위에서 하는 나의 곡예는 금세 종료의 예정을 알린다. 이제 망원동으로 향할 차례다. 중국인들은 시간이 온다는 것을 이렇게 얘기한다. 시간이 도착했다(时间到了). 시간은 마치 손님처럼 그렇게 기약 없이 도착해 버렸다. 그렇다 이번 주도 그 운명의 시간이 도착했다.   


2.   캠핑커피 박스: 커피 세리머니 그리고 환대

집에서 망원동 까지는 자가로 딱 1시간 걸린다. 다른 날은 환경(?)을 생각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심야북살롱이 있는 날은 마치는 시간이 11시가 넘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 차를 가지고 간다고 생각하니 집사는 생각이 많아진다. 뭘 더 가지고 갈까? 오늘은 커피 3종과 집사의 커피 런치 박스를 챙겼다. 엄선한 커피는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수세식 커피, 지난주에 소개한 복래로 로스터스의 에티오피아 구지 내추럴 G1, 그리고 시카고 사시는 지인이 보내주신 라드로 디카페 블렌딩이다. 오늘의 커피 중 단연 추천하는 커피는 복래로 로스터스의 에티오피아 구지 내추럴 G1이다.



에티오피아 아파 하다강 근처에서 발견된 루시의 화석.  <출처:위키미디어>


커피의 발원지 에티오피아는 최초의 현생 인류 루시가 발견된 나라라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혹자는 루시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담과 하와의 후손이었을 것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구약 성서나 그리스 서사시를 보면 에티오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도 헤라의 질투를 피해 에티오피아로 쫓겨간 적이 있다는 신화도 있다.


루시는 1794년 하다 호수 근처 돌무덤이 쌓여있는 평지의 333구역으로 분류된 평지에서 발견되었다. 루시는 돌멩이랑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산재가 뼈 안으로 들어가 굳은 상태라 이게 뼈인지 돌멩이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인류학자들은 평생 돌을 구분하는 전문가들이었다. 밥 먹고 날마다 뼈만 쳐다봐온 사람들이기에 이게 의미 있는 뼈라는 사실을 알아 챘다. 땅에서 로또 당첨보다 더 대단한 발견을 해낸 것이다. 이들은 작은 키의 여자 어른의 화석에 루시라는 이름을 명명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발견 당시 유행했던 노래가 비틀즈의 루시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초반에 나온 비틀스의 노래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는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 등장한다. 비틀스의 존 레논이 아들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 루시를 보고 지은 노래이다. 비틀스 노래의 인기처럼, 루시는 고고학계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


https://youtu.be/naoknj1ebqI?si=R0VQFUkIasIbcutF​​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는 루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나는 오늘 아침에 비틀즈의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는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들으며 커피 한잔을 내린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리머니에 들어 있는 ‘환대의 정신’을 생각한다. 커피 생두 계약을 위해 에티오피아에 출장을 갈 때면 나는 어김없이 현지 파트너인 아브리(아브라함)의 가이드를 받고 커피의 원산지인 이르가짜빼(예가채프로 알려져 있다)로 향한다.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거리는 약 400~5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아직 가는 길이 험해서 시간은 8~10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가는 길 중간중간에 아브리의 친지(고모, 삼촌 등등)들을 만나게 된다.


<에티오피아 커피 세레머니, 출처: 경향신문>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 어김없이 내어 오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에티오피아 전통 빵인 인제라와 커피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손님 대접에 지극정성이다. 꼭 우리네 선조들이 사랑방을 만들고 대청마루에서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중 커피 세리머니는 정말 아름답다. 커피 세리머니는 에티오피아의 대표적 환대 문화이다. 시골에 있는 평범한 집들을 방문하게 되면 에티오피아 전통 복장을 한 안주인이 집안에서 숯불에 직접 커피를 볶고, 절구에 빻고, 전통적인 호리병에 커피를 넣고, 물을 넣고, 불에 끓이는 과정 끝에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하게 된다. 그윽한 커피 한잔의 맛도 맛이지만 나는 그 분위기가 취한다. 에티오피아 사람을은 외로울 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커피 함께 마실 사람도 없다. 커피 한잔 마실 친구가 없는 사람 만큼 불행한 이는 없다. 커피는 연결이고 곧 친구이자 이웃과 함께하는 연대의식의 상징이다.


커피를 만드는 안주인의 모습을 보니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신전에서 신들께 어린 산양을 잡아 불에 태워 드리는 번제를 드리던 여사제가 생각난다. 숯불 연기의 매캐한 향기와 안개가 드리운 듯한 자욱한 방안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엄숙하고 거룩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안주인의 하얀 옷은 그 신비를 더 부추긴다. 여사제가 아니다.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가 현신한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아프로디테는 미(美)와 사랑의 여신이다. 그녀의 사랑은 단순히 사람 간의 연애감정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기운이 서로 이끌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힘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프로디테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상징을 넘어 풍요와 다산, 욕망의 신이며, 생명의 순환과 생명 그 자체이다. 봄 꽃으로 화사하게 만물을 부활시키는 역할을 맡는 신이다.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이 생성되는 과정과 관계를 상징하는 신이기도 하다. 오늘 마시는 이 향기로운 커피 한잔은 세상 어떤 음료보다 달고, 상큼하고, 풋풋하고 달달한 장미의 향기가 그윽하다.


<나만의 캠핑 카페>


나는 항상 차의 트렁크에 캠핑 커피 박스와 여분의 커피를 챙겨 다닌다.  읽기 좋은 청명한 오후가 되면 나는 어김없이 볕이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향기로운 에티오피아 내추럴 커피 한잔과   권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에게 커피 마시는 시간은 나를 위로하고 타인을 환대하는 의와도 은 곳이다. 나는 언제부터 인가  커피 박스에 매료되었다. 아마 에티오피아의 아름다운 여신이 나에게 대접하던 커피의 맛을 잊지 못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젊은 시절 커피를 통해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좋은 커피를 선별하고,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형제가 되었다. 내게 커피는 사람과 사람,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좋은 매개체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아쳅토(Accepto: 받아들이다라는 , 어느 나라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심야살롱에서 나만의 커피 세리머니를  것이다.


3. 존재의 용기 You are accepted


<존재의 용기 표지>


심야살롱 시작 전에 책방지기 나은님과 죄와벌 팟캐스트 진행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나는 3부의 주제는 환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최근 내가 읽은 책 <존재와 용기>에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설교 <You are accepted>를 펼치며 보여줬다.


틸리히의 그 유명하고 인기 있는 설교 중 하나는, 죄를 소외와 분리로 정의하고, 인간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자아로부터, 이웃으로부터의 분리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분리의 상태를 잘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솔직히 그러한 분리를 당해 마땅하다고 까지 한다. 그러나 틸리히는 죄의 분리를 재정의하면서, 신의 은혜를 받아들임(acceptacne)의 차원으로 끌고 간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은혜는 우리가 엄청난 고통과 피곤함에 빠져 있을 때 밀고 들어온다. 은혜는 우리가 무의미함과 공허한 생애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할 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은혜는 사랑하는 생명, 즉 그로부터 우리가 소외된 그 생명을 더럽혔기 때문에 우리의 분리가 예상보다 훨씬 깊다고 느낄 때 다가온다. <존재와 용기, 폴틸리히, 예영>


그리고 내가 줄 친 부분 “그들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규범들을 훼손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 그들은 거부하고 싶은 모든 것을 거부할 자유를 자신들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모든 해결책을 용감하게 거절한다”라는 인용 부분을 지시했다.  


비판적인 절망과 비창조적인 방종으로 빠지려는 유혹을 받으며 실존주의에 직면한 존재의 용기는 ‘용납될 수 없는데도 용납된 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용납하는 용기’라고 말했다. 이것이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자 루터(Luther)가 강조한 ‘이신칭의(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교리의 진정한 의미라는 부분도 함께 읽었다.


나는 이번 죄와 벌 팟캐스트의 종착역에 아쳅토의 환대의 정신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도착해야 할 곳은 시베리아의 수용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비와 용서를 잘 알고 실천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은 죄수라고 할지라도 결코 책망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받은 형벌과 그들의 불행에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 러시아 전역에서 온 수인들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불행을 겪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은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오늘 회의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결국 아쳅토의 환대 정신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이었다.


4.  대한민국의 심야독서살롱, 아쳅토


<대한민국 북살롱 아쳅토​>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회의를 하고, 잠시 주차된 차를 이동하러 바깥에 다녀오느라 분주했다. 시간이 도착했다(중국 사람들은 시간을 의인화 혹은 사물화 한다. 시간이 도착했다라는 표현은 매우 시적이다. 시간은 손님이고 또 시간은 도착해야 할 기차 혹은 차인 것이다.) 밤 8시가 되어 독서를 시작한다.


한 시간의 독서를 위해 나는 카렌 암스트롱의 성스러운 자연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최근 수린님이 구입해서 비치해둔 책이란다. 참고로 수린님은 아쳅토의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아프로디테(미용사)다. 그녀의 환대 덕분에 아직 내 머리카락은 윤기나는 검은색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말이없고 수줍은 듯 하지만 늘 친절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은 다음에 내가 '파마'라도 하는 날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카렌 암스트롱의 강력한 팬이다. 카렌 암스트롱을 처음 만난 건 TED 강연 ‘Compassion’을 통해서다. 그녀는 가톨릭 수녀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비교 종교학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나는 그녀의 영상을 접하고 그녀가 쓴 벽돌(?) 책, 축의 시대를 바로 사서 일주일 만에 읽어냈다. 책의 두께에 비하면 정말 빠른 시간에 읽어낸 것이다. 그만큼 책의 내용이 탄탄하고 설득력 있었다.


5.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이 동시에 활동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가 있었다고 밝힌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는 모두 다른 지역과 문화에서 활동했지만, 이들이 같은 시대에 출현한 이유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BC 1세기 경은 역사적 맥락상 이 시기는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급격히 발전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동시에 다양한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한 문명들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런 교류와 영향력의 결과로 다양한 종교, 철학 및 사상이 동시에 발전하고 성장했다. 이 시기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변화와 혼란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변화와 혼란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상의 등장을 촉진시켰으며,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물들이 새로운 가르침과 철학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안정과 지혜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영성과 선한 삶에 대한 탐구가 더욱 활발해졌다. 이들 인물들은 인간의 본성, 윤리, 도덕, 영적인 삶 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이를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탐구는 인류의 문명 발전과 함께 진보한 사고와 통찰력을 도모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와 성자들이 같은 시대에 출현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의 가르침과 영향력은 역사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와 우리의 생각과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6. 성스러운 자연

<성스러운 자연 표지>


<성스러운 자연>은 <축의 시대>의 자연에 대한 증보판의 성격이 강했다. 표지의 몽환적 사진은 나를 매료시켰다. 이 책은 부제는 '일어버린 자연의 경이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였다. 저자는 “자연의 성스러움은 인간 정신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자연 세계를 경험해 왔는가”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붓다, 맹자, 토마스 아퀴나스, 윌리엄 워즈워스 등의 인문학적 공통점을 찾아 탐험을 떠났다. 나는 그중 우리가 자연과 소외된 이유에 대한 그녀의 설명에 눈길이 갔다.


그동안 경험한 변화가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장소를 걸으면서 통화를 하거나 소셜미디어 화면을 움직이다. 우리는 그 장소에 있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그곳에 없다. 강가에 앉아 생각에 잠기거나 경외감에 사로잡혀 산맥을 보는 대신 강박에 사로잡혀 이 장면 저 장면 계속 사진을 찍는다. 그 풍경이 우리 정신과 마음속 내밀한 장소에 들어오도록 놓아두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거리를 둔다. 이제 자연은 모의 현실이 되어 간다. 도시 생활로 인해, 또 마음을 온통 빼앗는 기술로 인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었으며 그 결과 심지어 데이비드 에튼버러의 웅장한 자연 다큐멘터리조차 우리의 ‘가장 깊은 핵심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그런 소외감과 상실감을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이 현실은 최근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성스러운 자연, 카렌 암스트롱, 교양인>


나는 오늘 성스럽기까지 한 아쳅토의 심야살롱에서 내가 소외시켰던 웅장한 자연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소외감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연 속에 있는 그 순간조차 카메라 필터에 집착했던 나는 얼마나 무지한 인간이며 단절된 수인이었는가? 오늘 내가 읽고 있는 3권의 책(죄와벌, 존재할 용기, 성스러운 자연)은 모두 내가 단절되어 있었으며, 스스로 소외되었고, 상실감에 풀이 죽어 있던 존재였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7. 황금률


단절되어 있는 나와 너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나는 8장의 황금률에서 찾았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라는 황금률은 성서에 나오는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렌 암스트롱은 그것은 인간 도덕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고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다른 누구도 괴롭히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이런 박애는 자신과 마음이 맞는 집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공자의 인에 대한 설명은 압권이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평민을 관리할 때는 큰 희생제를 감독하는 것처럼 행동하나. 너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공자>


그런데 나는 늘 이런 마음을 실천에 옮기는 데 실패한다. 최근 해방촌 독립서점 투어를 갔을 때 일이 생각났다. 책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살인자 ㅇ난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팟캐스트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므로 나는 신나서 웹툰의 주요 스토리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나은님의 한마디가 나의 말을 멈추게 한다. 자세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읽을 권리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스포일러를 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다른 이들의 독서권 혹은 시청권을 방해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바로 수긍했다. 그러나 솔직히 ‘이거 뭐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나은님과 대화할 때  ‘날 것의 느낌, 야수의 심장 소리, 어슬렁거림’  이런 걸 느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야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필연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존재할 용기’를 읽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규범들을 훼손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거부하고 싶은 모든 것을 거부할 자유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들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모든 해결책을 용감하게 거절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남의 권리를 빼앗지 말자.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권리를 빼앗는다면 그것이 향기 나는 꽃이라 할지라도 건네지 말자.”   


8. 경계에 선다는 것


그런데 나는 오늘 또 꽃을 건네고 말았다. 수연님에게 장자전문가인 최진석 교수의 노자인문학 책을 추천했다. 나은님은 겸연적게 웃으며 또 한 마디 한다. "책스라이팅 하시는 건가요?"그래도 이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책을 추천한 이유는 수연님이 내가 기증한 최진석 교수의 다른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골랐기 때문이다. 한 마디했다. "그거 너무 탁월한데요?" 그리고 나의 또 다른 기증도서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건네줬다. 그는 아마도 오늘 생각함에 있어서 경계에 선다는 것의 의미를 숙고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만은 내가 한 것은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도덕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구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한다.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

渙녹을환,兮어조혜,若같을약,氷얼음빙,之갈지,將장차장,釋풀석


풀어지기는 봄날 얼음이 녹는 듯하다. 노자는 '봄날 얼음이 풀리듯이 하라'라고 표현했다.  봄날 개울가에서 얼음이 풀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물도 얼음도 아닌 것이 그 경계가 모호하게 보인다. 경계가 모호한 것을 분명하게 하지 말고 경계가 모호한 것 자체가 세계의 모습이다. 경계에 서 있는 그 모호함을 분명함으로 바꾸려고 말고 경계가 모호한 긴장 상태를 그대로 품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무상생(有無相生: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공존한다)이기 때문에 '봄날 얼음이 풀리듯 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세계가 대립면으로 되어 있는 연결점이다. 도가(道家)에서 제일 긍정적인 글자는 현(玄)이다. 우리는 검을 '현'이라고 하지만 원래의 뜻은 감을 '현'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검은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물가물' 하다는 뜻이다. 경계가 '가물가물' 하다는 것은 대립 면의 공존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따라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나는 봄날의 얼음 녹는 시점에 봄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살고 있는 한 청년에게 ‘경계선에 서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계획에 없었으므로 꼭 그렇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수연님의 나이 정도에 필사를 할 만큼 내게 큰 영향을 준 책이므로 누군가에게는 꼭 추천했을 것이다. 그러라고 아쳅토에 기증한 것이 아닌가?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 수연은 오늘 40여 페이지를 읽고 ‘경계에 서는 삶’ 대한 자신의 소감을 밝힌다. 그러면서 내가 프렌치 프레스로 내린 에티오피아 구지 커피를 한잔 들이킨다. 달콤하고 향긋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지극한 행복감을 만끽한다. 루시, 커피 한잔의 환대, 받아들임, 존재할 용기, 죄와벌, 아쳅토…. 오늘 하루 는 내가 감당할 수 없만큼 기쁨의 향연이었다. 모두의 저항과 환대 속에 우리는 경계에 설 것이다. 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때까지 읽고 쓰고를 반복하면서 본향에 돌아오고야 말 오뒷세우스를 기다릴 것이다.  


#오늘 꼭 기억해야 할 단어들


#에티오피아

#현생 인류 루시

#커피 세레모니

#캠핑박스

#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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