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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Feb 24. 2024

사과가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

심야북살롱_탄소로운 식탁


탄소로운 식탁

사과가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



1.  환경운동에 대한 불편한 심리


이번 주 심야 북살롱에서 나는 ‘탄소로운 식탁’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도입부에서 ‘인류 문명사는 굶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강변했다. 인류는 수천 년간 굶지 않기 위해 투쟁했는데 투쟁에 승리한 인류는 놀라울 정도로 투쟁에 무관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놓친 먹거리 속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지구의 인구는 불과 70년 만에 25억 명에서 70억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인구증가와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산업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시작되었고, 기후위기는 다시 먹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고 얘기했다.


솔직히 나는 외식업 종사자로서 이런 환경보호론자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다. 친환경 정책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데 환경을 지키는 노력보다 기업의 이윤과 경제성의 논리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후배네를 방문한 것이 있다. 그 집에서 나는 나무로 만든 칫솔을 사용하는 것을 봤다. 나는 무심히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환경보호 운동가들의 정치적인 행동이 때로 불편할 때가 있다. 나는 플라스틱 칫솔을 평생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해 오고 있는데, 그럼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나무 칫솔로 바꿔야 하는 것인가? 만약 이것을 친환경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또한 정치적 압제이고 폭력이 아닌가?”


나는 범지구적 환경 파괴에 경각심을 갖고 반핵, 탈원전, 생물다양성 보존 등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시 친환경 운동가들의 과격 시위와 주장이 다소 불편했던 것 같다. 가끔 언론에서 목격하는 환경운동가들의 다소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을 보는 일은 내게 다소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핵무기 실험장에 조각배 하나 타고 들어가고, 고무보트로 포경선 주위를 돌며 조업을 방해하고, 석유시추선 탐사장비를 훼손시키는 등 그들의 대담한 적극성은 내게 만용에 가까운 행동으로 보였다. 전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현재 백지화된 현 상황도 고민스럽다. 개인적으로 탈화석연료,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지하지만 아직도 대규모 산업전환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과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은 뼈아프게 생각한다.


이렇게 친환경 운동가와 정책에 미온적이었던 내게 최근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환경에 작은 관심과 실천을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 변화에는 아쳅토의 친환경에 대한 생각과 노력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지금부터 나의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2.   분리수거의 집사가 되다


나는 요즘 텀블러를 늘 휴대하고 다닌다. 내가 텀블러를 사용한다고 그 많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나처럼 환경보호에 무심했던 사람의 작은 실천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큰 변화의 씨앗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환경보호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의 친환경 성탄 선물>


작년 성탄절 우리 아프트 분리수거장에서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일반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잘 묶어서 일반쓰레기를 분리하는 큰 통에 잘 넣어서 배출해야 하는데, 그날따라 십여 개의 봉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옆에 빈 통이 있는데도 주민들이 그냥 쌓아두고 간 걸 보고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나는 바닥에 있는 쓰레기봉투들을 일일이 큰 통에 잘 정리한 후 이렇게 아파트 단톡방에 사진과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탄소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런 권한도 힘도 없지만 항상 분리수거장을 유심히 지켜보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우리 아파트의 분리수거장을 지켜보는 살아있는 눈동자가 되었다.


3.   탐욕적 자본, 탐욕적 소비의 그늘


나는 평소 먹거리가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가 되어 우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은 사실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가 북극의 빙하를 녹여 북극곰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이야기도 나와는 다소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탄소로운 식탁]에서 설명했던 탐욕적 자본과 탐욕적 소비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서는 많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먹거리 문제에 대해 내가 직접 경험한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나는 지난 10년 이상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의 구매 업무를 담당했었다. 내 업무는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업의 규모에 걸맞은 식재료를 수입하는 일이었다. 유럽, 미국, 호주의 대형 패커와 연간 계약을 통해 저렴하고 품질 좋은 육류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미국과 호주로 대표되는 육류 시장은 탐욕적 자본과 손바닥을 마주친 탐욕적 소비의 결과물로 매년 성장하고 있다. 탐욕적 자본은 가축들의 사용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소비자들을 현혹시킨다.


<미국 육류협회 소고기 품질 기준>


예를 들면, 소를 사육하는 방식과 고기의 등급을 분류하는 방식에서 그 문제는 드러난다. 소는 보통 송아지 시절 목초지역에서 방목된다. 그러나 목초를 먹고 자란 소의 고기는 근내지방도가 떨어지고 질긴 문제가 있다. 그래서 글로벌 식량자원 회사들은 소의 사육방식을 개선했다. 참고로 소고기를 유통하는 대기업형 식량자원 회사들이 대규모 곡물상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들은 밀, 옥수수 등을 직접 생산하고 사료를 만들어 공급한다.


어린 소는 목초를 먹여 비육하다가, 어느 정도 성숙되면 일정 기간 곡물을 먹여 비육시킨다. 마블링의 양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밀도가 높은 곡류(마카로니, 옥수수 등)나 극단적으로는 당분, 초콜릿 등을 먹여 도축하는 경우도 있다. 근내지방도가 높을수록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으므로 비싼 가격에 유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근내지방도를 높이기 위해 동물들에게 고탄수화물 먹이를 강제하는 것은 동물을 괴롭히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비윤리적인 방식이라고 문제제기 해 볼 수도 있다. 나아가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 고기는 건강한 식품일 수 없다. 비윤리적으로 키운 동물은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방식으로 악순환된다.


나는 한때 육가공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관리자였던 적이 있다. 공장의 토목과 건축, 인재의 선발과 배치, 생산 가공 프로세스의 설계와 운영, 그리고 원료의 수입과 유통 전반에 대한 업무를 책임졌었다. 높은 연봉, 회사의 지분, 이익의 배당, 적절한 보상체계 등 비교적 좋은 근무 조건이었다. 어찌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화려한 직장생활은 그리고 오래가지 못했다. 육가공 공장은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직원들의 빈번한 절단 사고는 나를 위축시켰다. 모두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정의 가장 일 텐데, 그들이 신체 일부분을 잃고 실의에 빠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생산 공정의 운영도 매우 힘들었다. 납품처는 늘 급박하게 생산을 요청했다. 무리하게 공장을 가동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반목하고 이탈했다. 회사 운영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즈음 당뇨와 고혈압을 판정받았다. 높은 혈압도 문제였지만, 신장 투과율 저하와 같은 합병증이 진짜 문제였다. 과장해서 말하면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송장과도 같은 삶을 연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악화되는 건강 앞에 돈도 경영자의 타이틀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런 생각이 커져가던 어느 날, 나는 투자회사의 대표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4.   제철 농산물, 친환경 농산물 뒤의 그림자


회사를 그만두고 아는 지인과 함께 직접 영농을 하며 농산물 유통을 시작했다. 그동안 동종 업계에서 종사했으므로 몇몇 납품처와 연결되었고 납품을 시작했다. 새로 출항한 배는 순항했다. 처음 하는 농사지만 하나하나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했다. 그런데 문제가 드러나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양배추, 브로콜리, 양상추와 같은 샐러드에 사용하는 작물을 재배했는데 직영 농장의 면적은 대략 1만 평 정도 되었다. 1만 평 농장은 입구에서 끝까지 걸어서 5~10분 정도 걸리는 대규모이다. 초보 농사꾼의 1만 평 농사가 평탄했을 리가 없다.   


<농장 전경>


가장 어려운 일은 잡초와 병해를 방지하는 일이었다. 텃밭이라면 일일이 잡초를 제거하겠지만 농장의 규모가 있기에 잡초와 병해를 제거하기 위해 수시로 어머 어마한 제초제, 농약, 비료를 살포해야 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농업은 정말 요원한 말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농산물의 품질은 단순히 외관이 잘생기고 병해가 없는 것이 기준이다. 예쁘지 않고 병해를 입은 농산물은 생각할 수도 없는 가격 판정을 받는다. 친환경은 제초와 병해 방지를 위해 더 많은 노동력과 비용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크기가 작고 모양도 이상한 친환경 농산물은 도매시장에서 낮은 등급의 저가 농산물로 취급받는다.  


제철 농산물도 문제가 있다. 제철 농산물은 봄, 가을 자연적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말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자라난 농산물이야 말로 가장 친환경적 작물이지만 봄, 가을 출하되는 농산물들은 제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제철 농산물은 평가 절하된다. 이런 노지재배의 단점을 보완하고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시설재배(비닐 혹은 온실하우스)를 적극 권장했다. 그러나 온실 재배는 그 이름처럼 온실가스의 주범이다. 하우스 재배로 인해 우리는 사시사철 농산물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온도를 높이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온실에서 키우는 작물들의 영양소 공급원은 100% 비료이다. 온실 재배 시작부터가 친환경적일 수 없다.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시설재배 기술은 이제 지구의 기후를 위협하는 원인이 되어 악순환을 가속화시킨다.


5.   사과가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


<거창의 사과 농장>


나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 고향 영천은 원래 경북능금으로 대표되던 ‘사과의 주산지’였다. 그러나 이제 영천은 더 이상 사과를 생산할 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내 고향의 여름과 가을은 지천에 널린 과일들로 풍요로웠다. 어디 가나 포도, 자두, 복숭아, 사과 과수원이 있었다. 당시 과수원 주인들은 흠과나 낙과는 얼마든지 따서 먹도록 허락해 줄 만큼 여유와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겨야만 한다. 사과 대신 남부 지방의 대표 작물인 양파와 마늘을 재배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경남 거창도 최근에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기후 변화와 병충해로 작년 사과 수확량은 대폭 감소했다. 내가 아는 몇몇 농가는 탄저병으로 올해 수확량이 전년 대비 30%에도 미치지 못해서 한숨지었다. 더 심각한 것은 한번 생긴 탄저병은 토양을 오염시켜 최소 3~5년은 지나야 회복된다고 한다. 기후 변화 속에서 사과 산지는 점점 북진하고 있다. 내가 요즘 환경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과와도 관련이 있다. 환경의 변화는 단지 북극곰의 생태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사과 반쪽으로 식사를 대체하고 있는데, 내가 먹는 주식인 사과의 생산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은 내의 생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과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주저앉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6.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


<지난 성탄절 나의 탄소로운 메세지>


이제 환경을 보호하는 일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 막 버리는 사람들은 정말 반성했으면 한다. 음식물 쓰레기 통에 비닐 그대로 투기하는 사람, 박스 접지 않고 그냥 던져 놓는 사람, 재활용 쓰레기가 아닌데 재활용 쓰레기에 불법 투기하시는 사람..... 나는 아무런 힘도 없지만 그래도 항상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누가 양심 없이 함부로 버리는지. 환경을 지키는 일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나는 우리 아파트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확 바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하고 싶다. 이것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들과 비교되어서 어디 가서 얘기하지도 못할 만큼. 순진한 얘기라고 하겠지만, 나는 아파트 가격이 비싼 것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시민의식이 있고, 서로 배려하는 좋은 이웃들이라는 소문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 탄소로운 나의 잔소리>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단톡방에 잔소리하는 유반장이 된다. 11명의 좋아요는 나에게 큰 힘이 된다. 단톡방에서 이만큼 공감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박스는 잘 접어서 분리 수거해야 한다. 운송장이 그대로 붙여진 채로 이렇게 던져 놓고 간 주민들은 정말 잘 몰라서 이렇게 하는 걸까? 내가 정리한 것처럼, 이렇게 깔끔하게 버리면 쾌적한 공동주택 생활이 될 것 같다고 우회적으로 말해줬다. 조금만 노력해 달라고, 환경보호는 북극에 있는 곰을 위한 게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나와 가족, 이웃을 배려하는 작은 실천들을 호소했다.


<오늘 아침식사>

: 구운 두부, 셀리리, 파프리카. 봄동, 통밀빵


이제 텀블러를 늘 가지고 다닌다. 우리 아파트의 환경킴이가 되어 잔소리를 하는 것 말고도 다른 변화가 있다.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쳅토의 자연친화적 노력에도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고혈압 당뇨 환자의 삶을 살고 있는 내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방법 때문이기도 하다. 고혈압, 당뇨는 소희 생활 습관병이라고 한다. 불규칙적인 식사,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 평소의 잘못된 생활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질병이다. 오늘 아침에도 구운 두부와 채소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렇게 식사를 하면 속도 편하고, 마음도 한결 가볍다. 이렇게 식단관리만 잘해도 몸의 긍정적 변화 만들 수 있다.


이번 달에 두 달 만에 주치의 선생님을 만날 예정인데 선생님께 잘 관리했다는 칭찬을 받을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 비건은 어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죽어가는 내 몸을 살리기 위한 피할 수 없는 방법이다. 나는 이제 살기 위해 환경을 보호하고, 살기 위해 고기를 줄이고, 살기 위해 채소와 과일 위주의 식단으로 전환할 것이다. 이것이 나와 너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아쳅토, 나와 너 그리고 자연을 시랑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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