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독서살롱 아쳅토 3기-3회의 기록
프롤로그:
고전으로 읽는 오늘 <죄와 벌> 마지막 회를 업로드했습니다. 성원해 주신 덕분에 지난주 팟빵 독서분야 16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죄는 무엇이고, 그 벌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문우님들의 격려와 응원은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고전으로 오늘을 읽어내는 일에 더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제 글도 머리가 아니라 손과 발로 더 성실하게 진실하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https://podbbang.page.link/3CNvBJsgtreS1oBN7
제목: 수레바퀴를 깎는 삶
부제: 심야독서살롱 아쳅토 3기-3회의 기록
1. 새벽 운동, 계단을 기어서 내려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운동과 관련된 내용은 이 링크를 참조해 보시길 바란다.
https://brunch.co.kr/@justinryu/132
운동을 마치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처참했다. 일단 망원역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나는 난간을 부여잡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50분의 운동만 했을 뿐인데 계단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근력은 소진되었고, 에너지는 모두 고갈되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관절을 감싸는 근육이 아파왔다. 마치 2박 3일간의 유격 훈련을 마치고 복귀 행군을 하던 시절의 기억을, 나는 오늘 50분 운동을 마치고 회상하고 있다. 반대로 이것은 오늘의 운동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왠지 정 코치님과 오래도록 운동할 것 같은 기시감 (旣視感: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나 처음 본 인물, 광경 등이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았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이 몰려온다.
2. 책 만들기
운동을 마치고, 최근에 수강 중인 예술 제본 수업을 들으러 사대문 안에 있는 공방을 찾았다. 이번 주 수업은 기존에 소장 중인 책을 뜯고 그것을 다시 복원하는 작업 과정을 실습하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책을 뜯는 작업을 했고, 이번 주에는 뜯어 놓은 책의 각 페이지를 보수하는 작업을 했다. 나는 원래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기존에 내가 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저자와 내용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책을 만들어보면서 또 다른 기준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책의 물리적 특징, 즉 소재와 책 자체의 예술성이다.
<예술책 공방: 아뜰리에>
그래서인지 최근에 읽은 책들은 모두 양장 커버에 고전적인 디자인의 책들이다. 책 제본을 배우고 난 후 가장 큰 변화는 책을 대할 때 책의 저자뿐 아니라 책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내 손안에 들어오기까지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탄생한다. 나는 오늘 단순히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의 삶과 노력과 땀 이 서린 사람들의 무늬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게 책은 밥과 같은 것이다. 인간들이 그리는 무늬는 이제 단순한 문자를 넘어 삶과 삶이 만나는 만남의 광장인 것이다.
언젠가 책에 관한 책을 쓴다면 그 책 제목은 <책과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인간이 만든 책, 인간이 그린 무늬야말로 내가 반드시 써야할 운명적 글인 것이다.
3. 소전서림, 고전 300권 전시회
https://m.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070814/items/5618384?preview=0&tab=book
<읽는 사람: 당신이 __할 300권의 고전>
오후에 나은 님과 청담동에 있는 소전서림에서 진행 중인 고전 300권 전시회에 참여했다. 소전서림은 흰 벽돌들(책?)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유료 도서관이다. 이용료는 반일 3만 원, 종일 5만 원, 연간 10만 원이다. 이용료가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연간 회원이 되어달라는 의미가 아닐까?! 강남에 사신다면 1년에 10만 원은 결코 비싼 비용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든다.
소전서림을 설계한 건축가는 디바데 말쿨로로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 건축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은 설계가 라고 한다. 내부 설계는 현대카드 디자인 바리브러리 등으로 유명한 원오원 아키텍츠 건축 사무소에서 맡아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구조,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가 완성도가 높다. 나는 소전서림 설립자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설립자가 얼마나 ‘읽는 사람’들을 환대하고 싶었는지 알 것 같다. 책을 읽는 쾌적한 공간과 독서의 몰입도를 높이는 환경이 너무 부러웠다.
<갖고 싶은 단테 신곡 by illustrated by 살바도르 달리>
오늘의 북 큐레이션은 고전 300권이 주제다. 전시되어 있는 예술 제본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내가 극단적으로 사랑하는 단테 신곡과 일리아스였다. 전시된 책은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로드 달리가 해석한 창의적인 그림이 포함된 책이다. 달리는 자신의 예술 작품으로 대중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츄파츕스의 디자인이 달리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오늘 초현실주의를 표방했으나 대중을 위한 예술을 고민한 달리가 진짜 ‘달리’ 보였다.
전시물은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시작으로 동양의 고전들을 포함해 기원전 8세기의 작품들부터 2009년에 발표된 책까지 총망라된 300권의 큐레이션이다. 이번 큐레이션은 시대순만 나열하기보다 언어권 별로도 최대한 고르게 선별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인문학은 근대까지 라틴어의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 등 세기의 문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그 전통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가 문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주로 철학서를 많이 읽은 편이다. 오늘 전시된 300권 중 나는 대략 50여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도슨트 님은 약 60% 정도 읽어보셨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독서량이 아닐 수 없다. 전시회를 보면서 내 맘 속에서 알 수 없는 꿈틀거림이 있었다. 그것은 오늘 전시된 300권을 읽고 싶은 욕망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시작한 팟캐스트 연결하는 책방 아쳅토의 <고전으로 읽는 오늘>이 더 기대된다. 더 열심히 읽고 싶은 마음을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일리아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의 최고봉>
오늘 전시회에 함께 참여한 멤버가 있는데 그분은 중학교 시절부터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읽으며 성장했다고 한다. 나는 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40대가 넘어서야 읽을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호메로스의 시들을 읽은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아마 신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숙고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호메로스를 꿈꾸며 나름의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찬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러운 사실이 있다. 읽기와 쓰기는 운동과 달라서 조기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호메로스 키즈가 한없이 부럽다가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다시 상기했다. 지금이라도 호메로스를 알고 동서양의 고전들을 읽어 나가는 내 삶이 한없이 희망차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늘도 호메로스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여름에는 꼭 내가 읽은 신화들을 확인하러 그리스로 갈 것이다. 나의 <그리스 원정대>는 이제 곧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4. 망원동의 탄소로운 밥상
이제 망원동으로 다시 가야 할 시간이다. 어제 수연님께 턱걸이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이번 운동으로 턱걸이에 다시 한번 도전에 보고 싶다고…. 군생활을 하면서 체력을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턱걸이는 해보지 않았다. 당시 군대의 공식 체력 측정은 푸시업, 오래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에 있는 풀업 기구와 탄력벨트를 이용해 턱걸이를 연습하고 있다.
턱걸이를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체중 감량이다. 지금 80kg가 넘는 중량을 5~7kg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먹는 것을 관리해야 한다. 요즘 부쩍 먹는 것에 신경 쓰고 있다. 최근 식사는 대부분 채소 위주의 식사이다. 아침은 봄동과 과일, 점심은 두부와 샐러드, 저녁은 가벼운 한식을 먹고 있다. 육식 대신 두부와 견과류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한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저녁 운동까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연님을 만나 글씨기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다. 5시경 수연, 나은,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만났다. 각자 글도 쓰고 읽기를 시작했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바쁘게 달려온 오늘 하루의 끝에서 우리의 몸은 먹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망원동에는 비건식당이 많다. 비건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의 삶이다. 최근 비건식으로 식사를 조금씩 바꾸면서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졌다.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매일 느끼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감사할 일이다.
<망원동 비건식 중국요리: 가원>
오늘 저녁 식사는 비건식 중국요리였다. 수연님이 추천한 식당인데 나은 님이 몇 번 먹어보고 정말 맛있다고 강력 추천했다. 가장 일반적인 메뉴 3가지- 잡채비빔밥, 짜장면 곱빼기(배가 고팠다 ㅋ), 짬뽕-를 주문했다. 비건 중국 요리는 고기대신 두부튀김이 들어가는 것이 달랐다. 당연히 두부튀김이 들어갔으므로 돼지기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돼지기름이 빠진 짜장면과 짬뽕은 깔끔하고 맑은 느낌이다. 동물성 기름을 배제한 음식을 먹으면서 내 몸을 돌본다는 생각에 한편 뿌듯했다. 면은 되도록이면 줄여야 한다. 정제 가공한 면보다 자연에 가까운 곡물을 더 많이 먹겠다고 다짐하면서 오늘은 면을 채소와 함께 천천히(?) 덜 탐욕적으로 먹어 본다.
5. 삶이라는 감옥 속에서 한계 지어진 인생
이제 심야북살롱이 시작될 시간이다. 이번 주는 신영복 교수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잘 알려진 대로 신영복 교수는 1963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학위 취득 후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사로 근무하다, 육군 장교로 임관하여 육사 교수사관으로 복무했다. 그러던 중 1968년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 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아 구속되었다가 전향서를 쓰고 1988년 특별 가석방으로 20년 20일 만에 출소했다.
<좌: 국정원 원훈석, 우: 처음처럼>
신영복 교수는 한평생 이데올로기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좌익 인사 중 하나이다. 그의 글씨체(신영복체)와 그를 가장 좋아한다던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는 아직도 좌와 우의 극한 대립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글씨를 국정원 원훈석으로 사용한 것으로 한동안 떠들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첩으로 판결받아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의 글씨를 국정운의 원훈석으로 쓴 것은 좌파의 무모한 갑질일까 아니면 역사 화해의 제스처일까? 어쨌든 나는 전 정부의 이런 행보가 더 큰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의 육사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나 우파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들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좌와 우의 날개로 멀리 비행하는 것이다. 그 균형점이 어딘지 직시하면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침 없이 나아가야 한다.
나는 신영복이 좌익 추종자인지 그래서 국가반역을 도모했는지, 전직 대통령이 그를 존경하는 것이 좌파적 식견에 따른 것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다. 나는 다만 그가 쓴 글을 읽으며 내게 무엇을 교훈하는 지를 읽고 생각할 따름이다. 집에 와서 ebook 플랫폼에서 그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확인하면서 나는 아연실색했다.
<청구회의 추억 필사본: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나누어주는 휴지나 메모지에 이렇게 깨알 같은 글을 썼다고 한다. 이 메모야말로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의 실존적 증거이다. >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추상같은 호령 앞에서 나는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어떠한 과정으로 누구의 입을 통하여 여기 이처럼 준열하게 그것이 추궁되고 있는가. 나는 이런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8월의 뜨거운 폭양 속에서 아우성치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만 듣고 있었다. 나는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득한 그리움처럼 손때 묻은 팽이 한 개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답변해 주었다. ‘국민학교 7학년, 8학년 학생’이라는 사실을. 그 후 나는 서울지방법원 8호 검사실에서 또 한 번 곤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청구회 노래’인가?”
검사의 반지 낀 손에 한 장의 종이가 들려져 있었다. 거기 내가 지은 우리 꼬마들의 노래가 적혀 있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어깨동무 동무야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 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싹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배우며 일하는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 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여기서 ‘주먹 쥐고’라는 것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추궁을 받았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의 준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끈질긴 심문이었다. 내가 겪은 최대의 곤혹은 이번의 전 수사과정과 판결에 일관되고 있는 이러한 억지와 견강부회였다. 이러한 사례를 나는 법리해석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 그 자체의 가공할 일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는 특정한 개인의 불행과 곤혹에 그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성이 복재(伏在)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군법회의에서 이 ‘청구회 노래’의 가사를 읽도록 지시받고 ‘청구회’가 잡지사 ‘청맥사’를 의식적으로 상정하고 명명한 이름이 아니냐는 ‘희극적’ 질문을 ‘엄숙히’ 추궁받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돌베게>
나는 90년대 학번으로 학생운동이 종말을 눈으로 목격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운동권 특히 주사파라 불리는 학생운동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실제로 학부시절 주시파들과 논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의 사례를 보며 이런 의구심을 갖게 된다. 청구회가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의 불온한 모임이기만 했을까? 그리고 그들이 읽고 썼던 것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주사파들의 핏빛 혁명가이기만 했던 것일까? 당시 통일혁명당 수괴라고 지명된 인원들은 사형당했다. 신영복 교수는 수괴급은 아니었나 보다. 그는 박성준(한명숙 전 총리 남편) 등과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이상을 감옥에서 지냈다. 그는 결국 전향서에 서명을 하고 석방되었다.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신념 한다는 것만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일 어떤 권력기관이 나를 붙잡아 심야북살롱에서 정치사상범이었던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은 경위에 대해 자백하라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심야북살롱의 수괴의 이름과 연락처를 대라면 어떻게 할까? 나는 이 ‘희극적’ 질문 앞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조선시대에 노장사상은 유교와 배치된다는 이유로 탄압받았다. 노장을 흠모하는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필시 멸문지화를 당하고 부관참시할 민족의 역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뒷목이 뻣뻣해지고 소름이 돋는다.
6. 수레바퀴를 깎는다는 것
<출처: EBS>
나는 신영복 선생의 책 내용 중 내가 평소 좋아하던 <장자>의 천도 편에 나오는 구절을 펼쳐 읽었다.
齊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公之所讀者 何言邪
公曰 聖人之言也
曰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曰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無說則死
輪扁曰 臣也 以臣之事觀之 斲輪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 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 古之人 與其不可傳也 死矣
然則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天道」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당상堂上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수 윤편輪扁이 당하堂下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당상을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말(을 쓴 책)입니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환공이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목수 따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신은 신의 일(목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축軸 즉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자, 천도편>
‘환공'의 이름은 '강소백'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 나라의 13번째 군주인 '희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나라는 현재의 산둥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주나라의 '문왕'이 상나라(은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나라를 세우면서 공신인 '강상'(태공망)에게 내린 봉토이며, 환공은 강태공의 12 세손이라고 한다. 그는 춘추시대 5명의 영웅이 춘추오패(제환공, 진목공, 송양공, 진문공, 초장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제일 먼저 패자로 등극한 사람이 제나라의 16대 임금인 환공(BC 685~643)이다. 제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환공을 춘추오패가 되게 만든 재상 관중과 포숙의 우정은 ‘관포지교’라는 4자성어로 널리 알려졌다.
난세의 영웅 환공 앞에서 백발의 늙은 목수는 겁을 상실했다. 환공이 읽고 있는 책이 옛사람의 찌꺼기라니. 환공의 경고처럼 감히 목수 따위가 죽음이 무섭지 않은가 보다. 임금 앞에 나선 것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일이거늘 임금이 읽고 있는 책이 찌꺼기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망발인가? 노인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목수 윤편은 자신이 바퀴를 깎는 일을 설명한다. 수레바퀴를 깎는 일은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하게 깎는 것이 핵심인데 이것은 목재의 상태와 바퀴의 모양에 따라 늘 헐거워지기도 하고 빡빡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그것을 말로 깨우칠 수 없어 자신의 자신에게 그것을 전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했다. 자신이 일흔 살 노인임에도 아직도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환공’은 노인을 죽이지 않았다. 노인이 옛 책들이 ‘찌꺼기’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책 속에 쓰인 의미가 곧 진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책 속의 문자들은 말에 불과하다. 그 말은 그 뜻하는 바로 정확히 지시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장자의 사유를 처음 만났을 때 환호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노장 사상의 해체적 독법>이라는 책을 쓰신 (고) 김형효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심은 본성보다 훨씬 투쟁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이기도 하다. 본성은 원래 자연적이지만, 도덕적 선의지는 본능만큼 강인한 지능의 이기심과 싸우기 위하여 강력한 당위적 요청을 내세워야 한다. 동서고금의 모든 도덕률이 반이기적이고 당위적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너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도덕적 양심에 맞기 때문이다”라는 도덕률은 당위성을 앞세운 것이다. <인간혁명, 김형효, 살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상주의자들은 이런 당위를 가지고 세계를 혁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적 도덕주의자들은 선의 세상을 만들려는 위대한 꿈으로 부풀었다. 서양 철학은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의 분과를 윤리학이라고 명명한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어떤 것이 윤리적인 것인지를 규명하는 학문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 사회는 아직도 법치라는 명분하에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명분을 가르치는 일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윤리적 접근법은 실패했다. 요순시대를 재현하겠다던 조선 선비들의 도학 혁명도 실패했고, 중국 청나라 말기 호수 전의 태평천국 혁명도 실패했고,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의 사회주의혁명도 실패로 끝났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도 늘 그 이념을 수정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우리가 경전처럼 생각하는 법치는 항상 개정되어야 하는 운명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치주의는 고정된 성문법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법치주의를 읽는 새로운 독법일 것이다. 김교수의 혁명적 해법은 아래와 같다.
이기적 지능의 경제주의적 논리는 실제로 세상에 편리한 문명을 이룩했고, 그것은 동물적 본성을 대신할 만큼 끈질기다. 그래서 사회생활에 이기심을 이기기 어렵다. 도덕적 이상주의자들은 도덕적 선의지가 세상을 지배하기를 바라면서 이기심과 투쟁했다 그러나 도덕적 당위의 투쟁은 결코 이기심을 뿌리 뽑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기심은 비로 자기중심적 의식의 소산이긴 하지만, 그 뿌리는 본능적인 무의식의 생존욕구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도덕의식의 주장만으로는 없애기 힘들다. 그래서 이상적 도덕주의는 사회생활에서 늘 명분을 주장하는 의식의 영약만 점령하여 공허한 이름만 외쳤다. 이것이 선전 도구의 이념이다. <인간혁명, 김형효, 살림>
평생 서양의 해체철학을 공부한 김교수는 삶의 후반에 동양적 사유에서 비로소 서양의 해체철학을 확실히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세상을 반이기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모든 이상적 혁명이 실패한 까닭이 의식의 당위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그는 세상을 헌 집처럼 고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붕이 낡았으면 지붕을 고치고, 기둥이 썩었으면 기둥을 고치고 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의도는 모두 실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은 욕망이 무의식적으로 그리는 그림과 같으므로 무의식의 본능적 욕망과 무의식의 본성적 욕망이 자리바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본능은 생존을 위한 소유욕이라면, 본성은 자기 특성을 꽃피우고 성취하고픈 욕망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희망이 사회생활에서 잘 솟아오르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의 본능은 지능으로 사회생활화됐지만, 본성의 정신적 요구는 쉽게 사회생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성의 정신적 요구는 인간의 마음이 고유하여 출렁거리지 않고 안온할 때 소리 없이 내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것이라고. 도덕적 선의지는 사회생활에서 이기심과 사우고 투쟁해야 하기 때문에 도덕주의 역시 현실적 경제주의 못지않게 소유적이라 했다. 도덕의지는 명분으로나마 세상을 지배하기 위하여 쉽게 권력의지로 미끄러지므로 필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현실적 경제주의나 이상적 도덕주의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곳에서는 본성의 정신적 희망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본성의 희망은 소유적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 생활에서는 주눅이 들어 무의식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본성의 희망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으로 떠들고, 악 쓰고, 잘난 체하면서 미쳐 날뛰는 곳에서는 수줍은 듯이 잠복해 버린단다. 돈에 눈이 멀어 미쳐 날뛰고, 혁명한다고 흥분해서 선의 진군나팔을 부는 곳에서는 본성의 고요한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본성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고요한 산이나 숲 속처럼 한적한 곳에 가서 자기 자신 속으로 깊이 명상에 잠기는 것은, 시끄러운 소음의 흥분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나는 오늘 심야살롱에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가난하지 않고도 정신적으로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은 없을까? 우리가 미쳐 열광하며 막말하며 자기주장으로 상대방을 억누르지 감정 소모를 하지 않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우리의 본성을 살려내고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게 진정시키는 정신문화를 생활화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교수는 자연적 본성을 약하게 하는 길은 역시 자연적 본성의 힘을 키우는 데 있다고 하신다. 이상적 도덕주의는 그런 일을 못한다고. 고요해지면 우리는 모두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고.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다. 좌와 우의 이념적 다툼은 더 이상 우리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를 자유 시장경제나 이상적 복지사회냐는 칼로 무 자르듯 양분화할 수 없다.
우리가 삶의 예술가들이라면 우리는 어떤 것을 쓰고, 그리고, 연주해야 할까? 나는 그 예술이 나의 삶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노동과 투쟁으로 얻은 것들에 대해 말하고 써야할 나만의 아름다운 몸짓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과 사회 속에서 한계 지어졌지만, 그 결핍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그 한계 속에서 찾아야 할 답들인 것이다. 우리 각자 스스로의 수레바퀴를 깎는 장인들인 것이다.
나는 한계 속에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Sono al limite, Ergo sum.
<참고 문헌>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 신영복, 돌베게
나의 고양고전 독법, 강의, 신영복, 돌베게
노장 사상의 해체적 독법, 심형효, 청계
마음혁명, 김형효, 살림
<아쳅토: 심야북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