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 왕관의 무게를 말하다.
비극 아가멤논의 @위키피디아
아가멤논의 이름은 '많이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2일 차 전투가 끝나고 어둠은 어김없이 짙어왔고 모두가 잠든 밤 아가멤논은 그의 이름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마음에 크게 근심한다. 트로이아 진영의 사람들이 수많은 화톳불과 피리 소리와 목적(가축 목에 달아 맨 종) 소리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잠을 뒤척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두르고 신발을 신고 창을 들고 그리스 진영을 돌아볼 참이다.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도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이전쟁의 당사이면서도 광포한 전쟁을 각오하고 9년간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을 그이지만 트로이아의 심리전에 무슨 큰 변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메넬라오스에게 각 진영의 지휘관들을 소집할 것을 지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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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든 큰 소리로 부르되 각자 그 혈통을 따라
부명(부친의 이름)을 부르며 잠을 깨도록 명령할 것이며
누구에게나 경의를 표하고 마음속으로 잘난 체하지 마라.
우리가 몸소 애쓰도록 하자꾸나. 제우스께서 우리에게
태어날 때부터 이토록 무거운 노고를 지워주셨으니까
(일리아스 10권 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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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총사령관답게 각 도시국가의 왕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태도를 삼가해 겸손함을 잃지 않을 것을 지시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리스 동맹의 총사령관으로서 고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와 같은 인간이구나 하는 마음에 짠하면서도,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위용이 부족한 점이 못내 아쉽다. 그의 말처럼 왕관의 무게는 무거운 것이다. 그러나 그 스스로 인지했듯이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그의 일생일대의 과업 아니었던가? 리더는 모름지기 폭풍 한가운데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변덕에 사로 잡히거나, 불안해하는 그의 모습은 트로이아의 공격에 허둥지둥 대는 그리스군 전체의 모습과 왠지 닮아있어 씁쓸하다. 이 시점에 총사령관은 어떤 리더여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리더는 폭풍 한가운데서도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신뢰와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리더는 외로운 자리에 서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리더의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그 순간이다. 훌륭한 리더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훌륭한 리더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어디 우리 인생에서 정답이 정해져 있었던가? 정답은 리더가 지시하는 방향의 끝을 가리키는 것이다. 리더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의 결정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걸고,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사람 말이다. 자기 신뢰와 과감히 그것을 증명하려는 용기가 없는 아가멤논이 아쉬운 대목이다. 아래의 내용을 보면 그에게는 없는 이 덕목을 적장 사르페돈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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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코스여,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뤼키아에서
윗자리와 고기와 가득 찬 술잔으로
남달리 존경받으며,
모든 이들이 우리를 신처럼 우러러보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리는 크산토스 강의 제방 옆에 과수원과
밀밭이 딸린 아름답고 큰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지금 마땅히 뤼키아인들의 선두 대열에 서서
치열한 전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오.
그래야만 단단히 무장한 뤼키아인들 중에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오.
‘과연 뤼키아 땅을 통치하는 우리 왕들은
불명예스러운 자들이 아니구나.
그들은 살진 작은 가축들을 먹고
꿀처럼 달콤한 정선된 포도주를 마시지만,
힘도 뛰어난 자들이다.
저렇게 뤼키아인들의 선두 대열에서 싸우고 있으니 말이오.’
친구여!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을 피함으로써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을 운명이라면,
나 자신도 선두 대열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또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로
그대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오.
하나 인간으로서는 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무수한 죽음의 운명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우리가 적에게 명성을 주든
아니면 적이 우리에게 명성을 주든 자, 나갑시다.
(12: 310~328)
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그리스 귀족들에게 중요한 책임 중 하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런 명성을 위해 초개와 같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숙고하는 삶(Vita contemplativa)이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왕은 자신의 처지를 숙고해 봐야 했다. 그러나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가멤논은 성마르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주변의 의견을 경청하는 듯 하나, 금세 평정심이 흐트러지고 마음이 변한다. 또한 아가멤논은 격정적이고 분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 수 였다. 자제심과 인내심을 갖고 문제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전장에서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는 자신이 누구이며 그 내면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인생은 온통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가득 찬 것이다.
사실 그의 고통은 전황의 큰 소용돌이가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실제로는 지금 있는 것 외의 다른 것을 추구하려다 발생한 결핍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델피의 유명한 문구를 그가 모를 리 없다. 자신이 필멸의 유한한 존재임을 알고 있다면 더 많을 것을 욕망해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초래했고, 그리고 인해 이런 패착을 초래한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를 깨닫는 것은 아가멤논 그의 몫이다. 자신을 아는 것, 정확히는 자신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 일 수 있다. 나의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묻고 달할 수 없다면, 우리는 계속 타인을 의식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 자신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훌륭한 리더는 늘 탁월함(arête)을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리더는 남들과 어울릴 줄 알아야 하고, 기꺼이 비난과 조롱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고집스럽고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민중을 뜻하는 ‘Demos’와 지배를 뜻하는 ‘Kratos’가 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타인의 마음을 자신에게 대입해 보고, 그와 공감하고, 나아가 연민의 마음까지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아가멤논이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서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아킬레우스는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쯤 그들의 전쟁은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이크 타이슨의 그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그가 링위에 올라와 처맞기 전에는…’ 좋은 리더가 누구인지를 논하기는 쉽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좋은 리더를 만날 것을 고대하고 있다. 만약 주변에 그런 리더가 없다면 오늘의 주제를 숙고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이다. 나의 리더를 평정심 있고, 숙고하고, 탁월해지게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훌륭한 리더의 왕좌로 나아갈 것인가? 둘 중 어느 것도 하기 싫은가? 그렇다. 그러면 아직 당신은 왕관의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왕관은 타인 위에 군림하며 과시하라고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려면 그 만큼의 책임과 의무를 이해하고 그에 상응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것은 신성한 일이며 진정한 의미의 왕관을 쓴 사람의 무게이다.
'Gnothi Seauton!' , '너 자신을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