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대선을 기다리며

아방궁에서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by 아레테 클래식

이 글은 지뉴 작가님과 나누던 댓글에서 시작되었다. 5월 이전에 과거의 내가 한 경험이 곧 다가올 미래를 구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소망을 담아 잠시 기억해 보려 한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독자들이 있다면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싸우려하지 말고 그냥 스킵해도 좋다. 정치적 견해를 이야기할 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창이 없다고 믿는 편이 서로 마음 편할 때도 있으니까.

성남시청 신청사

2000년대 초반 아내의 이직으로 성남 분당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는 성남시청 신청사가 훤히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아파트 창 너머로 보이는 호화청사를 보며 늘 한숨짓곤 했었다. 그 시청 꼭대기 층에 100평이 넘는 호화 시장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그 때 성남시장은 유명 배우출신으로 현 국민의 힘 소속이었다. 그는 온갖 관급 공사 등의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고 성남시의 재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그는 퇴임 이후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런 저런 기사를 뒤져 보니 구체적 사실은 이러하다. 2009년, 이대엽 시장 시절 성남시는 2,390억 원을 들여 현재의 신청사(분당구 야탑동)를 완공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굉장히 호화롭고 과도한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일반 시민 접근이 어려운 대형 구조, 유리온실 같은 비효율적 에너지 구조, 고급 대리석 마감, 고위직 전용 엘리베이터, 시장실 전용 샤워실·전용 통로 등의 시설들이 알려지면서 “이 건물은 시민을 위한 청사가 아니라 왕궁이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따라 언론과 시민사회에서는 성남시청을 “아방궁”이라고 부르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시청을 사유화했다는 이미지가 강했고, 고통받는 시민들의 삶과 괴리된 권위주의적 행정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했다. 이뿐 아니라 실제로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비리는 정말 가관이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민선 3·4기 성남시장을 역임하는 동안 동안 다양한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비리는 가족과 측근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비리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이었다.


그의 주요 비리 혐의 및 수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뇌물 수수 및 횡령


이 전 시장은 재임 중 판교신도시 개발, 성남시 신청사 건립 등 대형 사업과 관련하여 건설업자들로부터 총 15억 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의 자택에서는 1,200만 원 상당의 50년 산 로열살루트 위스키, 500만 원 상당의 루이 13세 코냑 3병, 고급 넥타이 300개, 명품 핸드백 30여 개 등 고가의 선물과 현금 8,000만 원이 발견되어 '뇌물 창고'라는 비판을 받았다.


2. 인사 비리 및 매관매직


이 전 시장의 큰 조카와 그 부인은 성남시 공무원들의 승진 인사에 개입하여, 5급 이상 공무원은 큰 조카가, 6급 이하 공무원은 조카의 부인이 관리하며 돈을 받고 승진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매관매직 행위는 공무원 17명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3. 조카를 통한 이권 개입


이 전 시장의 조카는 성남시의 관급공사 수주와 관련하여 건설업체로부터 돈을 받는 등 이권에 개입하였으며, 이러한 행위는 이 전 시장의 묵인 또는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였다.

이런 전대미문의 비리로 이대엽 전 시장은 1심에서 징역 7년, 벌금 1억 5천만 원, 추징금 8,012만 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가 무죄로 인정되어 징역 4년, 벌금 7,500만 원, 추징금 5천만 원으로 감형되었다. 그리고 이 전 시장의 아내, 큰 조카 부부, 셋째 조카 등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으며, 성남시청 공무원 28명이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다.


국민의 힘에서 이재명 후보를 공격할 때 자주 거론하는 영화 ‘아수라’는 이재명이 아니라 이대엽 전 시장의 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영화 속 부패한 시장 캐릭터는 이 전 시장의 행적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비리 사건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 남용과 가족 및 측근의 조직적 비리 개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후 지방자치의 투명성과 공직자의 윤리 의식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보수 텃밭이라 평가되던 분당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신선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이재명이 민주당 후보로 성남 시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는 청년시절 시민들을 위한 의료원 폐쇄에 반대하다 고소당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제 시장이 되어 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몸소 실행해 보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재명은 2010년 성남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시민의 공간을 시장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개방 정책을 시행했다. 아방궁이라고 지탄받던 초호화 시장실은 어린이 도서관이 되었고 시장실을 비롯한 시청 청사와 시장 앞마당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완전히 개방되었다.


그는 "시장실은 행정의 중심이지, 개인 공간이 아니다"라며 시민들에게 직접 출입을 허용했다. 취임 직후 시장실 문을 떼고 투명 유리문으로 교체함으로써 행정의 투명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문 앞에 "언제든지 들어오세요"라는 팻말을 세워두기도 했다. 비판의 중심이었던 시장실 내 샤워실은 철거했고, 그 공간은 일반 직원회의 공간으로 재활용했다. 시청 1층 로비와 복도 공간을 시민 문화행사, 사진전, 청년 창작물 전시 등에 개방했다.


위: 분수광장, 아래: 어린이 도서관


이 조치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권위주의 청사의 상징을 시민 친화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목적이었다. 특히 "권위 벗기기"와 "행정 투명성 확보"라는 상징적 메시지가 강했다. 그 결과 성남 신청사는 시장을 위한 아방궁에서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공간으로 완전 변모했다. 주말이면 시청 앞마당에서 그늘막을 치고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그가 시행한 정책은 더 파격적이었다. 이재명은 전 시장의 비리와 전횡으로 파탄난 시 예산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지불유예(모라토리움)를 선언했다. 이후 3년 6개월간 예산 삭감, 긴축 재정 등을 통해 모든 빚을 갚아 모라토리엄을 졸업했고 시재정은 급속도로 정상화되었다.


우선 불필요한 관급 공사(각종 도로 건설, 연말 보도블록 교체 등)를 전면 중단하고 시민복지 예산에 집중했다. 당시 서울시가 무상급식 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는데 성남시는 무상급식, 무상교복, 무상학용품 제공했다. 이뿐 아니라 복지 정책을 대폭 확대하여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청년배당, 산후조리비 지원, 어린이집 식비지원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혹자는 이런 정책들을 포풀리즘이라 폄하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비교적 지방 재정 자립도가 높은 성남이어서 가능한 것 아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재명 전과 후의 변화를 본다면 그런 주장들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져보임에 틀림

없다. 파산한 성남시를 복지 중심의 성남으로 발돋움시킨 것이다. 이는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지방 정부의 예산만으로도 시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 더욱 희망적이다.


윤석렬 탄핵 선고 전날 하던 일을 멈추고 헌재 앞으로 달려갔었다. 그날 밤 역사의 시계는 이미 탄핵으로 기울었던 게 확실했다. 반대쪽 지지자들이 사라진 광장에는 독재자의 폭거에 반대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지만 그래도 곧 소중한 우리의 일상도 회복되리라 확신한다. 우리 모두 상처를 딛고 더 단단해질 거라고.


그리고 나는 올 6월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여의도를 꼭 찾아갈 생각이다. 12월 3일 무도한 권력자에게 짓밟히고 상처받은 시민들의 피와 눈물을 닦아 줄 새 시대의 리더가 취임하는 역사적 자리에 꼭 참석하고 싶다. 국민을 호구로 여기지 않고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되돌려 줄 그런 지도자를 목도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충만해지는 듯하다.


나는 그가 성남 시장으로 집권하던 시절을 성남의 르네상스로 회상한다. 그리고 인간 존엄의 부활, 더불어 살 수 있다는 희망, 그때 나는 그런 가능성을 목격했고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리고 오늘 이 칠흑 같은 어둠의 끝에서 그시절의 화양연화를 다시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통의 공동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