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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에게 기타 가르치기

기본에 충실할 것

by 아레테 클래식

요즘 딸아이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아이가 기타라는 악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한다. 그래서 내게 기타를 가르쳐달라고. 우연일까? 내가 처음 기타를 손에 잡았던 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딸아이도 딱 그 나이에 이 악기를 손에 잡게 된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아주 공들여 기타를 가르치고 있다.

내가 기타를 처음 배울 당시에는 기타 교습소나 교제가 전무했다. 기타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기타를 잘 치고 싶은 열정만 가지고 기본 코드들을 익혀 갔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기타 칠 생각만 했다. 특히 중학생이 되어 교회에서 친양팀에 들어만 간다면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도 했었다. 내 바람처럼 나는 중등부에 들어가자마자 찬양팀에 들어갔고 곧 기타를 둘러맨 친양팀 리더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타 실력은 열정에 충만했던 중학생 시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되었을 땐 기타 치는 것을 거의 등한시하게 되었다. 기타 못 치는 한을 풀고 싶어서였을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회사 근처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에 다시 등록했다.


바로 그때 내가 알게 된 것이 있다. 기타를 잘 치려면 현란한 연주나 속주를 모방하려고 할 게 아니라 화성학이나 계이름, 코드진행, 스케일을 오르내리는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박자를 지키고 코드 진행에 맞는 코드와 코드톤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화음등을 조화시키는 것이 궁극적 연습의 목적이 되어야 했다.


요즘 어떤 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가 일렉기타를 들고 나와 자신의 기타 실력을 보여주는 듯한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연주하려고 하는 것은 5 음계로 이루어진 펜타토닉이라는 연주 방식이었는데 실용학원에 등록하면 1-2달 정도 배운 사람들이 치는 기초적인 수준의 미완성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마치 기타를 잘 치는 마스터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너무 이상해서 뭔가 기괴힌(그로테스크)한 느낌까지 났다. 그가 만약 기타를 잘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단 한곡이라도 충실히 연습해서 제대로 된 연주를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마저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통기타를 들고 나와 상록수를 불렀던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초보 수준의 기타 실력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진심이 담긴 연주와 노래를 듣고 있자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뜨거워지는 감동이 있다. 이 것은 작지만 큰 차이이다. 그의 연주를 보고 또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선과 색깔을 충실히 담아냈기 때문 아닐까?


나는 아직 기타 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것은 어려서 기본기를 쌓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다. 기타뿐 아니라 충실한 기본기나 자세를 배우지 못하고 기교만 배운 사람은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절대 높은 수준의 경지에 이르거나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결과물을 낼 수 없다. 이것은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기본기가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경우는 있지만, 그 마지막이 해피엔딩이 되는 경우는 결단코 본 적이 없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선무당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우리는 이번 내란 사태를 경험하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는 적어도 다년간 행정과 정치적 경험이 있고 무엇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후보가 선택되기를 바란다. 결코 가볍지 않고 진중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내는 후보가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다.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나는 공식적 인터뷰 자리에서 어설픈 오브리(즉흥연주)나 띁어대며 깨작깨작 기타치는 그런 위인에게 나의 소중한 한표를 줄 생각은 없다. 그건 이 위대한 악기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나와 타인을 속이는 기만행위에 가깝다. 실력이 없다면 겸양하기라도 해야 한다. 나와 우리 국가 공동체의 운명을 칼든 망나니에게 던지는 무서운 일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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