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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감시대상

감시대상

by 아레테 클래식

화랑대의 봄은 더디게 왔다. 운동장 가장자리의 벚꽃은 제 속도를 잃은 듯 피어오르지 않았고, 생도들의 발걸음은 규칙적이면서도 묘하게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사이, 에녹은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종류의 ‘무게’를 등에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감시대상 생도.’


몇 글자에 불과한 그 낱말은, 자신의 존재 전부를 정밀조준 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배 생도의 눈빛, 체력단련 중 어깨를 스치며 들리는 속삭임, 심지어 식판을 건네는 손끝의 망설임까지—에녹은 그것들을 전부 느꼈다.


그리고 그 기점은 분명했다. **‘하나회’**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낸 순간부터였다.



“네가 그걸 왜 파헤치는데?”


며칠 전, 밤 점호 전 침상 옆에서 박도훈이 던진 말이었다. 허공에 걸린 것처럼 평범한 어투였지만, 에녹은 그 안에 담긴 경고의 냄새를 직감했다.


“그게 진짜 군인의 자세라고 생각해서.”


에녹은 짧게 대답했지만, 그 뒤엔 수천 개의 이유가 줄을 서 있었다.


“진짜 군인은 계급을 의심하지 않아. 명령을 믿고 움직이는 거야.”


“하지만 계급이 부패하면, 명령도 썩어. 그럼 군은 흉기가 돼.”


그 순간, 박도훈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무언의 답이었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그러니 너도 입을 닫으라는 침묵의 협박.



에녹은 도서관 책상에 앉아 한국전쟁사 관련 논문을 펼쳐놓고 한 문장도 읽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문장은 활자에 불과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묻어난 피와 권력, 침묵과 폭력의 기운이 책장을 넘기는 손끝까지 따라붙었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됐을까?’


그는 그 질문에 계속 닿으려 애썼다. 하나회의 시작은 단순한 유대였다. 같은 시절, 같은 상처, 같은 적의 이름을 공유한 동기들 사이의 결속. 처음엔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은 혼자 견딜 수 없기에, 집단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틀을 벗어나면, 진실을 은폐하고 정의를 무너뜨리는 권력이 된다.


육사 11기—그들은 생도 시절의 의리를 넘어서, 권력의 추를 짊어졌다. 청와대, 합참, 국방부, 사단장, 군단장, 참모총장, 심지어 대통령까지. 정예 간부로 양성된 이들의 끝은 무제한의 권력 탐욕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광주가 있었다.


총검을 들고 국민을 향해 달려간 군인들. 명령이었고, 의무였다고 말하며 쏘아 올린 그 총성은 한 시대를 찢었다.


‘우리는 다시 그런 군이 될 수 있어.’


에녹은 두려웠다. 너무나도 쉽게, 우리는 망각한다. 진실을 덮는 일은 법률보다 관행이 먼저였고, 기억을 지우는 일은 군가보다 훨씬 조용히 진행되었다.



며칠 후, 에녹은 생도대장실에 다시 불려 갔다. 정문을 지나며 심호흡을 한 번, 두 번.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린 ‘충성’, ‘명예’, ‘용기’ 세 단어를 바라보았다.


이 단어들은 진실을 말할 자유보다 위에 있을까?


“생도 김에녹, 생도대장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문이 열렸다. 생도대장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다른 한 명이 조용히 서류를 내밀었다.


“조사 결과, 귀관이 열람한 기록은 비밀 문건은 아니다. 그러나 통상 생도가 관심을 가질 내용은 아니다. 생도대 내 불필요한 동요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관련 활동을 자제하도록 지시한다.”


“그럼, 저의 행위가 군 규율에 위배된 건가요?”


“아니. 그러나 의도를 묻는 것이다.”


에녹은 한순간 침묵했다. 그러나 곧 명확히 말했다.


“의도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어떤 군인이 되어야 하는지, 역사를 통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 지워진 진실 위에 충성을 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생도대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그 질문을 안고 졸업까지 살아남아봐.”


그날 이후, 에녹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동시에, 단단해졌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매일 밤 몰래 일기를 썼다. 조직에 대해, 권력에 대해, 그리고 이 길 위에서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그는 결심했다. 언젠가, 누군가는 이 모든 질문을 체계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가 감시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에게 묻고 있었다. 지금도 네가 믿는 정의를 따를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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