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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죽음을 직시하는 삶

by 아레테 클래식



“나는 곧 죽는다.”


이 말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를 관통하는 조용한 선언이다. 정원의 병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알려진다. 병명은 나오지 않지만, 그가 곧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는다. 흑백 사진처럼 희미하고 덤덤한 그의 일상은, 존재가 죽음을 향해 수렴해가는 과정을 조용히 담아낸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 존재를 *현존재(Dasein)*라 부른다. 이는 단순히 ‘있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존재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그래서 존재를 실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이러한 존재의 본질을 망각한 채, ‘세상속(Das Man)’의 삶 속에 파묻혀 살아간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삶을 “비본래적인 존재”라고 부른다. 반대로,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죽음을 자기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방식을 그는 “본래적인 존재”라 불렀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사유를 시적으로 담담하게 구현해낸다.


1. 죽음의 현존: ‘본래적인 존재’로의 회귀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에도 자신의 일상을 고수한다. 매일 사진관을 열고, 고장 난 카메라를 고치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는 점차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인식하게 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죽음은 “가능성들의 가능성”이다. 이는 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다. 정원은 죽음을 대면함으로써 오히려 삶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는 과거의 사진을 정리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작별을 준비하며, 조용한 방식으로 흔적을 지워나간다.


이때 정원의 삶은 하이데거가 말한 Authentizität(진정성)을 띠기 시작한다. 그는 더 이상 사회적 역할이나 타인의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본래적 가능성 속에서 자신에게로 회귀한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세상속의 존재(Das Man)’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로 뛰어든 존재(Selbstsein)’가 된다.


2. 사랑의 유예: 시간성과 존재의 연기


영화에서 정원이 유일하게 보여주는 감정의 떨림은 다림(심은하)과의 관계다. 다림은 그의 삶에 잠시 들어온 따뜻한 여름 햇살과 같다. 그녀는 사랑을 시작하려 하고, 정원은 그것을 끝내려 한다. 이 둘의 엇갈림은 시간의 비대칭성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다림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지만, 정원은 미래가 닫힌 존재다. 그는 다림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곧 사라질 존재임을 ‘말 없이’ 전달한다.


하이데거는 시간성을 인간 존재의 핵심 구조로 보았다. 특히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시간 개념이 아닌, 존재가 시간에 ‘던져져 있다(Geworfenheit)’는 사실을 강조했다. 정원의 사랑은 완성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진정한 시간성은 어떤 행위의 완성에 있지 않다. 오히려 존재의 구조로서의 시간은, 현재 속에서 미래를 향해 자신을 이해하고, 과거로부터 자신을 회수하는 실존의 운동이다. 정원은 다림을 사랑함으로써 미래의 자신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 미래는 그가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슬프고도 숭고하다. 그는 ‘되지 못할 나’를 위해 사랑을 유예한다.


3. 사진, 기억, 존재: 남겨지는 것들에 대하여


정원의 직업은 사진사다. 사진은 시간의 한 조각을 정지시킨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이자, 미래를 향한 메시지다.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해 종종 비판적이었지만, 사진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진은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한 순간을 불러세우며,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정원은 죽기 전, 다림에게 사진 한 장을 남긴다. 그것은 ‘말하지 못한 고백’이자, ‘잊히지 않기 위한’ 소망이다.


하이데거는 죽음 앞에서 우리가 남기는 흔적들이 진정한 존재로의 귀환을 돕는다고 말했다. 사진은 정원의 흔적이며, 존재의 증표다. 그것은 비록 그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남아 다림의 기억 속에서, 관객의 가슴 속에서 살아간다.


여름의 끝에서 겨울을 응시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말 그대로 ‘시간에 반하는 계절의 충돌’을 제목으로 삼는다. 여름의 한복판에 찾아온 크리스마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생에 찾아온 죽음이며, 아직 피지 않은 사랑에 찾아온 이별이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 존재는 *‘아직 아니다(Not-yet)’*와 ‘이미 지났다(No-longer)’ 사이의 긴장 속에 있다. 정원의 삶은 그 사이, 즉 존재의 진정한 현장에 위치해 있다.


죽음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삶은 필연적으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그러한 삶만이 진정한 존재의 가능성을 연다고 믿었다. 정원은 죽어가지만, 동시에 가장 진실되게 살아간다. 그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영웅이 아니라, 우리가 결국 도달할 자리에 있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의 침묵과 유예, 그가 남긴 사진 한 장은 존재의 진정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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