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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이 전부다

작은 일을 잘해야 하는 이유

by 아레테 클래식

직장 초년생 시절, 나는 예상치 못했던 임무 하나를 부여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본부 전체의 간식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어느 날 본부장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에 직원들을 위한 간식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세요.” 나는 겉으로는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앞이 아득해졌다. 내게 주어진 법인카드의 한도는 늘 빠듯했고, 탕비실 간식을 채우기엔 너무나 적은 금액이었다. 당시 나는 막 신입사원이었고, 법인카드를 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간식 담당자’라는 타이틀이 내 이름 옆에 붙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본부장의 말은 명령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나는 마트와 편의점을 뒤지고 인터넷 쇼핑몰 가격 비교까지 하며 간식을 구입했다. 어떤 간식이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고 어떤 것은 남아도는지 일일이 체크해야 했다.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올 땐 팔이 아파서 어깨가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주변의 시선도 따갑고, 작은 일 같아 보여도 신입사원에게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식이란 게 정말 만만치 않았다. 탕비실의 간식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 한 번 채워놓으면 금세 사라지고, 조금만 늦으면 빈 공간만 남아 있었다. 과자 한 봉지, 커피믹스 한 통, 초콜릿 한 상자… 직원들이 무심히 들고나가는 손길은 매서웠다. 나는 그 소모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늘 초조했다. 단순히 물건만 채워 넣으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어떤 간식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했고, 인기 있는 품목은 늘 재고를 넉넉히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식만 너무 자주 사면 직원들은 금세 질려했다. 예산 안에서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도 내 고민거리였다. 사소해 보이는 간식에도 수많은 눈치와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그때 과자 하나에도 내 평판이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신입사원이라면 모두 멋진 보고서나 프로젝트로 인정받고 싶겠지만, 나는 간식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특히 내 업무가 해외 출장이 잦았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출장으로 사무실을 비우고 있으면, 그 사이 간식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사무실은 언제나 같은 분위기였다. 직원들이 내게 건네는 말은 다정하지만 은근히 압박감이 섞여 있었다. “간식은 언제 채워져요?” 혹은 “이제 과자 없어요?”라는 말이 내 등을 짓눌렀다.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간식 하나가 없다고 조직 분위기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탕비실이 비어 있으면 묘하게 사무실의 공기도 가라앉았다. 누구도 대놓고 불평하지 않았지만, 실망감은 눈빛과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간식 하나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회사의 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았다. 결국 출장 일정과 간식 재고를 달력에 함께 적어가며 관리했다. 내가 사무실에 없는 동안 누가 대신 간식을 채워 줄까 하는 고민도 늘 따라다녔다. 작은 일이라기엔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어느 날, 본부장님이 또 나를 불렀다. 단호하면서도 무겁게 말씀하셨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큰 일을 맡길 수 없어요. 직원들 간식 챙기는 일을 하찮게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 한마디는 내 가슴에 날카롭게 꽂혔다.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이 회사를 들어오기 위해 수많은 공부를 하고 면접을 뚫어냈는데, 정작 과자 봉지를 채우는 일로 내 시간을 다 써야 하다니. 법인카드 한도에 쪼들리며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본부장의 말은 단순히 나를 혼내려는 게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 말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처음엔 “왜 내가 이런 일까지?”라는 분노가 앞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의 무게가 마음속에서 점점 커졌다. 과연 작은 일이 정말 하찮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작은 일을 무시하다가는 큰 기회도 놓친다는 것을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나는 깨달았다. 간식을 채우는 일은 단순히 과자 봉지를 사 오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피로를 알아채고, 사무실의 공기와 분위기를 읽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초콜릿 하나가 지친 동료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또 어떤 날은 커피믹스 한 잔이 회의 중 집중력을 되살렸다. 작은 과자 봉지 하나에도 동료들은 웃음을 되찾았다. 본부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수억 원짜리 프로젝트도, 중요한 미팅도 맡길 수 없다. 작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길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작은 일 속에 기회가 있고, 그 속에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숨어 있었다. 탕비실에서 나는 단순히 간식을 채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조직을 배웠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그곳이 내 성장의 무대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내 간식 담당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내 표정을 살피던 한 팀장님께서 조용히 내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내 고충을 들어주시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했다. “그 일, 내가 맡아볼까? 네가 다른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나는 그 말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이후였다. 팀장님은 단순히 내 업무를 덜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으셨다. 그분은 간식 업무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셨다. 탕비실을 단순히 과자와 커피가 쌓이는 공간으로 보지 않으셨다. 그는 간식 업무를 ‘직원들을 챙기고, 팀워크를 다지는 기회’로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전 직원의 생일과 경조사를 모두 정리한 표를 만들었다. 직원들 생일에는 유명 제과점에서 평소 접하기 힘든 고급 케이크를 주문해 오셨다. 또 결혼, 출산, 부모님 환갑 같은 경사에는 맞춤형 선물이나 꽃다발을 준비해 정성껏 전하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팀장님은 때로 문화행사를 직접 기획했다. 예컨대 점심시간에 깜짝 영화 상영회를 열어 팝콘과 콜라를 준비하거나, 여름에는 탕비실에 시원한 빙수 코너를 설치하기도 하셨다. 계절마다 제철 과일 바구니가 사무실에 등장했고, 직원들은 환호했다. 누가 생일인지 기억하지 못했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이번 달엔 누구 생일이 있나?” 하고 자연스럽게 기대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팀장님은 늘 감사의 대상이었다. 작은 케이크 한 조각, 작은 선물 하나가 직장 생활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나는 그분을 보며 배웠다. 그 덕분에 사무실은 훨씬 따뜻해졌고, 직원들 사이의 거리는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팀장님은 간식이라는 작은 일을 통해 ‘사람을 잇는 다리’를 놓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을 담으면, 그것이 결국 큰 울림과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분의 모습을 보고 나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 친절이 큰 감동을 낳고, 작은 책임감이 큰 신뢰를 만든다. 회사라는 조직은 작은 일들의 집합이었다. 아침 출근길의 인사, 회의실 예약, 동료의 커피 취향을 기억하는 것—모든 것이 작은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회사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일들이 모여 큰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나는 간식을 채우면서 동시에 배웠다. 일은 결국 작은 디테일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과자 봉지 하나, 초콜릿 한 통, 커피믹스 몇 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분위기를 만든다.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큰 일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작은 일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결국 큰 일도 놓치고 만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 늘 같은 기준을 세운다. 직원들을 평가할 때 나는 가장 먼저 작은 일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본다. 큰 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사람이 맡은 작은 일 하나를 얼마나 책임감 있게 해냈는지가 나에겐 훨씬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작은 일에 무심한 사람은 결국 큰 일에서도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반대로 작은 일을 정성껏 해내는 사람은 무슨 일을 맡겨도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탕비실에서, 그리고 한 팀장님의 탁월한 본보기에서 배웠다. 작은 일이야말로 전부다. 그것이 내 커리어의 시작이었고, 여전히 내 커리어의 핵심이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비즈니스의 본질 역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고객이 느끼는 작은 불편을 발견하고, 그걸 개선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결국 시장의 판을 바꾼다. 작은 디테일 하나가 고객의 충성심을 만들고, 작은 배려 하나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든다. 작은 일에 정성을 쏟지 않는 기업은 결코 큰 성과를 지속할 수 없다. 나는 이제 간식이라는 사소한 경험에서조차 그 진리를 배웠다. 작은 일을 하찮게 보지 않는 태도, 그게 바로 비즈니스의 시작이자 끝임을 나는 믿는다. 앞으로도 나는 이 믿음을 지켜갈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작은 일이야말로 전부라고, 그리고 그 속에서 세상을 바꿀 기회가 숨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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