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통
여주 젊은 괴테의 집 초록색 방에는 북쪽으로 낸 큰 창이 하나 있다. 나는 그곳에 서서 괴롭고 힘든 시절을 보냈을 괴테가 창가에 서서 신록의 자연을 보며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자신을 가다듬었을 것을 종종 상상해 본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기쁨의 순간이 아니라 고통의 순간이다. 환희는 쉽게 흩어지지만, 상처는 오래도록 우리 마음의 결 속에 남는다. 그러나 그 상처가 단지 아픔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깊은 내면의 문을 열고,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괴테가 『시와 진실』에서 기록한 젊은 날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흔적의 기록이다. 괴테는 사랑의 아픔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Nur wer die Sehnsucht kennt,
weiß, was ich leide!
Allein und abgetrennt
von aller Freude,
Seh’ ich ans Firmament
nach jener Seite.
Ach! der mich liebt und kennt
ist in der Weite.
Es schwindelt mir, es brennt
mein Eingeweide.
Nur wer die Sehnsucht kennt,
weiß, was ich leide!
<1749-1832, Johan Wolfgang Geothe>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가 겪는 고통을 알리라.
모든 기쁨에서 떨어져
홀로, 고립된 채,
나는 하늘을 우러러
저 먼 곳을 바라본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이는
머나먼 곳에 있기에.
어지럽고, 속이 불타는 듯하다.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내 고통을 알리라.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괴테>
그는 누구보다 일찍 세상에 주목을 받았다. 날카로운 재능과 천부적인 언어 감각은 또래 소년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하지만 그가 느낀 것은 단순한 자부심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혹시 내 글은 나만 좋아하는 것일까? 다른 이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소년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괴테는 훗날 이렇게 고백한다.
“이런 불확실함이 오랫동안 나를 아주 불안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외적인 특징을 찾는 것이 내게는 도무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자신감을 가지고 쉽게 쓰자고 나 자신을 안심시킬 때까지 나는 정말이지 시를 쓸 수조차 없었다.” (시와 진실 5장 중, 괴테)
재능은 그에게 기쁨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쓰는 이 문장이 진실인지, 단지 허영의 장식에 불과한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그런 불안을 느끼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곧 자기 존재 전체에 대한 의문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우연히, 그러나 운명처럼 첫사랑을 만난다. 사건의 시작은 가벼웠다. 친구들이 장난 삼아 부탁한 연애편지 대필이었다. 그는 재능을 발휘해 우아한 시를 써주었고, 아이들은 그것을 진짜 연서처럼 꾸며 전달했다. 그러나 이 사소한 장난은 점점 커져 음모와 배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와중에 그는 그레트헨을 지주 만났다. 그녀는 소년보다 약간 나이가 많았고, 수줍은 미소와 따뜻한 눈빛으로 괴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년은 자신이 마치 문학 속 주인공이 된 듯한 환상을 품었다. 황제 대관식 축제의 환희 속에서 그녀와 나란히 서 있었던 순간, 그는 세상이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꼈다. 젊은 가슴은 설레었고, 그는 손을 잡은 채로 끝없는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꿈은 너무 짧았다. 음모가 드러나고 사건이 꼬이자, 그레트헨은 도시를 떠나야 했다. 떠나기 전 그녀가 남긴 한마디는 소년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제가 괴테를 자주, 기꺼이 만났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괴테를 아이로 보았고, 그 아이에 대한 제 호감은 정말이지 누나 같은 것이었어요.” (시와 진실 5장 중, 괴테)
그레트헨의 솔직한 고백은 잔인할 만큼 명료했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이 사실은 동정과 호의에 불과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은 연인이 아니라 그저 어린 동생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은 괴테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그는 “울면서 제정신이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젊은 날의 첫사랑은 이렇게 한순간에 끝이 났다.
괴테는 그 상실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그는 철학에 기대 보려 했으나, 차가운 논리와 추상적 사유는 그의 불안을 달래주지 못했다.
“자존심이 발동하여 자신이 그러한 철학에 ‘파고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시와 진실 5장 중, 괴테))
하지만 철학은 그가 간직하고 싶었던 비밀스러운 감정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 설명의 무게가 소년을 더욱 억눌렀다. 그는 사회적 인정의 길도 두드렸다. 도덕연맹에 가입을 청원하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운 거절과 비난이었다. “그 아이는 일을 제대로 하기보다는 마구 지껄이기만 한다”는 평가는 어린 괴테의 자존심을 다시금 짓밟았다.
그의 마음은 흔들렸다. 세상의 시선은 자신을 의심하고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더 이상 무심히 글을 쓰지 못했다. 그의 문장은 항상 누군가의 눈초리를 의식하며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 무너짐 속에서 새로운 싹이 움트고 있었다. 소년은 점차 깨달았다.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은 철학의 냉정한 언어도, 타인의 인정도 아니었다.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오히려 소박한 대상들이었다. 창가에 놓인 한 송이 꽃, 저녁 무렵의 하늘빛, 책 속에서 만난 시구절 하나. 그는 말했다.
“평범한 대상물에서도 하나의 시적인 측면을 찾는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예술 세계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제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발견한 아름다움 속에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고통을 노래로 바꾸는 법을 배운 것이다.
괴테의 젊은 날은 결국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상처받은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상실과 사회적 거절, 무너지는 자존심은 소년을 병들게 할 만큼 괴롭혔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예술을 발견했고, 자연을 사랑하는 눈을 길렀으며, 무엇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첫사랑의 상처로, 또 누군가는 사회적 실패로 괴로워한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자기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괴테의 고백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고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속에서 시를 발견하고, 진실을 발견하라. 괴테는 젊은 날의 아픔을 『시와 진실』로 남겼다. 우리 또한 언젠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로, 노래로, 혹은 삶의 지혜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