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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진실⟫을 따라 걷는 길 위에서

괴테의 삶

by 아레테 클래식

여행의 길은 언제나 우연과 필연이 교차한다. 약 10년 전, 남미 출장길에서 돌아오던 나는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게 되었다. 지금도 남미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었기에, 그곳에 가려면 유럽이든 북미든 중간 기착지를 거쳐야만 한다. 한여름의 남반구에서 보내던 시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북반구의 매서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반팔 차림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선 순간, 차가운 공기는 여행자의 무방비를 단숨에 파고들었다. 하루 남짓 머무를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당장의 추위를 견뎌낼 따뜻한 스웨터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 괴테의 생가는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망설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꼭 손해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최근 한국의 괴테마을과 인연이 닿고, 선생님의 괴테전집을 윤문 하는 귀한 기회를 얻으면서 나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때 괴테 생가에 들어갔더라면 단순한 여행자의 호기심으로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가보지 못한 그곳을 동경하는 마음이 오히려 내 독서를 더 깊고 절실하게 만들고 있다.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을 펼치면, 나는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오래전 놓쳤던 그 문 앞의 기억이 함께 깨어난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이 모든 것을 차츰차츰 첨가해 가면서 나는 내게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 만족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관찰이 나를 점점 더 먼 곳으로 이끌고 가버렸다… 인간을 그 시대 연관 속에서 그리는 것, 그리고 전체가 어느 정도나 그에게 저항했는지, 얼마나 그에게 우호적이었는지, 즉 그가 거기서 어떻게 세계관과 인간관을 형성해 갔는지… 그것이야말로 전기의 주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백은, 단지 개인의 회상이나 사소한 기억을 넘어, 한 사람을 시대의 결 속에서 조망하는 시선이다. 괴테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면서도, 동시에 격동의 시대가 자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기록하려 했다. 자신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곧 시대와의 대화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는 그 생가의 문턱 앞에 서 있던 그날의 나와 다시 만나게 된다. 직접 들어가지 못했던 그 공간을, 지금은 활자와 사유를 통해 한 걸음씩 깊숙이 거닐고 있는 셈이다. 나의 삶 또한 괴테가 말한 것처럼, 시대라는 물결에 규정되고 형성되어 왔다. 만약 내가 십 년 일찍, 혹은 십 년 늦게 태어났더라면, 괴테와의 인연도, 지금 이 책장을 넘기는 경험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빚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든 것을 다 보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한 것과 만나지 못한 것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괴테의 삶을 읽고 따라가는 일은, 내게 그런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의 고백 속에서 나는 한 개인이 자기 시대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그 속에서 변함없는 자신을 발견하려 했던 진지한 태도를 느낀다.


그날 프랑크푸르트의 차가운 공기 앞에서 멈추었던 발걸음은, 지금의 나에게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나는 괴테의 문장 속에서, 그가 남긴 진실 속에서, 미처 들어가지 못한 그의 생가를 매일같이 천천히 산책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읽는 기쁨이 곧 살아가는 기쁨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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