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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리더인가?

고전문학 읽기: 부활, 톨스토이

by 아레테 클래식


나는 위대한 이념을 발견했다. 이는 교리가 아닌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인간을 화합시키는 새로운 종교이다. 이 이념의 실현에 내 전 생애를 바쳐야겠다. <1855년 3월 5일 자 톨스토이의 일기>


위대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삶 중반기에 기독교 진리를 재발견하고 그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했었다. 그는 자신의 유산을 가지고 음주, 도박, 매춘에 탐닉하는 젊은 시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안나 까레리나에 등장하는 레빈과도 같이 소작농들의 사회로 들어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고된 노동을 실천하면서 그들의 고된 삶을 이해하고 동화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자기반성은 자신의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이번에 읽은 부활에서도 농촌의 빈곤한 현실 앞에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라님도 해결하기 힘들다는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소작농들이 직면한 빈곤한 현실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는 글로 읽은 헨리 조지의 지대론을 역설하며 소작농들에게 자신의 토지를 공유하는 결단과 실천을 감행한다. 그는 토지를 저리에 빌려주면서도 소작농들에게 조금의 부담을 줘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비참한 현실 근저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에 눈을 돌리게 된다. 우연히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된 카츄사의 재판이 그 계기가 된다.


젊은 시절 그녀를 범한 후 책임지지 못해 그녀가 타락했다는 죄책감에 그녀의 구명을 시작하면서 그는 사회 구조의 악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 없이 타인을 도구로 대하는 법관, 간수, 성직자, 귀족,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좌절하지만, 한편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의 온 삶을 기울여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다.


카츄사와의 결혼을 통해 속죄할 마음으로 시베리아까지 따라 가지만, 결국 결혼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의 헌신과 사랑에 감동해 카츄사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부활은 천 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다. 그리고 부활은 첫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마지막 페이지가 궁금해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찬탄한 구성과 위대한 사상을 담고 있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


심오한 사상이 담긴, 그리고 긴 소설을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인간에게 있어 자유는

돈이나 명예 따위를 가지고 논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자유를 논할 수 있는 사람은 이웃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우는 나날을 보냈던 사람이다. 적어도 자신의 평탄하고 안일한 삶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전전긍긍하며 그들을 삶의 실천으로 연민하고 사랑한 다음 내뱉을 수 있는 단어란 말이다.


톨스토이의 고백처럼, 이 시대에도 황제, 귀족, 법관, 상인, 소장처럼 권력과 부를 가졌으나 서로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잃은 인간을 보기란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의 리더가 최소한 스스로 죄 많은 인간임을 자각하고 '궁핍에 처한 인간은 자유를 알 수가 없지 않냐'라고 반문하는 인간이 아니길 바란다.


오히려 어느 누구도 사람을 처벌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항상 모든 사람을 몇 번이고 한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은 양심 있는 인간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산상수훈의 진리 앞에 평안하지도 자유하지도 못한 채 분노할 수밖에 없음이 통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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