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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소크라테스에 망치를 들다

니체 우상의 황혼 읽기

by 아레테 클래식


니체, 소크라테스에 망치를 들다


1. 플라톤 철학의 주인공, 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 플라톤만큼 방대한 자료를 남긴 철학자는 없다. 아니 서양철학사를 통틀어 그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남긴 철학자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곧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곧 철학이다”이라 말했다. 그리고 과정철학자로 알려진 화이트헤드의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플라톤이 남긴 방대한 대화편들은 아직도 왕성하게 연구되고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플라톤의 대화록의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이다. 플라톤은 20대 전후에 소크라테를 만나 약 8년 간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힌 것으로 알려진다. 플라톤의 저작들은 대부분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기본으로 기록되었다. 소크라테스를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내용도 있겠지만, 이후 플라톤이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해 플라톤 혹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여겨지는 소크라테스는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경 아테네에서 석공과 산파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친이 모두 직업을 갖고 있었고 자식 교육에 열성적이었다고 알려졌다. 기원전 5세기는 아테네인들에게 수많은 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치른 전쟁에 직접 참전해 두각을 나타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전쟁의 상흔이 깊었던 만큼 그 반동으로 문화적 절정기를 맞이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의 작품들 가운데 다수를 접했을 것이고, 건축, 미술 등 인생 전반에 걸친 찬란한 문화를 직접 경험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 상대가 지혜 없음을 자각하게 하는 일명, 산파술이라는 변증론을 사용했다. 그는 대단한 설득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의 강연을 듣고 흠모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알키비아데스가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에 대해 얘기한 부분을 살펴보자


이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말씀으로 코리바스들보다 더 심하게 신들린 상태가 되고,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며, 눈물은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린다네. 그리고 나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을 본다네.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훌륭한 웅변가가 하는 말을 들을 때는, 말은 참 잘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네. 내 영혼이 혼란에 빠진 적도 없었고, 내가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라고 여겨져 화가 난 적도 없었다는 것이네. 하지만 여기 이 마르시아스를 닮은 분 때문에, 나는 그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되어서, 내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처지에 있는 자라면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네 -<소크라테스의 변명> 중-


소크라테스의 변증론은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방식이었고, 당시 그를 추종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어느 시대나 그랬듯이 새로운 방식은 기존 체계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신들을 믿지 않는 것과 젊은이들을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종국에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청년 지식인들의 우상이었던 그는 결국 허무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대한 일반적 이해이다.


우상의 황혼은 니체의 후기작으로 1888년 9월 30일에 완성된다. 이날은 니체가 자신의 다른 저작인 안티크리스트에서 기독교 반대법 제정한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의 목표를 ‘모든 가치의 전도’로 명명한다. 우상의 황혼 서문에서 망치를 들고 어떻게 철학하는지를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한 시대의 영원한 우상들에 대해 중대한 선전포고를 선언한다. 그에게 세상은 우상들로부터 병들어 있어 회복해야 할 대상이다. 그는 더 이상 가짜 정보들과 여론들이 판을 치고, 허무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그냥 놔둘 수 없어 전면전을 선언하고 있다. 이 위험한 전쟁의 첫 번째 목표는 명확하다. 그는 바로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소크라테스’이다. 니체는 서양 철학의 기초를 제공한 소크라테스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2. 아스클레피오스의 닭: 이원론적 니힐리즘에 대한 비판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도 나오는 사형을 앞둔 소크라테스의 고백이야기를 지적하며 소크라테스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연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으니, 그 빚을 소홀히 하지 말고 반드시 갚게나.” 크리톤은 “그건 그렇게 할 것이니, 다른 할 말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게” - <소크라테스의 변명> 중에서


이 장면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신 후 마지막으로 독 기운이 전신에 차오를 무렵 그가 마지막으로 크리톤에게 부탁한 내용이다. 제자들이 독약의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목도하며 슬퍼하던 그때 수탉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 달라는 게 도대체 무슨 생뚱맞은 부탁인가? 아스클레피오스 (그리스어: Ἀσκληπιός)는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의학과 치료의 신이다. 니체는 이 장면을 들어 소크라테스가 현생을 삶을 넌더리 내고 있었고, 내세의 삶을 통해 자신이 회복될 것에 대한 감사로 의술의 신에게 닭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이전의 많은 현자들이 그러했듯 소크라테스도 삶은 무가치 할 뿐만 아니라 회의와 우울이 가득하다는 것 그리고 그의 삶은 병들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플라톤적 이원론은 현생의 삶을 부정하고, 내세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철학이다. 니체는 그들이 현실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뿐더러 삶의 가치를 평가 절하했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새로운 도덕주의는 마치 그를 의사나 구원자처럼 보이게 했지만, 사실은 그는 병자였고, 죽음을 통해 자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데카당스(염세주의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3. 못생긴 소크라테스는 노예 도덕의 원흉


니체의 공격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국한되지 않고 외모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소크라테스는 못생긴 것으로 유명하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의 그림에 묘사된 것을 보면 그는 대머리에 들창코이다. 니체는 삶의 의지는 단순한 정신적인 작용뿐만 아니라 신체의 발육, 외모에도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못생긴 이유가 하층민, 혼혈로 인한 발육부진을 드러내는 표시 혹은 발육의 쇠퇴를 드러내 주는 표시로 봤다. 혹은 그는 전형적인 범죄형일 수도 있다고 얘기하며 소크라테스가 조용히 자백했다는 이야기도 기록했다. 나는 니체의 이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의 원인은 헬레나(그녀의 별명은 천여척의 배를 띄운 얼굴이다)라는 절세 미녀였다는 것을 기억해 보라. 그런 아름다움을 흠모했던 그리스 귀족들이 못생겼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가 하층민이라는 것의 또 다른 증거는 변증법이다. 산파술로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상대의 어떤 주장의 근거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지혜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화술은 새로운 앎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와 같다. 그러나 논리적 대화는 기존의 그리스적 가치와는 사뭇 다른 방법론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인간의 전인적 삶을 도외시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이성과 논리라는 것으로 삶을 축소시켰다는 것이 니체 비판의 핵심이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을 ‘평민들의 정복 수단’ 혹은 ‘평민이 사용할 수 있는 저항과 투쟁의 무기’로 비판하고 있다. 니체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품위 있는 사람이 그러하듯 품위 있는 것들은 자신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점잖지 못한 일이다. 스스로를 먼저 입증시켜야만 하는 것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권위가 미풍양속에 속하는 곳, ‘근거를 들어 정당화’ 하지 않고 명령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변증론자는 일종의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우상의 황혼 중>


니체는 변증론을 펼치는 철학자들을 어릿광대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적 취향이 아니고, 나쁜 수법으로 간주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주인공이 바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이들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어릿광대는 변증론으로 말만 뻔지르하게 잘하는 철학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리아스와 같은 전쟁 서사시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의 귀족이나 시민계급은 자신을 논리나 논증으로 증명하는 인간들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귀족으로서의 자신의 책임과 권리를 행사할 뿐이다.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은 말에서 끝나지 않았다. 영웅은 나라와 가족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 장렬히 싸우다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숭고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리스적 영웅은 말장난을 일삼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위기 앞에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다.


니체의 지적대로 변증론은 기존의 그리스적 취향과는 사뭇 다른 나쁜 수법이었다. 그가 사형을 선고받게 된 것도 바로 변증론으로 젊은이들을 현혹시킨 것이었고, 다수의 그리스 시민 배심원이 사형에 찬성한 것만 봐도 이것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식으로 이야기하면 천민이 변증론을 수단으로 삼아 기존 권력을 대체할 혁명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니체는 변증론이 하층민이 다른 수단이 없을 때 선택되는 무기를 갖지 못한 이용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 설명한다. 당시에 유행했던 검투사들의 육체적 싸움이 이제는 대화라는 형식을 빌어 상대를 조롱하고, 적수를 분노케 하며,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결국 피로하게 만들어 복수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기로 비유하기도 한다.


4. 건강함의 회복을 위한 니체의 철학적 기획


니체는 소크라테스 비판의 후반부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의 도덕주의는 병적이라고 지적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적 판단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이 마치 의사나 구원자가 된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시켰다. 그러나 사실은 그는 전형적인 데카당스(허무주의자)였던 것이다. 신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평가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 앞에 의연했던 영웅이 아니라 독배를 통해 고통뿐 인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대표적인 허무주의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니체의 말대로 소크라테스는 인류를 치료할 의사나 철학적 구원자가 아니었다. 그가 나직이 말했던 것처럼 ‘오로지 죽음만이 여기서 의사이고….. 소크라테스 자신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니체의 대담한 철학적 기획은 허무주의에 빠진 인류를 치료하고 구원할 거대한 철학적 세계 대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전대미문의 선전 포고를 했던 니체가 그의 서문에서 암시했던 ‘상처 내부의 치유력’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비판에서 보듯 니체는 삶을 부정하는 모든 가치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병적이고 불완전하다고 폄하했던 가련한 우리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운명이라는 가혹한 시련 앞에 상처받았을지 모르겠지만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새 힘을 얻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니체가 그의 책 서문에서 밝힌 그의 오랜 좌우명은 아래와 같다.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increscunt animi virescit volnere virtus)


<참고 자료>

니체 전집 15권 우상의 황혼, 니체(백승영 옮김), 책세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백승영, 책세상

니체와 철학, 질 들뢰즈(이경신 옮김), 민음사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박문재 옮김), 현대지성클래식

천년의 수업, 김헌,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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