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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쇼펜하우어)

고전독서

by 아레테 클래식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26살에 쓰기 시작해 4년 만에 완성한 그의 대표작이다. 자신에 작품에 대한 평가와 자부심은 정말 대단하다. 마치 니체의 작품을 읽는 듯하다.


"낡아빠진 관념들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사상을 담은 책이다. 지극히 성공적이며 수미일관 된 체계를 갖추고 있고,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매우 아름답게 쓰였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중>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쇼펜하우어는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베를린 대학에서 같이 강의했던 위대한 철학자 헤겔에 가려 그림자처럼 열등감을 가지며 평생을 살았던 것 같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걸까? 그의 박사 논문을 가장 먼저 읽은 사람은 괴테였다고 한다. 그리고 괴테는 출간 직후 이 책을 쇼펜하우어에게서 증정받고는 단숨에 읽은 후 위대한 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출판된 지 16년이 지난 뒤에는 대부분이 휴지 값도 안 될 정도의 헐값에 팔렸다.


쇼펜하우어가 유명해진 것은, 63세라는 늦은 나이에 출간한 <소품과 부록>이라는 에세이집 때문이다. 영국의 한 신문에서 이 작품을 주목했고, 그 계기로 쇼펜하우어는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쇼펜하우어는 세기의 철학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의 문학적 천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니체가 그토록 좋아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였을 것 같다. 그는 유명한 염세주의자였지만, 인생 말년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비교적 평온하게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철학은 위대했고 그의 사상이 남긴 영향은 지대했다. 니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에머슨, 베르그송, 존 듀이, 윌리엄 제임스,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학자들, 그리고 프로이트와 융을 비롯한 심리학자들이 쇼펜하우어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음악계에서는 니체의 정신적 후견인인 바그너가 쇼펜하우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쇼펜하우어는 무엇보다도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러시아의 위대한 문호들인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프랑스에서는 에밀 졸라, 모파상, 앙드레 지드, 프루스트, 사무엘 베케트, 영국에서는 토머스 하디, 조지프 콘래드, 버나드 쇼, 서머싯 몸, 독일에서는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체코에서는 카프카, 이탈리아에서는 피란델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보르헤스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던 작가들이다. 또한 릴케와 T. S. 엘리엇과 같은 시인들에서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철학자가 문학계에 이렇게 폭넓게 미쳤다. 물론 이들은 니체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머리말에서 독자들이 칸트를 먼저 읽을 것을 얘기한다. 그리고 칸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철학적 선행 작업을 비판하면서 세계를 이성이 아닌 의지에 의해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계를 의지로써 경험한다는 것은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이나 관조를 통해 가능하다는 그의 입장은 불교나 노장사상과 매우 닮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쇼펜하우어는 “칸트에게서 절반을 배우고 인도에서 전부를 배웠다”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인도철학과 불교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인도 브라만교의 성전聖典인 『우파니샤드 Upanisad』를 매일 밤 자기 전에 읽었다. 그는 자신이 『우파니샤드』에서 항상 큰 위로를 받았으며 죽는 순간에도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하니 그의 사상은 서구의 기존 철학 개념을 초월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의 책을 읽기 위해 급한 건 서양철학이 아니라 동양 사상 그것도 노장사상과 불교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는 인생관을 피력했다. 그리고 욕망의 화신인 인간들은 고슴도치와 같아서 가까이할수록 자신의 욕망 때문에 타인을 다치게 한다고 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멀리 있는 타인이 아니라, 나의 분신과 같은 가족, 친지, 친구들인 게 사실이지 않나? 올 추석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뼈 때리고,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를 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리고 그에게 철학을 하는 이유는 절대적인 지혜와 정의 같은 것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안에 존재하는 고통과 악을 관조하기 위함이었다. 생은 추악하기 그지없고,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숙고하는데 온 인생을 바쳤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반지가 아니라, 내 욕망과 의지를 충족해 줄 적극적인 전략과 방법들 아닐까?


어쨌든 이 책도 한번 읽어 끝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최근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잘되었다. 그의 전기, 플라톤, 칸트 그리고 그의 사상과 관련된 논문들을 읽는 것으로 이번 한주를 보내려 한다. 추석이라 그런지 요즘 내 책장에 읽을 것 풍년이다. 저걸 언제 다 읽고,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읽을 게 많은 건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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