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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y 27. 2021

신념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인문학 클럽을 떠나며

<어린 시절 자연의 광대함을 가르쳐준 창녕 우포늪의 일몰>


 지난 3월부터 클럽하우스에서 인문학 클럽에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5월이 채 끝나기도 전 나는 기존 클럽을 탈퇴했다. 그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오전, 오후 시간을 들여 책을 낭독하고 낭독한 책에 대해 토론했다. 소설도 읽고, 자기 계발서도 읽고, 시도 낭송하고, 노래도 하고, 목소리로 하는 연극도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코로나 인해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 않는가?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깊이 있는 사색을 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그래서  바쁜 일상이었지만 기꺼이 시간을 내었고, 또 열성을 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애착이 있었고 많다면 많은 시간을 보낸 그 클럽을 탈퇴하고 말았다. 오늘 이 글은 내가 왜 그 클럽을 탈퇴했는지에 대한 나의 변이자, 내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하고 싶은지에 대해 대한 나의 바람과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기보다 타인의 시선이나 체계가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 의무에 갇혀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는 타인의 시선이나 체계는 일반적으로 불합리하고 낡은 것이 아니라, 좋고 바람직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것은 더 정당하고 강력하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개인은 삶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체계가 부여한 당위와 명령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자발적(?)인 삶의 선택한다.


 청년 시절 나는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지식이나 존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변화무쌍한 매일매일의 삶을 대면할 때마다 불안했다. 그리고 나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신비한 지식이나 신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그것은 기독교적 신앙이었고,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전승되는 사상가들의 사랑스러운 지혜(철학을 뜻하는 필로조피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이라는 단어 'philosophy'의 'philo'는 '사랑하는'을 뜻하고, 'sophia'는 '지혜'를 뜻한다. 철학이란 말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인간이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야 하는 방식, 이유, 의미 등 인간과 그 관계에 대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다)였다. 그러나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을 공부하거나 내 신앙의 원천이었던 성서를 진지하게 공부하면서 그리고 기독교 사상사와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신념과 신앙도 어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자유롭게 할 줄 알았던 신앙과 신념이 실제로는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열매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서슬 시퍼런 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 저마다의 삶의 기준이 있다.  그런 것들을 모두 합쳐서 신념이라고 한다면,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때로 신념은 삶 그 자체가 된다. 사람은 신념을 위해 살기도 하며 신념을 위해서 죽기도 한다. 신념은 단지 머리에 든 생각 이상이다. 그것은 일, 사랑, 놀이가 되고 아름다운 사회적 연대가 되기도 하지만 참혹한 폭력과 때론 국가 범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신앙이나 이념은 그 자체로는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앙에 대한 관용을 갖추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신념은 삶을 풍요롭고 기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이념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다. 빛나야 할 것은 신앙이나 이념이 아니다. 정말 빛나야 할 것은 자연이 준 본성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고 실현하면서 영위하는 기쁜 삶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내가 클하의 인문학 방을 떠난 이유는 이념의 도구나 노예가 되는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클럽 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는 내가 인문학적인 지식을 탐닉하는 특별하고 이지적인 사람일 거라는 오해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은 내가 어떤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책들과 권위자들의 생각을 배우고 가르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강한 신념, 이념, 가치관, 신앙, 지적체계가 가진 양면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체계 속에서 자기 색깔 없이 맹목적으로 사는 삶을 늘 경계해 왔다. 나는 어떤 이념이나 이론을 추종하는 학자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신념과 이념 따위와 나의 자유로운 영혼을 바꾸는 일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늘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묶으려 들 땐 언제든 그 경계를 벗어나 날아갈 수 있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동안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과 남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클럽 탈퇴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경계에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모호함을 견디는 순간은 정말 외롭고 괴롭다. 그러나 나는 그 불안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라고 배웠다. 어떤 것이든 한쪽의 생각이 공고해지면 다른 쪽의 생각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준은 억지로 만들어 놓은 생각일 뿐 그 자체로 절대적일 수 없다. 그 기준이 행사되게 되면 나와 너는 구분되고, 구분된 다음에는 한쪽을 배제하는 것은 뻔한 수순이 된다. 배제한 다음에는 한쪽을 억압하고 강제할 수밖에 없다. 많은 역사적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는 일상의 많은 일들 속에서 그런 상황을 목도해 왔다. 한쪽에 서게 되는 순간 서로의 자발성은 유린되고 의무와 당위에게 압도당하는 너무 당연한 수순이 밟는다. 나는 이 지점에서 멈추었던 것 같다. 종교, 일, 사랑, 가정, 국가도 나와 타인의 자발성이 발휘될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땐 늘 괴로웠고 또 중대한 결단을 했던 것 같다.


<꼬모 더 레이크, 그날의 슬픈 하늘을 추억하며>


 누군가 나에게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최근 읽고 있는 노자의 생각을 빌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점으로 나아가고 싶다’라고.  바람이 있다면 타인의 판단보다는 개인의 생각과 이해가 더 존중받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객관적이라는 잣대로 담담하게 내려지는 평가가 한 개인에게 얼마나 냉정하고 아픈 것인지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객관적이라는 제삼자의 시선이 상처 받은 이에게 기울어지는 따뜻한 시선이 되지 않는다면 정의, 공정 같은 말은 또 다른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하늘을 파랗다고 하지만 하늘이 언제 파란적이 있었던가? 내가 존재하지 않고, 내가 긍정되지 않는다면 내가 무심히 바라본 오늘 그 하늘은 그냥 빛에 비친 착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은 단 한 번도 내가 상상한 푸르른 하늘이었던 적이 없다.  


 마흔 중반이 된 지금 나는 또 다른 열정을 꿈꾼다. 그리고 마음이 설레지 않는 일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피하고 싶다. 이전과는 다르게 몸은 점점 쇠락하고, 마음의 크기는 움츠려 들어간다. 나는 적어도 타인의 시선에 내 인생의 평가를 맡기기는 싫다. 그리고 이 정리되지 않는 글을 Alfred D'Souza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는 시로 급히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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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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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Alfred D'Souza-


Dance, like nobody is watching you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Sing, like nobody is listening

Work,like you don't need money

Live,like today is the last day to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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